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이의 시선

by 돌부처

“내가... 도와줄까?”


그 목소리는 공기를 타고 고막을 울린 것이 아니라, 척추를 타고 올라와 뇌수에 직접 박히는, 영혼의 속삭임이었다. 하진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등 뒤, 바로 어깻죽지 옆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냉기. 그리고 그 냉기의 진원지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어린아이의 목소리.


‘아니야. 없어. 내 뒤엔 아무도 없어.’


하진은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돌아보면 안 된다. 돌아보는 순간, 그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환영이 아닌 실체가 되어 그녀의 삶에 들러붙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녀의 어머니가, 가문의 어른들이 평생을 걸쳐 싸워온 세계의 첫 번째 규칙이었다.


“저리 가!”


하진은 거의 비명을 지르듯 외치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목적지도 방향도 없었다. 그저 등 뒤의 냉기로부터 단 1센티미터라도 더 멀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를 찢을 듯 파고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뒤에서, 바로 등 뒤에서. 죽은 아이의 시선이 비수처럼 날아와 박히는 것 같았다.


마침 빈 택시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며 다가왔다. 하진은 거의 차도로 뛰어들 듯 손을 흔들었다. 끼익, 하고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며 멈춰 선 택시의 뒷문을 열고, 그녀는 거의 몸을 구겨 넣듯 좌석에 쓰러졌다.


“손님, 괜찮으세요? 어딜....”


기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진은 다급하게 외쳤다.


“아무 데나! 그냥... 그냥 가주세요! 빨리요!”


기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넋이 나간 듯한 그녀의 모습에 더는 묻지 않고 차를 출발시켰다. 차가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하진은 그제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창밖으로 낯선 거리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물리적인 속도감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었다. 이만큼 멀어졌으니, 이제 괜찮을 것이다. 그 아이도 더는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스르르....


뒷좌석의 온도가 미세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에어컨 바람과는 차원이 다른,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듯한 섬뜩한 냉기. 하진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다. 옆자리에. 바로 그녀가 앉은자리 옆, 텅 빈 공간에 ‘그것’이 앉아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온몸의 신경세포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손님, 진짜 괜찮으신 거 맞아요? 얼굴이 새하얘.”


백미러를 통해 기사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하진은 차마 옆자리에 귀신이 앉아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네... 괜찮아요. 피곤해서....”


그녀는 필사적으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울의 밤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현란한 네온사인, 자동차의 불빛, 빌딩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빛들. 그 빛의 홍수 속에서 위안을 찾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 옆으로, 희미하게 일그러진 아이의 얼굴 윤곽이 겹쳐 보였다.


‘도와줄까?’


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을 울렸다.


‘뭘? 네가 뭘 어떻게 돕겠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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