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홍콩에서 선전까지, 공항을 달리며 시작된 동유럽

여행을 장착한 여자

by 로코라헬


통증

죽음의레이스 홍콩



여행에는 반드시 통증의 순간이 있다.

익숙함이 깨질 때,

낯선 공기가 폐 속을 스칠 때,

그때 비로소 여행이 ‘나’를 깨운다.






14박 17일의 유럽 여행 일정을 펼쳐놓고 있을 때였다.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너는 참, 이른 나이에 딸 덕을 보는구나.”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아닌 게 아니라, 돌이켜보면 나는 어린 딸의 덕을 톡톡히 보는 초보 여행자였다.
세상 밖으로 나를 이끌어낸 사람도, 낯선 도시에서 길을 읽어준 사람도 딸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시작된 딸의 ‘해외여행 바람’은
뜻밖에도 나를 동행인으로 선택하면서 시작됐다.


제법 큰살림을 꾸려야 했고, 남편을 두고 어디를 간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나였다.
삶의 무게를 효율성으로 버티며 살아온 세월 동안,
‘여행’은 내게 너무 먼 단어였다.


그런데 대학생이 된 딸이
무장해제시키는 열쇠처럼 내 삶의 자물쇠를 열어버렸다.


가끔은 여행 경비의 일부를 스스로 보태며,
어쩔 땐 엄마의 몫까지 나눠 감당하려는 마음을 보였다.

물론 내가 치르는 몫이 더 컸지만,
그 마음이 고마워
기꺼이 그 여정에 발을 맞췄다.


두 분의 할머니들은
“참, 이른 나이에 딸 덕을 본다”며 웃으셨다.

그 미소에는 부러움이 스며 있었다.

젊은 날엔 감히 꿈꾸지 못했던 여유,
딸과 함께 세상을 걷는 순간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


그 시절의 그분들은

자신을 미뤄야 했고, 세상의 넓이를 몸으로 느낄 틈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딸이,
그 시절 자신이 서보지 못한 자리에 서 있었다.

부러움은 그래서 더 깊었고 따뜻했고, 그 눈빛엔 뜨거운 격려가 깃들어 있었다.


마치 ‘이제는 네가 나 대신 다녀오렴’
하고 말하는 듯했다.




홍콩은 내 여행의 첫 통증이었다.

길을 잃고, 뛰고, 후회하고, 다시 살아나던 순간.

그 통증 덕분에 나는 여행을 진짜 ‘느끼기’ 시작했다.





인천에서 심천까지, 그리고 첫 미션



이번 여정은 아시아나 OZ371편으로 문을 열었다.
오전 10시 출발이라,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에서 7시 10분 공항버스를 타고 부지런히 이동.
출발부터 매끄러웠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심천(SZX)에 내려 짐을 보관하고, 홍콩에 들렀다가 다시 돌아오는 ‘레이오버 플랜’.

알리페이 설정, 옥토퍼스 카드, 고속열차 예약까지… 서류상으로는 완벽했다.


서류 밖의 세상만 빼고.



보너스 에피소드: 옥토퍼스 카드 사건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설레게 마련이다.
이륙하는 비행기 창밖으로 구름이 펼쳐질 때,
나의 머릿속은 이미 낯선 도시의 풍경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그때 문득,
인천 제2터미널에서 수령해야 했던 옥토퍼스 카드를 깜빡했다는 사실이
하늘 위에서 떠올랐다


“수령 못 하면 환불 가능”이라는 문구를 보며
‘그걸 누가 잊어?’ 했던 바로 그 내가, 그걸 잊었다.

여행은, 나를 너무 잘 알게 만드는 스포츠다.
가끔은 웃으면서 인정하는 편이 낫다.




대륙의 스케일, 푸텐역


푸텐역은 ‘멀다’의 표준 정의처럼 느껴졌다.
보안 검색과 신분 확인을 여러 번 통과하고도 플랫폼은 더 멀리 있었다.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헤맬 수 있는 구조. 우리도 그랬다.

예약해 둔 열차를 놓쳤고, 다시 발권했다.
그 사이 ‘여행은 계획의 예술’이 아니라 ‘순발력의 운동’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빅토리아 피크로의 여정


홍콩의 카오룽까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많이 걷고 고전 끝에 도착했다.

아쉽게도 그때 이미 체력은 바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홍콩에 왔으니 ‘빅토리아 피크의 야경’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 결심이 지금 생각하면 꽤 무모했지만,

그 순간의 나는 오히려 들떠 있었다.


딸아이는 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아이였다.
예상치 못한 변수나 즉흥적인 일정엔 조심스러워했는데,

그런 딸에게 나는
‘오늘만큼은 조금 무리해 볼까?’라는 마음을 품었다.

그 마음을 읽은 딸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따라 주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엄마이기보다 모험을 장착한 여자였던 것 같다.

지쳐 있는 딸에게는 그게 무모함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겐 오래 잠들어 있던 본능의 깨어남이었다.


여행에서 사람들은 왜 모험을 감수할까.
이 순간이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일까.


돌이켜보면, 그건 용기라기보다 회복의 본능에 가까웠다.
일상의 궤도에서는 늘 안전을 택하던 나였지만,
길 위에서는 이상하게도
한 번쯤은 벗어나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아마 여행이란,
삶이 우리 안에 잠시 숨겨두었던 ‘살아 있음의 본래감각’을 깨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인파를 피해 버스로 오르기로 했다.

트램 대신 버스라면 조금은 덜 복잡할 거라는 판단 했다.

딸은 아무 말 없이 내 옆자리에 앉아 주었다.

버스 창밖으로 홍콩의 밤거리가 흘렀다.

간판 불빛, 오토바이 헤드라이트, 좁은 골목의 사람들.


