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속삭임

by 돌부처

끼이익—.


오래 방치된 쇠붙이가 마찰하며 내는 소리는, 닫혀 있던 세계의 경계선이 찢어지는 비명 같았다. 문틈으로 흘러나온 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그것은 빛과 온기, 소리와 생명, 살아있는 모든 것이 부패한 뒤에 남는 침전물이었다. 코를 찌르는 곰팡내와 묵은 먼지 냄새 사이로,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상한 우유 같은 비릿한 죽음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본능이 온몸의 세포를 일깨워 위험 신호를 보냈다. 닫아라. 돌아서라. 절대로 안을 들여다보지 마라. 이곳은 살아있는 자가 발을 들일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하진의 몸은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문틈으로 보이는 집 안의 풍경이, 마치 거대한 자석처럼 그녀의 시선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사람의 온기가 떠난 공간은 폐허와 같았다. 누군가의 삶이 갑자기 정지된 채 그대로 박제된 현장. 현관 구석에는 흙먼지가 묻은 작은 아이의 운동화가 아무렇게나 벗어져 있었고, 거실은 해가 저문 지 오래인 시간의 어둠에 잠겨 있었다. 창밖에서 스며드는 희미한 도시의 불빛만이 먼지 쌓인 가구들의 실루엣을 유령처럼 비추고 있었다. 그 빛줄기 속에서, 수억 개의 먼지 입자가 죽은 나비처럼 부유했다.


그리고 그 창가에, 아이가 서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만들어낸 착시이거나, 창문에 비친 그림자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형태를 가진 실루엣이었다. 창밖을 내려다보는 작은 아이의 모습. 그러나 살아있는 존재라고 하기엔 모든 것이 ‘틀어져’ 있었다. 몸의 경계선은 물에 번진 잉크처럼 희미했고, 형체는 반투명해서 창밖 가로등 불빛이 아이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보였다.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끔찍했던 어느 순간이 그 공간에 낙인처럼 ‘새겨진’ 잔상. 그것이 하진이 받은 인상의 전부였다.


하진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폐 속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아이의 실루엣은 미동도 없이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며칠째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던 마지막 그 모습 그대로.


“저... 기....”


목구멍에서 간신히 쥐어짜 낸 목소리는 공포로 바싹 말라붙어 있었다. 그 작은 소리가 무덤 같은 정적을 깨뜨리자, 아이의 실루엣이 마침내 반응했다. 마치 아주 오래된 기계가 삐걱거리듯, 아이의 고개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진 쪽으로 돌아왔다.


심장이 갈비뼈 안에서 미친 듯이 요동쳤다. 어둠에 가려 아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두 개의 검고 깊은 구멍이 자신을 정확히 응시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시선이 아니었다. 수십 년의 원한을 품은 망자의 눈빛도, 순수한 악의를 가진 귀신의 눈빛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과 외로움이 담긴 눈이었다.


아이가 하진을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오기 시작했다. 발소리는 없었다. 마룻바닥에 발이 닿아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그저 검은 얼룩이 번지듯, 공기 중을 유영하며 소리 없이 거리를 좁혀왔다. 그 작은 형체가 가까워질수록, 집 안의 물리적인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8월의 열대야가 무색하게, 하진의 입에서는 선명한 흰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뼛속까지 시린 한기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흘렀다.


“오지 마.”


하진은 거의 애원하듯 속삭이며 뒷걸음질 쳤다. 등 뒤로 차가운 벽이 느껴졌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나한테... 오지 말라고!”


그녀의 절규에도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하진의 코앞,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온 아이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어둠 속에서 아이의 얼굴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앳된 얼굴, 동그란 코, 꾹 다문 작은 입술. 살아있었다면 분명 사랑스러웠을 아이였다.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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