시간이 멈췄다.
아니, 세상은 멀쩡히 흘러가고 있었다. 열차의 출입문이 열리며 토해내는 날카로운 경고음, 사람들의 웅성거림, 발걸음 소리.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멈춘 것은 오직 서하진의 세계뿐이었다. 그녀는 스크린도어 유리에 비친 ‘그것’에 붙들린 채, 숨 쉬는 법조차 잊어버렸다.
어머니였다. 분명 어머니, 서미령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은 하진이 아는 다정하고 때로는 엄했던 어머니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단에 오를 때, 혹은 금기된 굿을 할 때만 드러내던 ‘무당’의 얼굴이었다. 생기라곤 한 점도 없는 새하얀 분칠 위로, 금방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듯한 붉은 입술. 초점 없는 눈동자는 웃고 있었으나, 그 웃음은 살아있는 자의 환희가 아닌, 망자의 서늘한 조롱처럼 보였다.
‘아... 아아....’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비명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공포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오히려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냉기는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살갗을 에는 듯한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마치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등 뒤에 바싹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다음 역은...”
안내 방송이 기계적으로 흘러나왔다. 그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주문을 깨뜨렸다. 하진은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뒤를 돌아볼 용기는 없었다. 만약 고개를 돌렸을 때, 정말로 ‘그것’이 거기에 서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잠시만요! 비켜주세요!”
누군가의 어깨를 거칠게 밀치고, 발을 밟고, 욕설을 들어가며 계단을 향해 뛰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목적지도 없었다. 그저 이 끔찍한 지하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본능만이 그녀를 움직였다. 개찰구를 뛰쳐나가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두 칸씩 성큼성큼 뛰어 올라갔다.
마침내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밀려 들어왔을 때, 하진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날뛰고 있었다. 무릎에서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한 것을 간신히 근처 벽에 기대어 버텼다.
더는 안 된다.
더는 외면할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악몽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환각이 아니다. 어머니에게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무슨 일’이 이제 자신을 향해 손을 뻗치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 안정된 직장. 무속과 단절된 삶. 그녀가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가문의 굴레는 서울 한복판까지 그녀를 쫓아와 질긴 밧줄처럼 목을 조여왔다.
‘... 신고해야 해.’
그래, 신고.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정상적인 방법. 하진은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가장 가까운 경찰서를 검색했다. 화면 속 파란 점이 깜박이는 것을 보며, 그녀는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을 붙들고 그곳을 향해 걸었다. 아직 이 도시의 시스템이, 법과 질서가 자신을 지켜줄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사이비 종교, 유사 종교, 무속 관련 범죄를 전담하는 팀은 건물의 가장 구석진 곳에 처박혀 있었다. 하진이 안내를 받아 도착한 사무실은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담배 냄새와 묵은 서류 냄새, 싸구려 커피 향이 뒤섞여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파티션 너머로 밤샘 근무에 지친 형사들의 낮은 목소리와 키보드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저쪽에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담당 형사님 곧 오실 겁니다.”
젊은 의경이 가리킨 낡은 소파에 앉으며, 하진은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왜 경찰서, 그것도 이런 전문 부서까지 오게 되었는지 스스로도 혼란스러웠다. 처음 파출소에 찾아가 어머니의 실종 신고를 하려 했을 때, 그녀는 최대한 담담하게, 초자연적인 부분은 모두 덜어내고 설명했다.
‘어머니가 굿을 하시는데... 그 장소에서 갑자기 사라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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