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
서울의 북쪽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도봉산. 거대한 화강암 암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수려한 계곡이 흐르는 명산이지만, 그날 밤의 도봉산은 산이 아닌 거대한 무덤, 혹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진 지옥도처럼 보였다. 산 전체를 칭칭 감고 있는 짙은 안개는 달빛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그 안개 속에서는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죽음과 같은 적막만이 무겁게 깔려 있었다. 숲의 나무들은 잎을 다 떨군 채 앙상한 뼈대만 남아, 마치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의 형상처럼 기괴하게 비틀려 있었다.
“여기... 기분이 아주 더러워. 습하고, 차갑고, 끈적거려. 마치 물속에... 아니,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시궁창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이강우가 산 입구에 서서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는 평소의 껄렁함과 여유 대신,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영적인 감각이 없는 그조차도 피부에 와 닿는 축축하고 불길한 한기를 뼛속까지 느낄 수 있었다. 방수 점퍼 위로 맺히는 물방울들이 투명하지 않고 왠지 모르게 검게 보였다.
“현무(玄武)의 영역이에요. 현무는 북쪽을 지키는 신이자, 물과 겨울, 그리고 죽음을 관장하죠. 원래는 생명의 끝과 시작을 연결하는 신성한 기운이어야 하는데, 현무가 오염되었다면... 이곳은 산이 아니라, 산 사람을 거부하고 죽음을 부르는 거대한 늪지대나 다름없어요.”
하진은 목에 걸린 옥 조각을 꺼내 들었다. 옥 조각은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고, 표면에는 맑은 이슬 대신 검고 탁한 물방울 같은 것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현무의 깊은 슬픔과 고독, 그리고 백면이 심어놓은 독기가 응축된 눈물이었다.
“조심해야 합니다. 이번 적은 불처럼 눈에 보이는 게 아닙니다. 서로 떨어지지 마십시오.”
윤도진이 경고하며 야간 투시경을 착용하고 권총을 점검했다. 그의 손에는 긴장으로 인한 땀이 배어 있었다. 그는 탄창을 확인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세 사람은 안개 속으로, 검은 입을 벌린 산속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산길은 험하고 미끄러웠다. 바위마다 검은 이끼가 껴 있어 밟을 때마다 미끌거렸고, 흙은 물기를 잔뜩 머금어 질척거렸다. 걸을 때마다 땅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어디선가 썩은 물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쉿. 들려요?”
한참을 오르던 하진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졸졸거리는 맑은 계곡물 소리가 아니었다. 거대한 강물이 지하 깊은 곳에서 으르렁거리는 듯한, 낮고 위협적인 소리였다. 마치 산 전체가 거대한 물 위에 떠 있는 배처럼 출렁거리는 느낌이었다.
“도봉산에 이런 큰 물줄기가 있었나? 며칠 전 비가 오긴 했지만, 이 정도 수량은 아닐 텐데.”
윤도진이 의아해하며 지도를 확인했지만, 지도에는 그들이 있는 곳에 계곡 표시조차 없었다.
“아니요. 이건... ‘흑수(黑水)’예요. 죽은 자들이 건너는 강, 삼도천의 물이 현무의 오염된 기운을 타고 지상으로 역류하고 있는 거예요. 산의 맥이 끊기고, 그 빈자리에 저승의 차가운 물길이 들어차고 있어요. 이대로 두면 산 전체가 물에 잠길지도 몰라요.”
하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산이 죽어가고 있었다. 생명이 있어야 할 자리에 죽음이 들어차고 있었다.
그때, 짙은 안개 속 사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스슥. 질퍽... 스스슥.
바닥을 기어 다니는 소리. 젖은 흙을 헤치고 나오는 소리. 하나둘이 아니었다. 수십, 수백 마리의 무언가가 그들을 천천히 포위해오고 있었다. 안개 사이로 수많은 붉은 점들이 반딧불처럼 깜빡였다. 그것은 짐승의 눈이었다.
“온다! 발밑 조심해! 뭔가 온다!”
이강우가 소리치며 단검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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