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아닌 일들

by Roda with RED

별일 아닌 일들



1. 선별위원회


재난지원 선별위원회 회의실은 항상 조금 춥다.

겨울이라서가 아니라, 에어컨 온도를 누가 건드렸는지 모를 정도로 낮게 맞춰 놓았기 때문이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지은은 재킷을 더 여며 쥐며 모니터를 켰다.

화면에는 오늘 심사 대상자 명단이 떠 있었다. 열 가구.

그중 다섯 가구는 지원 유지, 다섯 가구는 탈락.


“오늘도 50%네요.” 옆자리의 상훈이 중얼거렸다.


“예산 줄어든 거 알잖아요.” 지은이 말했다.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인데도, 이상하게 타인의 대사처럼 들렸다. “시에서 내려온 비율이니 어쩔 수 없죠.”


말끝에 붙는 ‘어쩔 수 없죠’라는 말은, 이 건물의 공용어였다.

예산이 줄어도, 인력이 줄어도, 지원 대상이 줄어도, 대책이 없어도.

누군가가 숨을 깊게 내쉴 타이밍마다, 꼭 그 말을 꺼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면 별 논의 없이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팀장인 박 과장이 회의실에 들어왔다. 공문 서류철을 탁 내려놓고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올해부터는 중앙에서 ‘사회적 기여 점수’를 연동하라고 했습니다.”


이미 수십 번 들은 말이었다. 그래도 그는 매번 처음 설명하는 것처럼 말했다.


“나이, 현재 직업, 취업 가능성, 부양가족 수, 건강 상태. 다 합쳐서 점수가 나옵니다. 본청에서 만든 시스템이라 우리가 만질 수는 없고요.”

그는 책상을 두드렸다. “우리는 단지, 그 점수를 현실에 맞게 ‘보정’하는 역할입니다.”


‘보정’이라는 단어는 이 위원회가 가진 마지막 인간적인 흔적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보정을 하려 들면, 다른 단어가 튀어나왔다. ‘성과’.


“지난 분기 기억하죠?” 박 과장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우리 구는 탈락률이 기준보다 낮았어요. 그래서 평가 C 받았고, 내년에 우리 인력 두 명 줄어듭니다. 그럼 남은 사람들이 지금 두 배로 일해야 해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기준보다 덜 자르면… 누가 책임질 건데요?”


질문이지만, 답을 원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다들 고개를 숙인 채 모니터를 응시했다. 지은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이름이 떠올랐다.


1번: 최선애, 58세. 손자 1명(7세, 김민재)과 동거.

소득: 무. 건강 상태: 만성질환 2종, 거동 가능.

사회적 기여 점수: 34점.


34점이면 ‘탈락 권고’ 구간이다.

하지만 지은은 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지난 겨울, 기초생활수급 신청할 때 직접 방문했던 가정이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와, 말이 많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꼬마.

벽에는 유치원에서 가져온 색연필 그림들이 불균형하게 붙어 있었다.

아이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빠는 빚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 이름만 전입 신고가 되어 있었다.


“1번은…” 지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직접 가정 방문했던 케이스입니다. 손자 민재가 아직 일곱 살이고, 엄마 아빠가 모두…”


“부재.” 박 과장이 대신 정리했다.

“알아요. 근데 점수는 점수고, 우리 구간표는 이렇게 돼 있어요. 34점이면 탈락 권고. 유지하려면 왜 유지해야 하는지, 사유를 써야 합니다.”


사유를 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몇 줄이면 된다.

“아동 보호 필요성”, “대체 부양자 부재”, “가구 전체 소득 없음”…

그런 말을 이어 붙이면, 어느 정도 그럴듯한 문장이 된다.


어려운 건 그 후였다.

사유를 많이 쓰면, ‘탈락률 관리 미흡’이라는 평가가 돌아온다.

그리고 그 평가는, 고스란히 이 회의실 사람들의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지난 분기 평가에서 C를 받았을 때, 박 과장은 농담처럼 말했다.


