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9개월의 발자취가 남긴 감사와 새로운 설렘
38년 9개월이라는 시간을 한 직장에서 보냈습니다. 숫자로는 단순히 긴 세월 같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 크고 작은 성취, 그리고 나 자신과의 싸움이 녹아 있습니다. 이제는 정년을 앞두고 공로연수라는 새로운 문턱에 서 있습니다. 마음 한켠은 아쉽고, 또 다른 한켠은 설렘으로 가득합니다. 이 글은 그 길을 걸어온 한 사람의 작은 기록이자, 앞으로 걸어갈 길을 향한 다짐입니다.
1. 38년 9개월의 발자취
고등학교 졸업 후 무역회사에서 짧게 일을 배우고, 공공기관으로 발걸음을 옮긴 지 어느덧 38년 9개월.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부장 자리까지 올랐다는 것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타이프 치는 일, 책상 닦고 재떨이 비우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 세대에겐 낯설지만, 그때는 당연했던 하루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여성 직원에게도 승진의 기회가 열렸고, 결국 부장이 되어 정년을 맞이하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나는 성실하게 일했지만, 소위 잘 나가는 사람처럼 능숙하게 업무를 해내며 주위의 인정까지 받는 모습은 부족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도 무사히 이 길을 완주할 수 있었음에, 그리고 직장이 내 삶의 뿌리와 같은 존재였음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2. 놓쳐버린 것과 새로 찾은 것
직장생활 사이사이 결혼도 하고, 자녀를 장가보내며 인생의 큰 고비들을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오래도록 알지 못했습니다. 취미 하나 없었다는 점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만약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붙잡았다면 전문가 못지않게 깊어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이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서툴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입하는 순간이 생깁니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게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4개월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길 끝에 답이 있든 없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림이 내 삶을 환하게 밝혀주는 작은 등불 같습니다.
3. 공로연수, 그리고 그 이후의 길
며칠전 인사부에서 공로연수 신청 메일을 받았을 때,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고 싶던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스며드는 아쉬움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계획을 세워야지 하면서도 “무계획이 계획”이라며 미뤄두는 내 모습이 웃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대사처럼, 인생은 늘 새로운 챕터가 기다리고 있는 법이지요.
세상을 조금 더 느슨하게 기대며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고 나답게. 아직은 막연한 그림일지라도, 분명 그 길 위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될 겁니다. 이제는 직장이 아닌,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나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 내려가면 되니까요.
“나이가 드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또 다른 시작이다.” – 소포클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