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 왕다이아 반지
혼자 계신 친정 엄마가 다단계에 빠지셨다. 그곳에서는 공짜 선물을 준다며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고, 값싼 물건을 좋은 제품이라 속여 판매한다. 우리 집 근처 혼자 살고 계신 엄마 집 현관에는 한동안 받은 휴지, 라면, 설탕 등이 쌓여 있었다. 두 딸들이 오길 손꼽아 기다리듯이.
우리가 가면 엄마는 아이처럼 들뜬 표정으로 그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이며 가져가 쓰라고 건넨다. 그때마다 두 딸은 손사례를 치며 “필요 없는 물건“이라며 화를 냈다. 친정엄마가 다단계에서 산 물건들은 품질이 떨어지고 AS조차도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더 저렴한 물건일 것 같은데 비싼 돈을 주고 사신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그때마다 친정엄마에게 화내고, 친정엄마는 죄인인 양 듣고 계셨다.
며칠 전 다단계 다니는 것에 대해 짜증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 친정엄마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내 나이 84세인데 지금까지 고생하면서 살았다. 생활력 없는 네 아버지를 대신해서 30여 년을 목욕탕 세신사로 일하며 너희를 키웠다. 아끼고 또 아껴 한평생 이렇게 살았는데 나도 즐기고 싶다. 거기 가면 웃게 해 주고 즐겁게 해 주니 가고 싶다. 동네 할머니도 다 그곳에 가서 친구도 있다. 그래서 나도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너희가 나를 즐겁게 해 줬냐. 공짜로 물건도 주고 그러면 미안해서 몇 개는 사주고 싶다. 엄마는 너희가 가끔 같이 밥 먹자라고 하는 게 행복이다. “라고 했다.
엄마가 갖고 싶은 것이 있었나? 물건을 산 적이 있었나? 집안에 변변한 장식품 하나 없고, 입고 계신 옷도 오래된 것뿐이다. 20년 이상 사용한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고장 나도 쉽게 바꾸지 못하던 세월. 평생을 아껴 쓰고, 고쳐 쓰며 살았던 삶이었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그래 맞아. 엄마는 비싼 거 사는 것도 아니고 가면 만 원이나 이만 원 쓰는 거잖아. 다단계에 가서 또래 할머니들과 웃고 즐기는 게 소소한 행복이라면 가셔도 돼. 대신 건강식품이나 전자제품은 사지 말고, 신신당부하면서 즐겁게 놀다 오세요라고 말했다.” 무심한 말이었는데, 친정엄마는 환하게 웃으셨다. 그 웃음이 그렇게 예쁜 줄, 나는 그제야 알았다.
얼마 전 두 딸과 함께 식당에 갔다. 아픈 허리를 붙잡고 몇 걸음 쉬어 가며 걸으시는 엄마를 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은 늘 거칠었고 물에 불어 있었다. 그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내 손을 잡아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준비해 간 작은 선물을 꺼냈다. 반짝반짝 빛나는 5캐럿짜리 다이아는 아니지만, 문방구에서 산 예쁜 반지였다. 엄마 손가락에 끼워 드리자 엄마는 소녀처럼 웃으셨다.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아도 되냐…” 그 순간 깨달았다. 엄마가 원했던 것은 값비싼 보석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고, 자신을 기억해 주고,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 주는 그 마음이었다는 것을.
문방구에 산 싸구려 반짝임보다 엄마의 손등 위에 맺힌 눈물이 더 맑고, 더 빛났다. 이제 나는 안다. 엄마의 반지는 금도, 다이아도 아니다. 평생을 버텨낸 시간과, 자식이 건넨 작은 마음 하나가 엄마를 가장 빛나게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