“다음 분기에 또 C 나오면, 나 퇴직금도 못 채우고 나가야 할지도 몰라요. 여러분도 승진은 접어야 하고. 그럼… 여러분 자녀들 학원비는 누가 내주지?”


이 회의실 사람들 대부분은,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 자녀를 키우는 부모였다.

그 질문은, 농담일 수 없었다.


상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1번 가구는… 손자 보호전담센터 예산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행정적으로는 아동을 시설로 보내는 것도 가능해요. 그러면 한 가구로 보는 인원 수가 줄어들어서, 할머니는 노인 단독 가구로 분리해서 보는 게…”


“그러면 할머니는?” 지은이 물었다.


“혼자 되시는 거죠. 그렇게 되면 오히려 요양 쪽 지원을 노릴 수도 있고. 센터에 가면 애는 먹는 걱정은 안 할 거고요.”


말은 정리되어 있었다.

선애와 민재를, 시스템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다른 칸들로 옮겨 넣는 것.

기초수급비라는 하나의 칸 안에 둘을 같이 넣기에는 예산이 부족하니까.


“근데 할머니가 거부하면요?” 지은이 물었다.


“거부하셔도, 우리는 안내를 했다는 기록만 남기면 됩니다.”


박 과장이 끼어들었다.

“법적으로 강제는 못 해요. 하지만 ‘제안’은 할 수 있죠. 문서에 사인 받으면 됩니다. ‘자발적 선택’이라고.”


자발적.

지은은 그 단어가 가장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선택지가 사실상 하나뿐인 사람에게 선택권을 준 척할 때 쓰는 말.


“1번 건은…” 박 과장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탈락으로 가죠. 대신 사유에 ‘아동 시설 보호 제안 및 수급자 동의 예정’이라고 적읍시다. 그러면 우리 책임은 줄어들어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지은은 입술을 깨물었다.

할머니가 도장을 찍는 순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도장 이후에 두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짓고 살게 될지.


하지만 그 표정은 이 회의실의 어떤 지표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박 과장이 클릭했다.

1번 옆에 붉은 색 ‘탈락’ 표시가 떴다.



두 번째, 세 번째 대상자는 더 쉬웠다.

젊은 남성, 단기 노동 가능, 부모와 별거 중이지만 주소상 함께.

형식상 독립 가구처럼 보여도, 서류상 ‘부모 지원 가능’이라는 한 줄이면 웬만해선 다 걸러낼 수 있었다.


“부모님 집이 어떤 상황인지 확인도 안 하고, 지원 가능이라고 쓰는 게 말이 되나요?” 지은이 중간에 한 번 물었다.


“그러면 방문 조사 나가야 하잖아요.” 상훈이 말했다.

“요즘 인력으로 그게 가능해요? 한 집 나갈 때마다 다른 다섯 집 처리가 밀리는데.”


박 과장이 덧붙였다.


“그리고 중앙은 숫자만 봐요. 부모가 있으면 ‘잠재적 지원망’이 있는 걸로 처리합니다. 우리는 그 기준에 맞춰서 움직이는 거고요. 그 기준이 잘못됐다고 생각해도… 우리가 바꿀 권한은 없어요.”


권한.

이곳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무력하게 사용되는 단어였다.



마지막 대상자는 10번이었다.


10번: 김, 43세, 남.

현 직업: 없음. 이전 직업: 중학교 교사(징계 해임).

부양가족: 본인, 모친(75세).

사회적 기여 점수: 52점.

지난 1년간 민원 12건, 지역 커뮤니티 민원 다수 발생. 기사화 이력 있음.


지은은 작년에 잠깐 뉴스에 올라왔던 사건을 떠올렸다.

학생을 상대로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임된 교사.

보도 제목은 자극적이었고, 댓글은 더 잔인했다.


“이 사람, 유지로 가면…” 상훈이 말을 흐렸다.

“우리 욕먹는 거 한순간입니다. 요즘 커뮤니티에 구청 공무원 실명 올라오는 거 봤죠? 담당자 찾겠다고…”


박 과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알아요. 근데 점수는 유지야. 우리가 탈락으로 바꾸려면, 또 ‘사유’를 써야 해요. 그럼 어떻게 나오겠어요? ‘언론 노출 이력 및 민원 다수 발생으로 인한 지역사회 반발 우려’?”


