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에서 만난 엄마,
그리고 지금의 나

서툴러도 '진심인 딸'이 되려고 한다. 그 진심이 언젠가 엄마에게 닿기를

by 파아랑

국민학교 1학년, 여동생과 함께 아버지 손을 꼭 붙잡고 서울로 올라오던 날이 생생하다. 서울은 낯설었고, 골목길은 좁았으며 그 길 끝에 낯선 여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인이 내 엄마였다. 엄마는 우리가 서울로 오기 전부터 홀로 몸을 부려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처음 본 얼굴은 아니었지만 낯설었다. 그날 나도 모르게 아버지 손을 꼭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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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삶, 목욕탕의 시간들

아버지는 세상에 기대할 곳이 없어 술에 기대셨고 엄마는 목욕탕에 몸을 맡겼다. 엄마에게 남은 건 건강한 몸뚱이 하나.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엄마는 목욕탕에서 때를 밀었다.


나는 엄마를 도와 밥을 들고 갔고, 때로는 청소도 함께 했다. 엄마는 밥 한 숟갈 제대로 뜰 시간도 없이 손님의 등을 밀었다. 엄마가 "고맙다"하고 나를 돌아볼 때, 어린 나는 어쩐지 마음이 아팠다.


때론 귀찮다고, 피곤하다고 목욕탕 청소를 거르면 엄마는 집에 더 늦게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도우러 나섰다. 그건 엄마를 사랑해서였고, 또 엄마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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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와 가느다란 다리

시간이 흘렀다. 이제 엄마는 손주를 여섯 해나 본 할머니다. 삐걱이는 무릎, 휘청이는 걸음, 조금만 움직여도 가쁜 숨. 흰머리는 점점 늘고, 뼈마디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았다. 그런 엄마를 보면 '이제는 내가 돌봐드려야지'하는 마음이 생긴다.


엄마와의 거리, 나의 감정

나는 장녀다. 항상 참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고생한 만큼, 나도 더 잘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효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와의 관계는 나에게 늘 어렵고 복잡하다. 장남 노릇과 엄마를 모셔야 한다는 책임감에 힘들어했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은 세지고, 무조건 듣고 참기만 하던 내 마음은 상처로 가득 찼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효도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지키면서도 주는 사랑이어야 한다는 알게 됐다. 그러지 못하면 나도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이 관계를 '애증'이라고 부른다.


엄마에게 아직 못 한 말

"엄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이 한마디를 아직 못 했다. 쑥스럽기도 하고, 너무 늦은 것 같기도 하고,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하고 싶다. 골목길에서 낯설게 서 있던 그날의 엄마에게, 목욕탕에서 바쁘게 일하던 엄마에게, 흰머리 가득한 지금의 엄마에게 엄마와 함께 따뜻한 밥 한 끼 먹으며, 그 말을 꺼내고 싶다.

"엄마, 사랑해요. 많이 늦었지만,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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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이해.

살면서 우리 모두는 복잡한 관계를 경험한다. 특히 부모와의 관계는 너무 가깝기에 상처도 깊다. 하지만 그만큼 사랑도 깊다. 나도, 엄마도,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해 왔다. 이제는 그 사랑을 부드럽게 꺼내 놓을 시간이 아닐까. 모든 딸이 엄마에게 '예쁜 딸'일 수는 없지만 서툴러도 '진심인 딸'이 되려고 한다. 그 진심이 언젠가 엄마에게 닿기를, 나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