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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부처 Dec 24. 2024

포장마차

차가운 겨울, 어디선가 뭔가를 굽는 냄새가 난다.

'곰장어 굽는 냄새 같네, 요즘은 포장마차가 없어' 

한잔 술이 생각날 때 아주 오래전의 한 포장마차가 생각난다.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 늦은 밤 가로등도 노오랗고 밝지 않던 길을 걸을 때의 일이었다.

얼큰한 국물에 소주 한잔이 생각나던 쌀쌀한 날씨에 골목길 입구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꼬마가 있었다. 


노오란 가로등 불빛은 골목길 입구만 살짝 비춰줄 뿐 골목길 안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이 새벽에, 이 쌀쌀한 날씨에 이 꼬마는 왜 여기 앉아 있을까?'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서자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8살쯤 되어 보이는 하얀 얼굴의 남자 꼬마가 도로 한쪽을 보면서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아주 작은 소리로 흐느끼다가 이내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나 바라보던 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꼬마 혼자 어디를 가는 것일까, 호기심 반 걱정 반 하는 마음으로 멀찍이서 뒤를 따라가 보았다. 얼마를 걸었을까, 저 멀리 포장마차 하나가 보이고, 이미 먼저 몸을 녹이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꼬마는 포장마차 안에 머리를 쑥 넣고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뒤를 따라 포장마차로 들어서니 밝은 백열전구 아래 술에 취한 남자들이 앉아 있었고, 꼬마는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헤에 하면서 여주인을 보고 웃고 있었다. 그리고 여주인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이 잘 보이는 한쪽 구석에 앉아 소주 한 병과 곰장어를 주문했다. 

"왜 나왔어, 추운디. 엄마가 여 오지 마라고 했냐 안 했냐"

"혼자 있으믄 무서워서 나왔는디, 아줌마가 이제 잠잘 시간이라고 방에 혼자 가서 자라고 하던디"

꼬마는 훌쩍이면서 말을 이어갔고, 여주인은 굳은 얼굴로 빠르게 국수를 하나 말아 내온다. 

"이거 먹고 들어가라잉, 낼 학교 가야항께"

그제야 꼬마는 생글거리면서 내 앞자리에 앉아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젓가락질을 몇 번이나 했을까, 그새 또 손님이 들어온다. 자리가 없어 나가려는 손님을 여주인은 붙잡고 꼬마에게 빨리 집에 가라고 작은 목소리로 채근한다. 

"언능 집에 들어가 있어, 엄마 곧 갈게"


꼬마는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얼굴로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고 포장마차를 나섰다. 여주인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연탄 불 앞으로 향했다. 포장마차 안은 내가 주문했던 곰장어가 타는 냄새와 연기가 자욱했고, 여주인은 매캐한 연기에 눈이 매운 탓인지 연신 눈을 훔치며 곰장어를 뒤집었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물방울이 연탄 불로 떨어질 때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더 피어올랐고, 여주인의 눈은 점점 더 매워져 갔을 것이다. 


아직도 겨울이 시작되어 차가운 공기를 마실 때, 어디선가 뭔가를 태우느라 매캐한 냄새가 날 때면, 그 오래전 노오랗던 가로등길 아래 혼자 숨죽여 흐느끼던 아이와 굳은 얼굴로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빠른 손놀림으로 안주를 준비하던 그 여주인이 생각나곤 한다. 


아마도, 그날 그 꼬마가 눈물 흘리며 앞서 돌아갔던 그 노오란 가로등길 아래에서는, 포장마차의 고달픈 하루를 끝내고 뒤 따라 돌아가는 여주인의, 그제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토해내는 울음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기억의 한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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