그 문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은은 속이 뒤틀렸다.

‘사회적 기여 점수’ 뒤에 붙는 이유가, 결국 ‘이미 한 번 욕먹은 이름’이라는 것.


“근데 솔직히 말해요.” 상훈이 의자를 앞으로 당기며 말했다.

“악플 다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이런 사람에게까지 세금을 써야 하냐는 말 나올걸요. 우린 그 여론도 무시 못하잖아요.”


지은은 되물었다.


“그럼… 우리가 탈락시키면, 그 사람이랑 어머니는 어떻게 살까요?”


“그건 그 사람이 전에 뭘 했는지에 대한 결과죠.” 상훈이 말했다.

“학생 상대로 그런 짓 안 했으면, 지금도 교사였겠죠. 선택은 본인이 한 겁니다.”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은은 알았다.

지금 이 테이블 위에 올라온 건, 벌이라기보다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박 과장이 결국 말했다.


“이렇게 하죠. 공식적으로는 ‘점수 유지’지만, 우리가 ‘추가 심사’ 항목을 달아서 상급 기관에 의견 조회를 넣어요. 그러면 윗선에서 알아서 정리할 겁니다. 우리는 권고만 한 거고, 최종 책임은 그쪽으로 가니까.”


책임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서명란을 여러 개로 나누고, 결재 단계를 여러 번 만들고, 기관을 나눠서.


그렇게 책임은 아주 얇게 잘려, 많은 사람에게 골고루 뿌려졌다.

각자에게 떨어진 양은 너무 적어서, 누구에게도 “네가 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정도로.



그날 회의가 끝나고, 지은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뉴스를 봤다.

중앙정부가 재난지원 예산을 추가로 삭감했다는 기사.


“선별 지원 강화로 재정 효율성 제고”


라는 제목 아래, 익숙한 단어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효율, 공정, 자립, 도덕적 해이 방지.


그 단어들 중 어디에도,

58세의 최선애와 7세의 김민재의 이름은 들어 있지 않았다.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골목들을 보며, 지은은 생각했다.


‘저 골목 어딘가에서, 지금 누군가가 나 때문에 도장을 찍고 있을지도 모르겠지.’


그리고, 언젠가 그 골목에서

누군가는 자전거를 끌고 언덕을 오르다가,

또 다른 누군가는 컴퓨터 앞에서 사직서를 쓰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 회의실의 결정을 몸으로 떠안게 되리라는 걸,

아직은 알지 못했다.



2. 조정


재난지원 선별위원회가 1번 가구의 지원을 ‘조정’한 지 몇 해가 지났다.

서류 위에서 한 번 잘려 나간 삶은, 그 뒤론 더 얇은 일자리들 사이를 떠돌았다.


민호는 그런 사정을 모른다.

그는 플랫폼 회사에서 일한다.

정확히 말하면, 수백만 명의 생활을 조정하는 알고리즘 팀의 리더였다.


그의 자리 뒤 벽에는 커다란 대시보드 화면이 붙어 있다.

실시간 주문 수, 평균 배송 시간, 고객 만족도, 이탈률 그래프.

숫자와 그래프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바로 그의 성과표였다.


오늘 아침 회의의 주제는 “악성 기사단”이었다.

회사에서 부르는 말이었다. 본사로 몰려드는 민원이 늘어나면서 생긴 용어.


• 일부 배달 파트너의 불친절, 무단 취소, 늦은 배송으로 인한 상점 피해 증가

• ‘배달기사 태도’ 관련 상점 이탈률 상승

• 상점협회, 보이콧 시사


임원은 화면을 넘기면서 말했다.


“이대로 두면 큰일입니다. 상점들이 빠져나가면, 플랫폼이 붕괴돼요. 고객이 아무리 많아도, 물건을 팔 곳이 없으면 끝입니다.”


다른 팀장이 물었다.


“이미 기사 평점 시스템이 있는데도,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죠?”