그 속에서 나의 모험심은 다시 깨어났지만,
옆의 딸을 보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너무 좋아도, 때로는 불안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쉽게 티를 내지 않는 성격의 아이.


이번 여행에서도 그런 모습으로
엄마를 이끌기도 하고, 또 따라오기도 했다.


나는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순간,
그 아이의 감정을 놓쳤을까.


내 무모한 계획에 딸을 끌어들인 건 아닌지,
그럼에도 묵묵히 따라와 준 아이가 미안하고 고마웠다.



‘지금 이 순간도 소중하게 담아가야지.’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버스에 몸을 맡겼다.

산등성이를 따라 버스가 오르기 시작했다.


비좁은 길 위에서 마주 오는 버스와

조심스레 스쳐 지나갈 때마다
숨죽인 승객들 사이로 창밖의 도시가 한눈에 펼쳐졌다.

홍콩은 그때 처음으로 다르게 보였다.


화려한 빌딩의 도시가 아니라, 그 뒤편의 언덕과 집들,
사람들의 하루가 켜켜이 쌓인 입체적인 도시.


그 속에서야 비로소 이 도시의 숨결이 느껴졌다.

빅토리아 피크 정상에서는
야경이 어둠을 밀어내듯 천천히 피어올랐다.


머릿속의 엇갈림도, 하루의 피로도 그 불빛 속에서 차분히 가라앉았다.
딸과 나란히 서서 바라본 그 밤의 풍경은
‘이 순간만큼은 완벽하다’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식사를 위해 내려간 피크 갤러리에서는
딤섬과 누들, 버블티, 에그타르트를 마음껏 즐겼다.

허기와 함께, 하루의 후회도 천천히 녹아내리는 듯했다.
조금 무리했던 일정,
지쳐 있던 딸의 얼굴이 불빛 사이로 스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만큼은 따뜻한 음식이 모든 걸 덮어주는 듯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영화의 장면처럼



불빛이 켜진 골목 사이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가 보였다.

80년대를 20대로 통과한 내게

그곳은 단순한 계단이 아니라, 영화 속 장면이었다.

나의〈중경삼림〉, 나의〈아비정전〉, 그리고〈천장지구가 있었던 그 거리.

그 시절 스크린 속에서만 보았던 공간이 이제 현실의 불빛으로 내 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이제는 20대의 나의 딸이 서 있었다.


딸에게는 그저 ‘세계에서 가장 긴 야외 에스컬레이터’ 일뿐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세월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길 같았다.


세대가 달라도, 우리는 같은 경사 위를 나란히 오르고 있었다.

두 세대의 여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타이콴과 스타페리, 그리고 욕심 한 줌


옛 경찰서를 개조한 복합문화공간 타이콴은
주말 저녁의 활기로 가득했다.


그 붐비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듯 지나,
우리는 스타페리 선착장으로 향했다.


짧은 항로, 갑판 위의 바람,
눈앞의 빅토리아 하버 야경.
짧지만 아껴 담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침사추이에 내린 뒤
나는 또다시 ‘잠깐’의 욕심을 냈다.


웨스트 카오룽 역으로 곧장 향하기보다
템플 스트리트 야시장을 들르자는 제안.
딸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따라주었다.



Budapest로 향하는 여정중 잠시 멈춘 홍콩 타이콴 한복판에서 마주한 뜻밖의 거리 공연




매진, 그리고 가슴속 타이머


도로는 막혔고, 시장 골목은 혼잡했다.
버스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지만,
잘못 든 골목은 어딘가 낯설고 불편했고 붉었다.


피로가 쌓인 발걸음 위로

‘괜히 욕심을 부렸나’ 하는 후회가 스쳤다.


10시가 다 되어 카오룽 역에 도착했다.
창구 직원의 말은 믿기 어려웠다.
“10시 열차는 전석 매진입니다.”

남은 건 11시 10분 비즈니스석뿐.


그제야 알았다.

이 시간이 바로,

주말을 홍콩에서 보내고 푸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기차가 꽉 차는 시간대라는 걸.


우리는 11시 30분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푸텐까지 고속열차, 이후 공항까지는
지하철 + 전력질주.
목표 도착 시각: 00시.



최후의 질주, 심천공항



우리는 동유럽의 첫발도 떼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으로 뛰었다.
얼마나 빨리 뛰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전력으로 달리던 몸의 진동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


나는 체크인 카운터로, 딸은 러기지 스토리지로.

기적처럼 카운터는 닫히지 않았다.


줄도, 사람도 없었다.
딸이 짐을 찾아 돌아왔고,

우리는 마지막 승객으로 수속을 마쳤다.


무사히 체크인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 섰을 때,
비로소 복통이 밀려왔다.
긴장이 풀린 뒤에야,
몸이 먼저 모든 걸 알아차린 듯했다.





비행기 위의 안도


하이난 항공은 게이트 오픈도, 탑승도, 마감도 빨랐다. 뒷좌석부터 자리를 채웠는지 앞 좌석은 자리가 여유가 있어 편하게 누워오며,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비행 속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무사히 비행기에 올랐다는 안도감이

온몸의 피로를 천천히 녹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아직 여행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 모든 질주는, 여정의 서막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돌아보니 남은 한 줄


그날의 질주는 어설펐고, 우스웠고, 처절했다.
그러나 삶의 어떤 날은 그렇게 ‘달리기’로 남는다.


완벽한 계획보다 끝까지 버텨낸 용기가
다음 장을 만든다.


여행은 효율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기록이라는 것.


나는 엄마였지만,
어쩌면 모험을 장착하고 있던 여자였나 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원래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음 화 예고


〈2화. 인과 아웃 —부다페스트,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벌금과 배움을 함께 치렀다 〉

비통했던 도시에서, 다시 나를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