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둔 내 울타리

2009.04.28

by 갱구리

은행 간다고 집을 나서서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밖은... 이미 봄이고, 날씨도 바람도 내 기분과 상관없이 밝고 환하기만 했다.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끓어오르고 누구든 걸리기만 하면 실컷 때려주고 싶을 정도의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급기야 눈물이 줄줄 흐르고 그대로 길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소리 내서 엉엉 울고 싶은걸 간신히 참았다.


좁은 우리 집구석에 현재 우리 식구 포함 열 명이 살고 있다. 미국으로 이민 간 작은 형님네 식구 여섯 명이 4월 초 비자 갱신 문제로 온 식구가 한국에 임시 귀국해 우리 집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다.

우리 식구 넷은 아이들이 자던 문간방 겸 거실에서 자고, 식구 많은 그들에게 안방을 내주었다. 작은 방은 그들이 가지고 온 크고 작은 여행 가방들로 가득 차 큰 조카 녀석 하나 누우면 더 이상 발 뻗을 곳도 없이 되었다.


하나뿐인 화장실에, 일어나는 시간이 제 각각이라 매 끼니마다 두세 번씩 차려대는 밥상. 아침저녁으로 씻어대는 그 식구들 덕에 하루에 두 번 이상 돌려대는 세탁기. 끼니때마다 가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10인분의 먹을거리. 무엇보다 우리 가족들만의 생활리듬이 완전히 깨져버린 것이 가장 속상했다. 그 와중 친척 결혼식 있다고 시부모님까지 올라오셔서 하룻밤을 주무실 땐 난... 급기야 부엌 싱크대 밑 마룻바닥에 웅크리고 자야 했다. 거지 같은 이 상황도 "남매끼리니까 서로 돕고 사는 것"이라며 이 많은 식구들이 호텔로 안 가고 우리 집에 머물러 숙박비를 아꼈다며 시부모님은 당연하게 생각하셨다.


다 견뎠다. 그럭저럭 참아졌다. 그런데 오늘 아침 작은 아주버님과 작은 조카가 아침 준비하는 내 등뒤에서

반찬 타령을 하고 앉았더라. 메뉴가 늘 똑같다며... 영양 운운해 가며... 열불이 났다. 겨우겨우 참고 견디고 죽을힘 다하고 있는 나한테... 내가 가정부도 식모도 아닌데... 속 상하고 화가 났지만.... 아무 말도 안 했다. 아니 못 했다.


그렇게 아침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와서 거리를 걷자니 눈물이 났다. 길거리 사람들이 보고 지나가는데도 줄줄줄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내 신세가 처량하고 화가 나고 왜 내가 이렇게까지 해가며 당연하듯

희생을 해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식구들이 우리 집으로 온다고 했을 때 안된다고 말 한마디 못한 바보 같은 내가 제일 한심스러웠다. 시부모님을 비롯 남편까지도 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내가 오히려 나쁜 사람인 것 같고 평소 별 유감없이 잘 지내던 가족이니 어쩌면 별로 힘들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하였다. 그러나 꼭 해보지 않아도 알았어야 했다. 나쁜 년 소릴 듣더라도 난 못한다고 뻗댔어야 했다.

정해진 기한이 있으니 그 기간 동안만 참으면 되겠지...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버겁고 힘들고 불편했다. 내가 배려하고 신경 쓰는 만큼 오히려 갈수록 맘 편하게 마치 자기네 집인 양 때때로 주객이 전도된 느낌마저 들었다.

꾹꾹 참다 오늘 아침 한계가 온 것이다. 내가 가둔 내 울타리. 이렇게 길바닥에서 소리 없이 우는 게 고작이며 분명히 이렇게 울고 나서 스스로를 또 다독이며 내 감정은 숨길 것이다. 나는 언제쯤 싫은것을 싫다고 말하고 살 수 있을까. 내 맘에 솔직해지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겠지. 그 첫 시도를 언제 어떤 계기로 하게 될까. 할 수는 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