그때 모두의 시선이 민호에게 향했다.

기사 평점, 페널티, 활동 제한을 관리하는 팀이 바로 그의 팀이었기 때문이다.


민호는 침착하게 준비해온 슬라이드를 띄웠다.


“지금은 고객이 3점 이하를 주면 ‘주의 알림’이 가고, 평균이 4.0 아래로 떨어질 경우 상담 후 제한을 걸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는 그래프 하나를 확대했다.

“고객들이 웬만하면 4점 이상을 준다는 겁니다. 사실상 4.5 아래만 돼도 ‘문제’라고 봐야 해요. 그런데 시스템은 여전히 3점을 기준으로 삼고 있죠.”


임원이 팔짱을 꼈다.


“그러니까, 지금 기준이 너무 느슨하다는 거네요?”


“네. 악성 기사들이 4.1~4.3 구간에 숨어 있습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불편한데, 시스템상으로는 ‘양호’로 처리되는 구간입니다.”


“그럼 기준을 올려야겠군.”


민호는 이미 그 말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가 준비한 마지막 슬라이드에는 제안이 적혀 있었다.


• 평점 기준 4.0 4.5 상향

• 일정 기간(2주) 동안 4.5 미만 유지 시, 자동 활동 제한

• 고객 불만 키워드가 일정 이상 누적될 경우, 즉시 제한


“이렇게 하면 문제가 되는 기사들을 빠르게 걸러낼 수 있습니다. 우수 기사들만 남게 되면, 상점 만족도도 올라가고요.”


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대로 가죠. 대신 ‘양심적인 기사들’에게 피해 안 가게, 세부 튜닝은 잘 해주시고요.”


“물론입니다.”


민호는 진심이었다.

정말로 악의는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착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싶었다.

그래서, 빨리 잘라내야 하는 건 당연히 악성 기사들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적용” 버튼을 누른 순간, 거대한 시스템의 기준선이 아주 조금 위로 올라갔다.

화면 속 숫자들은 여느 때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 버튼이 눌린 날,

다른 구의 오래된 빌라 단지에서는 ‘1번 가구’였던 사람이 또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최선애, 이제 예순일곱.

서류상으로는 ‘단독 가구’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을 더 키웠다.


손자 민재는 그때 초등학생이었고, 지금은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스무 살이었다.

복지 지원이 끊어진 후, 둘은 여러 번 이사를 했다.

선애는 마트 계산원, 반찬가게 포장, 새벽 청소를 전전하다가 무릎이 완전히 나가자, 덜 서 있어도 되는 일을 찾았다.


“할머니, 이건 자전거 타고 하는 거라면서요? 괜찮겠어요?”


민재가 물었을 때, 선애는 웃으며 말했다.


“에이, 자전거는 할머니가 너보다 잘 탄다. 어릴 때 시골에서 매일 탔다니까.”


그렇게 시작한 일이, 배달 파트너였다.

앱을 깔고, 교육을 받고, 인증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스마트폰 터치도 서툴렀지만, 민재가 옆에서 하나하나 알려줬다.


전동 자전거는 중고였다. 브레이크가 약간 밀리고, 비가 오면 체인이 자주 빠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무릎이 좋지 않아 오래 걷질 못했기 때문에, 자전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배달 앱에서 선애의 평점은 4.6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 교육 담당 직원이 말했다.


“5점 만점에 4.5 이상이면 아주 좋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걱정 마시고요!”


그래서 그녀는 안심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3점, 2점이 들어와도, 평균이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 괜찮다고.



어느 날,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골목길이 미끄러워, 자전거를 끌고 걸어야 했다.

주문이 평소보다 많았다. 점심 러시아워에 비까지 겹쳐서였다.


주문 하나가 특히 멀었다. 언덕 위, 오래된 빌라 단지.

예전에 공무원이 찾아와 서류를 내밀던 바로 그 비슷한 구조의 건물.


그때는 ‘도장만 찍으면 아이를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고 했었다.

선애는 그 말을 믿지 못했고, 결국 아이를 보내지 않았다.

