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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사무실은 지뢰밭이다

송년회라는 이름의 시한폭탄

by 돌부처

찬 바람이 불고 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지면, 사무실의 공기는 묘하게 들뜨기 시작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안도감, 다가올 새해에 대한 막연한 기대, 그리고 무엇보다 '송년회'라는 이름의 거대한 이벤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더들은 말합니다.
"일 년 동안 고생 많았으니, 오늘만큼은 계급장 떼고 회포를 풉시다."
"오늘의 드레스 코드는 파티룩입니다. 마음껏 즐기세요!"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 '즐기자'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함정인지를. 12월의 사무실과 회식 장소는 1년 중 가장 경계가 느슨해지는 곳이자,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사고가 터지는 지뢰밭입니다. 평소 이성적이었던 동료가 술에 취해 울분을 토하고, 점잖았던 상사가 선을 넘는 농담을 던지며, 억눌러왔던 사내 연애의 감정이 폭발하기도 합니다.


술과 분위기에 취해 잠시 잊고 있었던 '오피스 빌런'들의 본성이 가장 화려하게 만개하는 시간. 오늘 우리는 펜실베이니아의 제지 회사에서 열린 한 크리스마스 파티의 난장판을 통해, 연말의 들뜬 분위기가 어떻게 조직을 파괴하고 개인의 흑역사를 생성하는지, 그리고 이 위험한 축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시트콤 <오피스>의 한 에피소드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리더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직원들이 만들어낸 최악의 파티를 보여줍니다.


새롭게 지점장이 된 앤디는 인정 욕구가 강한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전 지점장들보다 훨씬 세련되고 '쿨한' 리더임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는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에 자신의 새로운 여자친구를 데려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직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어서"였지만, 진짜 속내는 "나 이렇게 예쁘고 능력 있는 여자친구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유치한 욕망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사무실에 그의 전 여자친구인 접수원이 근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아직 이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눈치 없는 지점장은 전 여자친구 앞에서 현 여자친구와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며, 심지어 "우리 잘 어울리지 않냐?"며 동의를 구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자신이 '공과 사를 쿨하게 구분하는 할리우드 스타일'이라고 착각하지만, 직원들 눈에는 그저 '배려심 없고 잔인한 전 남친'일 뿐입니다.


상처받은 접수원은 결국 술에 손을 댑니다. 파티가 무르익을수록 그녀의 취기는 오르고, 억눌러왔던 질투와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지점장의 새 여자친구에게 시비를 걸고, "내 새해 소원은 당신이 불행해지는 거야"라며 악담을 퍼붓습니다. 파티장은 순식간에 살얼음판이 됩니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것은 새로 부임한 괴짜 CEO입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에 가까운 애주가로, 파티 내내 직원들에게 독한 술을 권하며 기괴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그는 술에 취해 직원들을 비아냥거리고, 사무실을 배회하며 셔츠를 벗어던지는 기행을 저지릅니다. 최고경영자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자, 중간 관리자들은 그를 말리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합니다.


이 파티에는 '즐거움'이 없습니다. 리더의 과시욕, 직원의 상처받은 감정, 그리고 알코올이 만들어낸 혼돈만이 있을 뿐입니다. 지점장은 파티를 망친 접수원을 징계하려 하지만, 사실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회사 파티에 애인을 데려와도 된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준 본인이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연말 파티가 가진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업무의 연장선인 회식 자리에 사적인 감정과 관계가 개입되는 순간, 그리고 그 경계를 잡아줘야 할 리더가 오히려 선을 넘는 순간, 축제는 재앙이 됩니다.




한국의 송년회에서 가장 흔하게 들리는 건배사가 있습니다.


"자, 오늘은 계급장 떼고 야자타임 한번 합시다!"


술기운이 오른 부장님이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호기롭게 외칩니다. 평소 억눌려 있던 대리와 사원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그동안 쌓인 불만을 농담처럼 털어놓습니다.


"부장님, 솔직히 저번에 그 지시는 좀 아니지 않았습니까? 하하."

부장님도 허허 웃으며 받아줍니다.

"그래, 내가 미안하다. 한 잔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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