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겨울, 어디선가 뭔가를 굽는 냄새가 난다.
'곰장어 굽는 냄새 같네, 요즘은 포장마차가 없어'
한잔 술이 생각날 때 아주 오래전의 한 포장마차가 생각난다.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 늦은 밤 가로등도 노오랗고 밝지 않던 길을 걸을 때의 일이었다.
얼큰한 국물에 소주 한잔이 생각나던 쌀쌀한 날씨에 골목길 입구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꼬마가 있었다.
노오란 가로등 불빛은 골목길 입구만 살짝 비춰줄 뿐 골목길 안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이 새벽에, 이 쌀쌀한 날씨에 이 꼬마는 왜 여기 앉아 있을까?'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서자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8살쯤 되어 보이는 하얀 얼굴의 남자 꼬마가 도로 한쪽을 보면서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아주 작은 소리로 흐느끼다가 이내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나 바라보던 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꼬마 혼자 어디를 가는 것일까, 호기심 반 걱정 반 하는 마음으로 멀찍이서 뒤를 따라가 보았다. 얼마를 걸었을까, 저 멀리 포장마차 하나가 보이고, 이미 먼저 몸을 녹이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꼬마는 포장마차 안에 머리를 쑥 넣고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뒤를 따라 포장마차로 들어서니 밝은 백열전구 등 아래 술에 취한 남자들이 앉아 있었고, 꼬마는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헤에 하면서 여주인을 보고 웃고 있었다. 그리고 여주인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이 잘 보이는 한쪽 구석에 앉아 소주 한 병과 곰장어를 주문했다.
"왜 나왔어, 추운디. 엄마가 여 오지 마라고 했냐 안 했냐"
"혼자 있으믄 무서워서 나왔는디, 아줌마가 이제 잠잘 시간이라고 방에 혼자 가서 자라고 하던디"
꼬마는 훌쩍이면서 말을 이어갔고, 여주인은 굳은 얼굴로 빠르게 국수를 하나 말아 내온다.
"이거 먹고 들어가라잉, 낼 학교 가야항께"
그제야 꼬마는 생글거리면서 내 앞자리에 앉아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젓가락질을 몇 번이나 했을까, 그새 또 손님이 들어온다. 자리가 없어 나가려는 손님을 여주인은 붙잡고 꼬마에게 빨리 집에 가라고 작은 목소리로 채근한다.
"언능 집에 들어가 있어, 엄마 곧 갈게"
꼬마는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얼굴로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고 포장마차를 나섰다. 여주인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연탄 불 앞으로 향했다. 포장마차 안은 내가 주문했던 곰장어가 타는 냄새와 연기가 자욱했고, 여주인은 매캐한 연기에 눈이 매운 탓인지 연신 눈을 훔치며 곰장어를 뒤집었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물방울이 연탄 불로 떨어질 때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더 피어올랐고, 여주인의 눈은 점점 더 매워져 갔을 것이다.
아직도 겨울이 시작되어 차가운 공기를 마실 때, 어디선가 뭔가를 태우느라 매캐한 냄새가 날 때면, 그 오래전 노오랗던 가로등길 아래 혼자 숨죽여 흐느끼던 아이와 굳은 얼굴로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빠른 손놀림으로 안주를 준비하던 그 여주인이 생각나곤 한다.
아마도, 그날 그 꼬마가 눈물 흘리며 앞서 돌아갔던 그 노오란 가로등길 아래에서는, 포장마차의 고달픈 하루를 끝내고 뒤 따라 돌아가는 여주인의, 그제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토해내는 울음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기억의 한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