대신, 둘이서 살아남기로 했다.


이제는 도장 대신 버튼이 있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눌러놓은 그 버튼의 결과를, 선애는 모른 채 언덕을 올랐다.


비를 맞으며 언덕을 오르니, 숨이 턱까지 찼다.

도착했을 때, 예정 시간보다 11분이 지연되어 있었다.


“죄송해요, 비가 와서 길이 많이 막혀서…”


문을 연 젊은 남자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음식을 받아들고, 쾅 하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1분 뒤, 앱에서 알림이 왔다.


고객이 낮은 평점을 주었습니다. 서비스를 개선하겠습니다.


그 알림을 매번 의미 있게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사들도, 고객들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긴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민호가 올려놓은 기준선 위로, 그 낮은 평점 하나가 살짝, 아주 살짝 더 무겁게 눌러앉았다.



며칠 뒤,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선애는 실수로 오토바이 하나와 부딪쳤다.

크게 사고가 난 건 아니었지만, 젊은 기사는 욕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 이거 긁힌 거 보이세요? 다 찍혔잖아요!”


“아이고, 미안해요. 제가 잘 봤어야 했는데…”


선애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젊은 기사는 더 이상 말다툼을 하긴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떠났다.

그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앱이 다시 울렸다.


고객 및 동료로부터 서비스 관련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그날 밤, 선애의 평점은 4.42까지 떨어져 있었다.



평점이 4.5 아래로 내려간 기사 목록은 민호의 팀이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자동으로 처리했다.

그가 설계한 대로였다.

• 2주 동안 4.5 미만 유지

• 일정 횟수 이상 신고 누적

• 늦은 배송 기록 일정 이상


이 조건이 모두 채워지면, 계정 상태가 “검토 필요”로 바뀌었다.

그러면 시스템은 자동으로 활동 제한을 걸고,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링크딜리버리] 파트너님, 서비스 품질 문제로 인해 계정이 일시 제한되었습니다.

자세한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민호는 그 문자가 어떤 사람들에게 가는지, 개별 사례를 하나하나 보진 못한다.

그럴 시간도, 권한도 없었다.

그저 “일시 제한 계정 수”, “제한 후 재등록 비율”, “제한 후 상점 민원 감소율” 같은 숫자를 볼 뿐이었다.


그 숫자들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상점 민원은 줄었고, 평점 상위 기사 비율은 올라가고 있었다.

임원들은 만족했다.


“역시, 기준을 올리니 확실하네.”

“악성 기사들이 많이 걸러졌나 봐요.”

“다음 분기 성과급 기대해도 되겠네, 민호 씨?”


민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떠올린 ‘악성 기사’들의 얼굴은, 대체로 뉴스에서 본 적 있는 사람들과 비슷했다.

무단 취소를 하고, 욕을 하고, 리뷰에 도전적인 댓글을 다는 이들.


비 오는 언덕을 자전거를 끌고 오르는 예순일곱의 최선애는,

그의 머릿속에 한 번도 떠오른 적이 없다.



선애는 계정 제한 문자를 받았을 때,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일시… 제한?”


민재는 도서관에 있었다.

알바와 공부를 병행하며, 할머니한테서 최대한 부담을 덜어주려고 했다.

문자를 본 선애는, 괜히 걱정할까 봐 그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눌렀다.

30분 넘게 대기 음악을 듣다가, 겨우 연결이 되었다.


“아, 네. 파트너님. 최근에 고객 불만이 좀 누적되어서요. 잠시 계정을 제한한 상태입니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욕을 한 적도 없고, 음식도…”


“그런 개별 사안은 저희가 확인해 드리기 어렵고요. 시스템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라고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


“음… 교육 영상을 보시고, 퀴즈를 통과하시면 재심사 요청은 가능합니다. 다만, 모든 요청이 수락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교육 영상.

스마트폰 화면에 작은 글씨로 떠 있는 ‘교육 시작’ 버튼을 누르려는데, 손이 떨렸다.

영상 속에서는 젊은 강사가 또박또박 말했다.

• 고객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하세요.

