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마음에게 말을 걸어올 때

2026년을 맞이하며

by 로코라헬


통증이라는 밀실을 나서며, 2026년을 맞다


12월 내내 나의 세계는 멈춰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넘어가는 소란스러운 세상의 풍경과는 달리, 나의 시간은 오직 통증의 주기를 따라 흘렀다.


흔히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찬양할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지난 한 달, 나에게 그 명제는 철저히 뒤집혔다.


"정신은 육체가 지배한다."


그것이 나의 처절한 현실이었다.


의학적 진단명은 '다발성 허리 디스크와 좌측 하지 마비감'.

여러 곳에서 튀어나온 디스크가 하필 가장 예민하다는 '배측신경절'을 건드려 염증을 일으키고

신경을 누른 탓이었다.


다행히 가장 거세게 타오르던 통증이라는 불길은 잡혔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남은 재처럼, 아직 다리에 힘이 온전히 들어가지 않는 '먹먹한 후유증'을 견디는 중이다.


신경이 무뎌져 내 다리가 내 것 같지 않은 낯선 감각.

나는 지금 그 낯선 시간을 힘겹게 통과하고 있다.


어떤 소설가는 "고통은 세상의 문을 닫게 만든다"고 했다.

몸이 아플 때 가장 무서운 형벌은 통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통증이 가져오는 지독한 폐쇄성이다. 창밖의 계절이 어떻게 변하는지, 타인이 어떤 안부를 묻는지에 대해 마음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오직 나의 아픈 부위, 나의 고통에만 온 신경이 곤두선다. 그렇게 세계는 내 몸 하나로 축소된다.


그 좁은 밀실에 갇혀 있을 때, 나는 생전 처음으로 낯선 두려움과 직면했다.

나는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별다른 두려움이 없던 사람이었다. 세월이 흐르면 주름이 지고, 걸음이 느려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 여겼다.


하지만 이번 겨울 내가 마주한 공포는 '마음이 늙는다는 것'이었다.

육체가 자유를 잃자 마음도 움직임을 멈췄다. 외부의 어떤 결에도 관심이 없어지고, 감각은 무뎌졌으며, 호기심은 증발했다.


육체의 무력함이 지속되자, 노력하지 않으면 마음마저 순식간에 낡아버릴 것 같다는 서늘한 자각.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은 그의 시 <청춘(Youth)>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을 만들지만, 열정을 잃어버리는 것은 영혼에 주름을 만든다. (Years may wrinkle the skin, but to give up enthusiasm wrinkles the soul.)"


거울 속 내 얼굴의 주름보다, 고통에 짓눌려 영혼에 깊게 패여가는 주름이 더 견딜 수 없이 무서웠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로 늙어버린 마음을 안고 남은 생을 살게 될까 봐.


그 무렵이었다.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가족 여행 날짜가 다가온 것은.

그동안 가족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 온 남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평소 같았으면 설렘으로 가방을 쌌을 테지만, 중심 잡기도 힘든 다리를 보며 나는 주저했다.


하지만 이 귀한 시간을 아픈 나 때문에 미루기엔 가족들의 시간이 너무도 소중했다.


나는 짐 가방 한구석에 갖가지 비상약을 탄약처럼 쟁여 넣었다. 그것은 여행 준비라기보다, 용기조차 사라져버린 차가운 마음에 억지로 불을 지피는 의식에 가까웠다.


"가보자. 가서 아프더라도, 밖에서 아프자."


그렇게 길을 나섰다. 여행 내내 가족들은 느려진 내 걸음 보폭에 맞춰주었고, 나의 통증을 세심히 살폈다. 나는 그 배려 속에서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금, 냉정하게 말해 내 몸 상태가 기적처럼 나아진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손상된 신경의 감각을 깨우기 위해 아픈 다리에 힘을 주는 연습을 해야 하는 환자다.

하지만 분명히 변한 것이 있다. 내 안에 다시 '에너지'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잿빛으로 죽어있던 마음에 어떻게 다시 불이 켜진 걸까.


아마도 그것은 내가 '통증'이라는 1인용 감옥을 걸어 나와 타인과 연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눈을 맞추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웃었던 그 온기가 굳어가던 내 마음의 혈관을 다시 뛰게 했다.


마음이 늙지 않으려면, 영혼에 주름이 지지 않으려면, 육체가 비록 비명을 지를지라도 결국은 세상 속으로, 사람 속으로 걸어 나가야 함을 배운다.


2026년, 나는 여전히 먹먹한 다리를 주무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더 이상 두렵지는 않다.

내 마음은 이제 다시 열정을 향해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움직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