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무용(無用)의 선물

by 로코라헬


명품의 광택은 결제하는 순간부터 사그라들지만,

여행의 빛깔은 기억 속에서 박제되지 않고 끊임없이 일렁인다.




누군가 내게 생의 선물을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여행'이라 답하고 싶다.


손에 쥐어지는 물건들은 소유하는 즉시 낡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선명한 채도를 얻는다.


이름 모를 골목에서 마주친 빛의 각도,

코끝을 스치던 낯선 공기의 농도 같은 것들.


그것들은 내 안에서 빛바래지 않는 유일한 영원이다.


사실 '여행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 앞에 서면 문장은 자주 길을 잃는다.


여행은 실용적이지 않다.

투입한 비용만큼의 명확한 보상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며,

돌아온 뒤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개조되는 일도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독한 '쓸모없음'이 나를 살게 한다.



정답도 목적도 없는 행위가 도리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역설.

아무런 효용 가치가 없는 시간이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그리고 가장 나답게 숨 쉬게 한다.


오늘도 나는 운동화 끈을 고쳐 맨다.


차곡차곡 짐을 채운 트렁크의 무게를 느끼며, 오렌지꽃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먼 고장을 상상한다.


설령 오늘 나의 발이 현관문을 넘어서지 못할지라도 괜찮다.

그 꿈속을 유영하는 시간만으로도 나의 계절은 이미 충분히 찬란하므로.




여행 노트

공간의 결: 낡은 트렁크 속 겹겹이 쌓인 설렘의 무게


순간의 온도: 운동화 끈을 묶을 때 손가락 끝에 머무는 단단한 결심


나의 질문: 실용적인 것들로만 채워진 삶은 과연 풍요로운가?



"이 쓸모없는 풍요로움을 조금 더 가까이 곁에 두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직 오지 않은 내년의 달력을 미리 넘겨본다.


2027년 4월,


그 반짝이는 마침표를 향한 기록을 이제 막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