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에서 조연으로 : 코트 위 시간의 온도차

by 라온리


한때 코트를 가득 채우던 박은서의 스파이크는
이제 짧은 순간, 교체 투입 속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조명이 머물던 자리에서 조금 비켜났을 뿐인데,
코트는 전혀 다른 온도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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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수 조이가 부상으로 빠졌던 초반,
페퍼저축은행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박은서는 조용히 팀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왔다.
한국도로공사전에서 24득점, 현대건설전에서 21득점.
그녀는 ‘임시 외국인 공격수’처럼 팀의 공격을 이끌며
그 짧은 시간 동안, 누구보다 강하게 빛났다.

하지만 그 빛은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조이가 복귀하자,
박은서의 공격점유율은 30%에서 4%대로 떨어졌다.
공격 시도는 경기당 47회에서 8회로 줄었고,
풀세트 출전은 이제 2세트 교체가 되었다.
조명이 옮겨간 자리 뒤에서,

그녀는 묵묵히 벤치를 지킨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팀의 일원이다.


“조명이 꺼진 자리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준비되어 있었다.”


잠시 멈춘 것처럼 보여도, 꿈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득점에 누구보다 크게 박수를 치고,
코트 밖에서도 가장 먼저 동료를 격려한다.
언제든 투입될 수 있는 ‘즉시 전력감’으로,
그녀는 여전히 팀의 리듬 속에 숨 쉬고 있다.

박은서의 기록은 단순한 수치의 변화가 아니다.
그녀의 시간은 ‘빛났던 순간’에서 ‘기다림의 시간’으로 바뀌었지만,
그 기다림 속에는 여전히 가능성과 온기가 있다.


“주연에서 조연으로, 그리고 다시 무대를 기다리는 시간.”


멈춘 듯 흐르던 시간 속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었다.


비록 코트 위 자리는 좁아졌지만,
그녀의 존재는 결코 작아지지 않았다.


한국 여자배구는 지금

‘누군가 빠져야 기회가 오는’ 구조 속에서
많은 젊은 선수들이 비슷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실력이 아니라 순서에 따라,
타이밍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기회가 정해지는 시스템 속에서
‘성장’은 종종 기다림과 동의어가 된다.


“기회는 줄었지만, 마음의 온도는 식지 않았다.” 한국 여자배구의 현실 속, 한 선수의 조용한 투혼.


박은서의 이야기는,
그 기다림의 온도와 무게를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에게 묻는다.
“이렇게 묵묵히 준비하며 기다리는 선수들이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어느 날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지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스파이크는 잠시 멈췄을 뿐,

그 안의 열정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코트는 다시 열릴 것이고,
그때 다시 —
그녀는 자신만의 타이밍으로
다시 한 번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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