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냉장고

2009.02.23

by 갱구리

목욕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다 시간이 되어 교회에 갔다. 화장하시고 단장하신 후에 곧장 그대로 외출, 친구분 잠깐 만나시고 바로 시댁으로 내려가실 거라 하신 아침 말씀과 다르게 같이 점심 먹자고 집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어머니도 안 계시겠다 밥 하기 싫어 요것 저것 눈에 맛있어 보이는 걸로다 제법 담아 든 빵 봉지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서다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빵 봉지에 시선을 주시며 빼앗듯 받아 드신 비닐봉지를 뒤적뒤적하시더니 점심으로 밥을 안 먹고 이딴 빵쪼가리나 애들 먹인다고... 샌드위치 사이 삐죽 나온 양상추를 가리키시며 이런 걸 씻어 넣는지 그냥 넣는지 알게 뭐냐셨다. 공기가 금세 싸늘해지고 분위기는 돌처럼 굳어졌다. 전례 없이 최 단기간 머무시다 내려가신다고 하셔서 자유로웠던 아침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엄해진 시어머니 눈길에 허둥지둥 밥상부터 차렸다. 그렇게 점심을 드신 이후 어머니는 언짢은 표정으로 시댁으로 돌아가셨다.


점심에 그런 소동(?)이 있었고, 저녁에 들어온 남편이 눈치를 보며 묻는다.

"저번에 만두 해주신 거 아직 냉동실에 그대로 있나?"

"...... 왜? 또 냉장고 검사하셨대???"

짜증이 났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열불이 났다. 시어머니가 냉장고 속 검사를 또 나 몰래 하셨구나...!!

그러시고도 왜 나한테 직접 대놓고 말씀 안 하시고 꼭 아들 붙잡고 그 흉을 보시는가 싶어 기분이 더 나빠왔다. 그냥 며느리 살림이려니 하시고 좀 내버려 두시면 안 되시는지... 뭘 그리 꼭 확인하시고 뒤져보셔야 하냔 말이다. 요 몇 달간은 항상 시어머니가 먼저 외출을 하시었고, 시어머니 집에 계시는 동안 내가 나 돌아다닐 일이 좀처럼 없어서 어느 사이엔가 긴장을 놓고 있었던 거지. 오늘 같은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고 시어머니 성격 뻔히 알면서도 미리미리 버릴 건 버리고 먹어치우고 했어야 했는데... 방심한 것이 화근이었다.


저녁을 배 터지게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 흥분된 마음이 좀 가라앉자 그래 또 한편으론 이해 안 되는 일도 아니다 어떻게 뭘 해 먹고사나 해서 올려준 거 다 해 먹었나 궁금도 하셨겠지. 그러니 며느리 없는 때 냉장고 문 열고 꼼꼼하게 둘러보셨으리라. 그래놓으시고도 냉장고 속 뒤졌단 원망 들으실까 봐서인지 대놓고 야단하지 않으시고 아들 붙잡고 하소연하셨으니 나름 며느리 눈치를 보시는 건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속 모르고 가운데서 그대로 말 전한 남편이 미련곰퉁이인지...;;


살면서, 나이 들어가면서 더욱 느낀다. 세상 일도, 사람도 다 내 맘 같지 않다고. 내 맘 같지 않다해서 무작정 화낼 일도 아니고, 일일이 따질 수도 없고, 더러는 내색 않고 그냥 적당히 참고 넘기며 살아야 할 일이 더 많다는 것도... 그래도 여하튼 치미는 짜증은 어쩔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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