• 늦을 것 같으면 미리 연락을 드리세요.

• 서비스 평가는 곧 나의 자산입니다.


선애는 열심히 영상을 보고, 퀴즈를 풀었다.

‘미리 전화한다.’

‘고객이 기분 좋게 느끼도록 한다.’


결과는 통과였다.

하지만 그 다음 화면은 그녀가 기대한 것과 달랐다.


심사 결과: 재승인 보류

사유: 최근 신고 및 평점 기록에 따른 시스템 판단

3개월 후 재신청 가능합니다.


“3개월…”


그녀는 그 숫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3일도, 3주도 아니었다.


3개월 동안,

월세는 그대로 나간다.

약값도 그대로다.

민재가 알바를 더 늘리겠다고 했지만, 그의 몸도 하나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녀는 예전 구청 회의실에서 누군가가 했던 말을, 뜻도 모른 채 그대로 따라 중얼거렸다.



선애는 3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3개월째 되기 전에 몸이 먼저 항복했다.

약을 줄였다.

밥도 줄였다.

가끔 동네 교회에서 나눠 주는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관절은 더 아팠다.

기침이 잦아졌다.

병원에 갈까 고민하다가, 진료비를 떠올리면 다시 앉았다.


어느 날 새벽, 차가운 공기가 방 안에 깊이 스며들던 날,

선애는 화장실로 가다가 현관 앞에서 휘청하며 주저앉았다.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조용한 새벽이라,

그 무너지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며칠 뒤, 민재가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할머니가 받지 않자

결국 집으로 찾아갔다가, 문이 잠겨 있는 걸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소식은 기사 한 줄로 짧게 처리되었다.


“손자와 함께 살던 60대 여성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

연락 두절 걱정한 손자가 경찰에 신고”


기사 내용 어딘가에는 “배달 일을 하다가 계정 제한으로 일을 쉬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는 문장이 딱 한 줄 정도 붙었지만,

그걸 끝까지 읽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민호는 그 기사를 보지 못했다.

심지어 그 기사 링크조차 그의 타임라인엔 올라오지 않았다.

알고리즘이, 그에게 필요하지 않은 정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재는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할머니가 쓰던 전동 자전거 열쇠를 손에 쥔 채 서 있었다.


그는 알지 못했다.

구청 회의실의 결재선과,

어느 회사 회의실에서 눌린 버튼이,


자신의 삶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왔다는 것을.



연말 행사 날, 회사는 화려한 조명을 켜고 파티를 열었다.

무대 위에서 CEO가 말했다.


“올해, 우리 회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상점과 고객, 그리고 파트너들의 삶을 기술로 연결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사람들은 박수쳤다.


“특히, 서비스 품질 개선 프로젝트를 이끈 알고리즘 팀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더 정직하고, 더 공정한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민호는 동료들과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갔다.

조명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사진사가 셔터를 연달아 눌렀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나는 꽤 괜찮은 일을 하고 있어.’


그는 몰랐다.


어느 언덕길에서, 전동 자전거를 끌고 숨을 헐떡이던 할머니가

자신이 올려놓은 기준선 하나 때문에

“문제 있는 기사”의 범주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전화기 너머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제가 뭘 잘못했나요?” 묻던 누군가에게

콜센터 상담원이 “시스템이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라고 답할 때,

그 “시스템”의 구조를 설계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그는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몇 년 뒤,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말할지도 모른다.


“저는 그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렸을 뿐입니다.

개인에 대한 악의는 전혀 없어요.

오히려 더 공정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악의는 없었다.

무지는 있었다.

그리고, 잔인한 결과가 있었다.


그 결과는

힘 없는 어떤 사람의 삶 위에 남겨졌고,


그 삶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그를 만든 손은

단 한 번도 자신이 무엇을 잘라냈는지 알지 못한 채,


다음 숫자를 조정하고 있을 것이다.



3. 조용한 사람


민재는 가끔 현관 앞 바닥을 떠올린다.


할머니가 넘어졌던 자리.

전동 자전거 열쇠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모습.

