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망이 없다고요?”
하진의 귀에는 이모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가망이 없다’는 몇 개의 음절이, 의미 없는 소음이 되어 귓가를 맴돌다 흩어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사흘. 자신이 의식을 잃고 잠들어 있던 시간. 그 시간 동안 그는, 윤도진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사투조차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육신은 살아있으나, 영혼은 이미 백면이 파놓은 깊고 어두운 함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것이다. 의사들이 말하는 ‘원인 불명’의 혼수상태. 그것은 현대 의학이 진단할 수 없는, 영혼의 죽음이었다.
자신 때문이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는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감히 신의 영역에 발을 들였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슬픔보다 더 깊은,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분노와 끔찍한 책임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숨을 막았다.
“그분... 어디 계세요?”
하진이 쉰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링거를 꽂은 팔을 빼내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진아, 안 된다! 너도 아직...!”
이모가 기겁하며 그녀를 말렸지만, 하진의 눈빛을 보고는 이내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눈에는 더 이상 설득이나 만류가 통하지 않을, 강철 같은 의지가 서려 있었다.
윤도진은 바로 옆 중환자실, 가장 안쪽 격리 병실에 누워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그는, 마치 잠든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하진의 눈에는 보였다. 그의 몸을 둘러싼 생명의 기운, 그 영혼의 빛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게 깜빡이고 있는 것이. 그리고 그의 영혼과 육신을 잇는 가느다란 실 위로, 백면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검고 끈적한 저주의 기운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그 마지막 남은 생명력마저 빨아들이고 있었다.
“.......”
하진은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심장 깊숙한 곳, 문지기의 푸른 불꽃이 그의 위태로운 상태에 반응하듯 고통스럽게 일렁였다.
그녀는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깨끗하게 치료된 손. 상처는 아물었지만, 자신의 피로 백면을 심판하던 그 순간의 감촉은 아직 생생했다. 그때의 그 힘. 자신의 생명마저 내던졌던 그 각성의 힘이라면, 어쩌면.
‘안 돼.’
그녀 안의 또 다른 목소리, 문지기의 차가운 이성이 경고했다.
‘네 그릇은 아직 미숙하다. 지금 또다시 무리하게 힘을 사용하면, 너 자신마저 소멸하게 될 것이다. 저 인간의 명(命)은 여기까지다.’
문지기의 말은 냉정했지만, 그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었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윤도진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녀를 지켰고, 이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싫어요.”
하진은 나직이, 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 깃든 위대한 존재를 향해, 처음으로 반항했다.
“이건 내 싸움이에요. 그리고 저 사람은, 그 싸움의 유일한 동료이자 증인이에요. 나 때문에 희생된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고, 나 혼자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어요. 그건... 문지기 당신이 말한 ‘자격’이 없는 행동이잖아요.”
그녀의 말에, 문지기는 침묵했다.
하진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결심했다. 그녀는 중환자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간호사들이 놀라 제지하려 했지만, 그녀의 눈빛에 압도되어 누구도 감히 그녀를 막지 못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