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합창 : 생의 해커 로아

제1장 : 숲의 왕과 이방인 : 야생을 감시하는 카이

by 로다Roda

1. 정글의 시간과 야생의 감시

정글의 심장은 인간의 시간을 거부한다.
이곳의 시간은 시곗 바늘이 아니라, 바위 표면을 잠식해 들어가는 층층 이끼(Hylocomium splendens)의 생장 속도로 흐르며, 수백 년을 버틴 반얀트리의 기근(Aerial root)이 대지를 향해 수직으로 낙하하는 인고의 무게로 쌓인다.


햇빛조차 거대한 나뭇잎 차일(Canopy)에 가로막혀 파편화된 채 떨어지는 이곳에서, 모든 생명은 서로의 숨소리를 죽이며 거대한 신경망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일 분은 이끼가 바위를 타고 오르는 속도로 흐르고, 한 시간은 거대 고목이 태양을 향해 가지를 뻗는 인고의 무게로 쌓인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무거웠고, 발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대지의 진동은 수만 가지 생명이 동시에 내뱉는 거친 숨소리와 같았다.

지상에서 족히 30미터는 됨직한 대왕오동나무의 굵은 가지 위에 카이가 움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나무의 일부이자, 숲이 내뱉는 날카로운 경계심 그 자체였다. 거친 가죽과 식물의 줄기로 최소한의 몸만 가린 그의 구릿빛 피부 위에는 이끼의 녹색 혈청이 문신처럼 배어 있었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이는 눈동자는 숲의 그림자가 농축된 듯 깊고 서늘했다.


숲의 침입자 로아를 지켜보는 숲의 왕 카이


카이가 디디고 선 가지 곁에는 숙주 나무의 수액을 갈구하며 뒤엉킨 포등굴(Vitis amurensis)과 기괴한 모양의 네펜데스(Nepenthes)들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달콤한 꿀 향기로 곤충을 유혹했을 네펜데스의 포충낭들은 로아가 내뿜는 이질적인 화학 향료—도시의 인공적인 향수와 금속성 냄새—가 대기를 찌르자 일제히 그 입구를 수축시켰다.


나무의 몸통을 타고 나선형으로 피어난 콩짜개덩굴의 둥근 잎사귀들은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고 바짝 몸을 눕혔다. 그것은 침입자의 발걸음이 지표면을 누를 때마다 발생하는 초저주파에 대한 본능적인 방어 기제였다.

더욱 기이한 것은 카이의 발치에 군락을 이룬 미모사(Mimosa pudica)류의 야생종들이었다.

로아의 스마트워치가 내뿜는 미세한 전자파가 공기를 가르고 다가오자, 이 민감한 식물들은 마치 뜨거운 불길에 닿은 듯 줄기 끝부터 차례로 잎을 접으며 거대한 녹색의 도미노를 만들어냈다.


“…….”


카이는 코끝을 미세하게 실룩였다. 바람을 타고 낯선 냄새가 스며들었다. 인공적인 꽃향기와 차가운 금속의 냄새. 숲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질적인 침입자의 체취였다.

그는 숨을 멈췄다. 폐부 깊숙이 스며든 인공적인 향료보다 그를 더 자극시킨 것은, 정글을 가득 메우던 ‘생명의 협주곡’이 일순간 불협화음으로 변했다는 사실이었다.


수백 마리의 매미(Cryptotympana atrata)들이 숲의 습기를 진동시키며 내뱉던 날카로운 마찰음이 칼로 자른 듯 멈췄다. 잎사귀 뒷면에서 들려오던 미세한 곤충들의 바스락거림조차 자취를 감췄다. 정글의 포식자인 카이에게 이 갑작스러운 침묵은 숲이 내뱉는 가장 거대한 비명이었다.


카이는 고개를 살짝 돌려 나무 아래를 살폈다. 지표면을 기어 다니던 딱정벌레(Carabidae)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어 로아가 다가오는 반대편 덤불 속으로 무질서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나무 위에서 무리 지어 지저귀던 직박구리(Hypsipetes amaurotis)들은 경계의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마치 보이지 않는 검은 그림자에 쫓기듯 황급히 숲의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날아올랐다.


“…….”


카이의 고막을 때리는 것은 이제 숲의 소리가 아니었다. 로아의 발밑에서 무참히 으깨지는 낙엽의 파열음.그리고 그녀의 스마트워치가 숲의 정적을 뚫고 내뱉는 초저주파의 웅웅거림뿐이었다.

숲은 그녀를 거부하고 있었다. 생명의 리듬이 끊긴 자리에는 차가운 기계적 소음만이 먼지처럼 떠다녔다. 카이는 자신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숲이 입을 닫고, 모든 생명이 숨을 죽인 채 이 기이한 침입자와 숲의 왕인 자신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그 시각적인 신호들을 놓치지 않았다. 식물들이 전하는 ‘불쾌함’의 파동은 카이의 발바닥을 타고 그의 척추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숲의 면역 체계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손목을 감싼 덩굴 줄기가 평소보다 단단하게 조여왔다. 이 거대한 유기체의 폐부 속으로, 결코 소화시킬 수 없는 차가운 ‘납과 실리콘’의 조각이 침범했음을 숲은 이미 알고 있었다.

숲해설가가 나무의 나이테를 읽듯, 그는 바람에 실려 온 공기의 밀도를 읽어냈다. 젖은 흙의 비린내와 부패하는 낙엽의 단내 사이로, 이질적이고 날카로운 분자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정글의 질서를 난도질하는 인공적인 화학 향료와 차가운 회로 기판의 금속성 냄새였다.


“…….”


카이는 소리 없이 몸을 웅크렸다. 그의 발가락 끝이 오동나무의 거친 수피(Tree bark) 틈새를 맹수처럼 움켜쥐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 짙은 안개와 엉킨 덩굴 장막을 헤치고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편

이질적인 침입자-로아와 문명의 골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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