그날 이후로, 그는 ‘바닥에 엎어진 것들’을 제대로 볼 수가 없게 됐다.

공 던지다 떨어진 서류, 서랍에서 쏟아진 클립, 쓰러진 쓰레기통 같은 것들까지도.


그래서 이 회사에 입사하고 난 뒤,

그는 먼저 바닥을 한 번 쓰다듬듯 훑어보고 자리에 앉는 습관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걸 눈치채지 못했다.



팀장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그게 이 회사 사람들이 그를 더 무서워하는 이유였다.


오늘의 표적은 민재였다. 입사한 지 8개월.

실수가 아주 특별히 많지도, 대단히 적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사원.


다른 신입들이 비슷한 실수를 했을 때, 팀장은 회의실에서 한두 마디 지적하고 말았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그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히, 오래 민재의 자리를 붙잡았다.


“어제 보고서 말이야.”


팀장은 민재의 모니터 옆에 서서, 손가락으로 화면을 천천히 쓸었다.

클릭도 하지 않은 채, 마치 얼룩을 훑어보듯.


“네가 쓴 거 맞지?”


“네… 제가 작성했습니다.”


“그래.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이걸 ‘네가’ 썼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욕설도, 큰 소리도 없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키보드를 멈추는 데에는 충분했다.

기계음만 남고, 사무실 공기가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여기 이 부분.”

팀장은 문장을 하나 선택해 드래그했다.


그 문장은 이전 분기, 팀장이 직접 쓴 핵심 문구와 거의 같았다.

민재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날, 팀장은 그 문장을 두고 이렇게 말했었다.


“이런 문장은 잘 써야 한다. 이게 설득이라는 거야.”


그 장면을 떠올리자마자, 지금 이 상황에서 그 기억은 오히려 덫이 되었다.


“이 표현은 지난 분기 때 내가 쓴 건데, 기억하지?”


“…아, 네. 그때 팀장님이…”


“그때 내가 뭐라고 했지?”


민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잘 써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 ‘잘 써야 한다’고 했지. ‘베껴라’고 한 적은 없는데.”


팀장은 아주 잠깐 웃었다.

누가 봐도 웃음이었지만, 아무도 그걸 웃음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표절이잖아, 민재 씨. 남의 문장을 가져다가 문맥만 살짝 바꾸고 자기 이름으로 내는 걸 뭐라고 그러더라? 학교에서는 꽤 심각하게 다루죠?”


“그…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때 문장이 떠올라서…”


“의도가 없으면 책임도 없나 보지?”



팀장은 의자를 끌어와 민재 옆에 앉았다.

돌아보지 않았는데도, 뒤에서 누군가가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가 곧 끊겼다.

모두가 듣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자, 두 가지 길이 있어.”


그의 말이 사무실 전체에 퍼졌다.


“첫 번째. 이 일을 공식적으로 처리하는 거야. 인사팀에 말하고, 경위서 쓰고, 징계위원회 열고. 그러면 기록이 남겠지. 앞으로 어디를 가든 따라다닐 거야. ‘보고서 표절로 징계를 받았던 직원’이라는 꼬리표가.”


민재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짧은 기사 하나를 떠올렸다.


‘손자와 함께 살던 60대 여성,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

연락 두절 걱정한 손자가 경찰에 신고’


라는 제목. 포털 메인에서 반나절도 버티지 못하고 밀려났던 기사.

댓글은 얼마 달리지도 않았고, 그마저도 대부분 다른 뉴스로 흘러갔다.


기사는 사라지지만, 꼬리표는 남는다.

팀장이 말한 ‘기록’이 어떤 건지, 그는 대강 알고 있었다.


“두 번째.” 팀장이 계속 말했다.

“당신이 알아서 정리하는 거야.”


“…정리라는 게… 무슨…”


“여기 자리, 네 경력, 네 이름. 내가 굳이 더 말해야 할까?”


멀찍이서 누군가가 의자를 아주 살짝 끌었다.

움직였다가 멈춘 그 소리가, 유일한 반응이었다.


모두가 그 이상의 어떤 소리도 내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내가 널 자르는 게 아니라, 네가 네 스스로 잘려나가게 만드는 거야. 이해되지?”


