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덫

by 돌부처

홍대의 밤은 낮보다 뜨겁고, 낮보다 위험했다. 해가 지고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부터, 이 거리는 이성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능의 민낯을 드러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이 뿜어내는 열기,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지는 클럽의 베이스 소리, 그리고 골목마다 짙게 배어 있는 싸구려 술 냄새와 매캐한 담배 연기, 땀 냄새가 뒤섞인 공기는 마치 다른 세상의 것 같았다. 이곳은 욕망이 끓어 넘치는 거대한 가마솥이자, 백면이 가장 좋아할 만한 최적의 사냥터였다.


“여기야? 백면의 두 번째 거점이?”


이강우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클럽 입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검은색 대리석 외벽 위에 붉은 네온사인이 핏줄처럼 얽혀 ‘PANDORA’라는 글자를 흉물스럽게 번쩍이고 있었다. 입구에는 오늘 밤의 쾌락을 위해 영혼이라도 팔 준비가 된 듯, 화려하고 노출이 심한 옷을 차려입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입구를 지키는 거대한 덩치의 가드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선별하며, 마치 가축을 등급 매기듯 들여보내고 있었다.


“네. 기운이... 아주 강해요. 단순한 유흥가의 탁한 기운 정도가 아니에요.”


하진은 목에 걸린 옥 조각을 매만지며 말했다. 옥 조각이 미세하게 떨리며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판도라. 이름부터가 불길했다. 그녀의 영적인 시야에는 클럽 입구에서부터 검붉고 끈적한 안개가 뱀처럼 피어올라 밤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안개는 클럽 안에 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흥분과 쾌락, 그리고 타락의 기운을 먹고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악의였다.


“이강우 씨 말이 맞았어요. 이곳 지하 깊은 곳에... 또 다른 지맥 포식자가 자라고 있어요. 놈은 이 클럽 전체를 자신의 밥그릇으로 쓰고 있어요. 사람들의 광기를 먹이로 삼아서요.”


“미친놈들. 하필이면 클럽이라니. 아주 대놓고 뷔페를 차려놨구만. 젊은 피가 놈들한테는 보약일 테니까.”


윤도진은 혀를 차며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이미 정보원들을 통해 이곳이 신종 마약 유통의 온상이자, 최근 강북 지역에서 발생한 연쇄 실종 사건의 피해자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실종자들은 모두 20대 초반의 건강한 남녀들이었고, 클럽에 들어가는 모습은 CCTV에 찍혔으나 나오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작전대로 갑시다. 하진 씨와 나는 손님으로 위장해 정문으로 잠입해서 VIP 구역을 확보하고, 이강우 씨는 뒷문으로 들어가 지하 기계실과 환풍구를 확보해 주시오. 그곳이 지맥 포식자의 둥지와 연결된 숨겨진 통로일 가능성이 큽니다.”


“오케이. 간만에 몸 좀 풀어볼까. 이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내 심장 박동이랑 딱 맞거든.”


이강우는 씨익 웃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움직임은 고양이처럼 은밀하고 빨랐다.


하진과 윤도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클럽 드레스 코드에 맞춰 평소라면 절대 입지 않을 옷으로 제법 화려하게 차려입은 상태였다. 하진은 짙은 스모키 화장에 등이 파인 검은색 반짝이는 미니 드레스를, 윤도진은 낡은 형사 점퍼 대신 가죽 재킷에 찢어진 청바지, 그리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지금은 생존을 위한 위장이었다.


“준비됐소?”


“네. 가요.”


두 사람은 연인인 척 팔짱을 끼고 클럽 입구로 향했다. 입구를 지키던 가드가 선글라스 너머로 그들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은 하진의 몸을 훑고, 윤도진의 덩치를 가늠했다. 그는 무전기에 대고 짧게 무언가를 말하더니, 무심하게 벨벳 로프를 열어주었다.


클럽 내부는 말 그대로 지옥도와 다름없었다. 터질 듯한 전자 음악 소리에 심장이 제멋대로 뛰었고, 현란하게 돌아가는 사이키 조명 아래서 수천 명의 사람들은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몸을 비비며 광란의 춤을 추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땀 냄새와 짙은 향수 냄새, 알코올 냄새,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달콤하고 비릿한 향기가 섞여 있어 숨을 쉴 때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 냄새....’


하진은 저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그것은 단순한 방향제가 아니었다.


‘환각제예요. 백면의 기운이 섞인...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욕망을 극대화하는 향이에요. 이걸 맡으면 공포심은 사라지고 쾌락만 남게 돼요.’


그녀는 윤도진에게 귓속말로 다급하게 속삭였다. 윤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 온 해독제가 든 사탕 두 개를 꺼내 하나를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


“입에 물고 절대 뱉지 마시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사탕에서 퍼지는 씁쓸한 맛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두 사람은 춤추는 인파를 헤치고 스테이지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사람들은 서로의 몸을 탐닉하거나 허공을 향해 소리 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모두 풀려 있었고,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 보였다. 마치 좀비 떼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VIP 룸이 있는 2층이었다. 정보에 따르면, 실종된 사람들은 모두 ‘특별한 파티’에 초대되어 그곳으로 들어갔다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 입구는 덩치 큰 가드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일반 구역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삼엄한 경계였다.


“여기서부터는 일반인은 출입 금지입니다.”


가드가 거대한 손바닥으로 윤도진의 앞을 막아섰다.


“초대받았어. 사장님 친구인데. 오늘 특별히 물 좋은 애들 데리고 오라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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