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목소리

by 돌부처

경찰서를 나서는 순간, 익숙했던 서울의 풍경이 완벽하게 달라져 있었다.


잿빛 아스팔트는 차가운 강처럼 보였고,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빌딩들은 거대한 묘비석 같았다. 유리창들은 수천 개의 눈동자가 되어 그녀를 감시했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 뒤에 어떤 욕망과 원한이 숨어 있는지 가늠할 수 없어 소름이 돋았다. 윤도진 형사가 던져준 파일은 가방 속에서 납덩이처럼 무겁게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특수관리대상: 서(徐)씨 모계 무당 가문 관련 사건 파일]


그것은 단순한 서류 뭉치가 아니었다. 그녀가 평생을 외면해 온 가문의 역사이자, 피할 수 없는 저주의 연대기였다. 할머니, 증조할머니, 그 이전의 이름 모를 장녀들... 그들은 모두 ‘백면도깨비’라는 거대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그 어둠이 자신을 다음 제물로 지목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터질 것처럼 복잡했다. 혼란과 공포가 뒤섞여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했다. 이 모든 것을 당장 이모에게, 가문 어른들에게 알려야 할까? 아니.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알면서도 그녀에게 쉬쉬했을 것이다. 그것이 ‘장녀’에게 주어진 숙명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도망쳐야 해.’


본능이 속삭였다. 하지만 어디로? 이 대한민국 땅 어디에 서 씨 가문의 그림자가, 백면도깨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단 말인가. 윤도진의 말이 귓가에 메아리쳤다.


‘당신은... 가장 유력한 다음 타깃입니다.’


결국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가장 깊은 곳으로 숨어야 했다. 신도, 귀신도, 도깨비도 없는 가장 평범하고 속된 공간. 수십, 수백 명의 목소리가 뒤섞여 그 어떤 영적인 소음도 파고들 틈이 없는 곳.


하진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행선지는 그녀의 직장, G&C 고객상담센터였다.




“서하진 씨, 오늘 반차 쓴다고 하지 않았어요? 몸은 좀 괜찮아요?”


팀장의 물음에 하진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져서요. 일해야죠.”


그녀의 자리는 수십 개의 파티션으로 나뉜 공간 중 하나였다. 머리 위로는 형광등이 싸늘한 빛을 쏟아냈고, 사방에서는 온갖 종류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고객의 불평, 동료들의 응대 멘트, 키보드 소리, 전화벨 소리. 이곳은 살아있는 인간들의 욕망과 감정이 들끓는 소음의 용광로였다. 하진에게는 가장 완벽한 방음벽이자 피난처였다.


헤드셋을 끼고 컴퓨터를 켜자, ‘상담 가능’ 상태로 전환하라는 알림이 떴다. 하진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래, 집중하자. 눈앞의 모니터와 귓가의 목소리에만 집중하면 된다. 고객의 불만을 해결하고, 실적을 채우고, 월급을 받고... 그것이 그녀가 선택한 ‘진짜’ 삶이었다.


[띠링-]


첫 콜이 배정되었다. 하진은 미리 준비된 스크립트를 읊조리듯 내뱉었다.


“행복을 드리는 G&C 고객상담센터, 상담원 서하진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수화기 너머로 잔뜩 격앙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와주긴 뭘 도와줘! 당신들 때문에 내가 지금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알아? 당장 책임자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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