민재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가, 제대로 내쉬지 못하고 중간에 끊겼다.

어릴 때 복지센터 직원이 집에 찾아와 말했다.


“할머니가 도장 찍으시면, 아이는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어요.”


그때도 선택지는 둘인 것처럼 말했었다.

하지만 결국, 할머니는 서랍 깊숙이 숨겨 두었던 도장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밤마다 더 늦게까지 일을 나갔다.


‘선택’이라는 말을 듣고도, 선택지가 하나뿐일 때의 표정을,

그는 아주 어릴 때 이미 본 적이 있었다.


“팀장님, 저는… 정말 악의는 없었습니다. 그냥… 일단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앞으로는?”

팀장이 물었다.

“앞으로는 뭘 할 건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아니, 그런 말 말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포기할지’를 말해 보라고.”


팀장의 어조는 친절했다. 마치 커리어 상담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 말의 내용은 하나의 선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가… 사직서를… 쓰겠습니다.”


그 순간, 멀리서 누군가가 의자를 한 칸 더 뒤로 밀었다.

“아 다행이다”라는 얼굴과, “이번엔 내가 아니라서”라는 안도의 한숨이 뒤섞여

공기 속에 흩어졌다.


팀장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우리 팀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니까.”


‘살린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누구도 죽지 않았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책상은 제자리에 있고, 모니터 불빛은 그대로였다.


다만, 어떤 사람의 이름이 이 자리에서 지워지는 것뿐이었다.


어릴 적, 행정서류에서 가족 이름이 하나씩 지워지던 걸 보던 때와

묘하게 비슷했다.

아빠의 이름, 엄마의 이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이름이 기사 속에서 짧게 언급됐다가 사라지던 순간들.


“오늘 안에 메일로 보내. 형식은 알아서 찾아보고.

그리고…” 팀장은 덧붙였다. “이 일, 다른 팀에는 말하지 않을게. 조용하게 나가는 게 그나마 덜 부끄러울 거야. 그렇지?”


마지막 문장은 ‘배려’처럼 들렸다.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의 고개였다.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변을 둘러봤다.

누구와도 시선이 마주치지 않았다.

어느 방향을 보든, 사람들의 눈동자는 모니터를 보는 척하면서

조금 틀어진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다들 업무 계속해요. 별일 아니니까.”


별일이 아니라는 단어가 지나갈 때, 공기가 한 번 더 미세하게 변했다.

누구도 방금 벌어진 일이 ‘별일’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자기 차례가 돌아왔을 때,

똑같이 침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잠시 뒤, 키보드 소리가 다시 사무실을 채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뜸을 들이듯 느리게, 그 다음엔 조금 더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슬며시 메신저 창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누구도 이 일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민재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새 메일 창을 띄우고, 수신자에 팀장의 주소를 쳤다.

제목을 입력하려다 손이 멈췄다.


잠시, 정말 잠시 동안 그는 생각했다.


‘이게 정말 내가 한 선택만의 결과일까?’


복지 예산을 깎던 회의실,

배달 평점을 조정하던 회의실,

그리고 지금 자신을 바라보지 않으려 눈을 내리깐 이 사무실까지.


어디부터가 자기 책임이고, 어디부터가 자기 책임이 아닌지,

그 선을 긋는 일 자체가 어쩌면 누군가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질문을 끝까지 붙잡고 서 있을 만큼, 그는 강하지 않았다.

시간 외 근무 수당은 나오지 않고, 내일 아침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고,

할머니가 남기지 못한 유산 대신 남긴 빚과 방세가 매달 빠져나가고 있었다.


커서가 다시 움직였다.


제목: 사직서 제출의 건


문장을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3초 남짓이었다.

자신의 8개월과, 할머니의 몇십 년,

그리고 누군가의 클릭 한 번과 도장 한 번이 겹쳐 만든 결과를

한 줄짜리 제목으로 정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치고는,

너무 짧았다.


멀리서 팀장이 그 모습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오늘도 별일 없이 잘 넘어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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