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게 늙어가기

2010.06.20

by 갱구리

소나기가 지나는 중이었다. 갑자기 만난 비에 해를 피하려고 할머니가 들고 나오셨을 작은 양산 하나를 팔짱을 꼬옥 끼고 한 몸같이 딱 붙어 쓰시곤 어느 노부부가 종종걸음으로 내 곁을 스쳐지나가셨다. 빗방울이 제법 굵어진 순간이었는데 그 작은 양산 하나로는 두 분의 머리정도 밖엔 못 가리고 등이며, 어깨는 그대로 비를 맞으시면서도 그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무슨 얘긴지 참 재미있으신 모양이었다. 지나치는 잠깐 순간에도 두 분은 뭐라 뭐라 얘길 나누시며 함께 웃고 계셨다. 저만치 앞서 멀어져 가시는 두 분의 뒷모습에도 웃음이 따라가고 그저 행복한 기운이 가득해 보였다. 참 좋아 보였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문득 나도 저런 모습으로 나이들고 싶단 생각이 간절해졌다.


결혼하고 나서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친정 엄마, 아버지 싸우시는 모습을 더 이상 일상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자식들이 보고 있든 말든 상관없이 자기 입장만, 감정만 내세워 가며 열정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견디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정말 어디가서 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참 사춘기땐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이 집구석을 뛰쳐 나가고만 싶었다. 왜 우리 부모는 단 하루도 싸우지 않는 날이 없는가, 왜 다른 부모들처럼 고상하지 못한가... 부끄럽고 지겨웠다.


결혼을 하고 나서 만난 시부모님 역시 친정 부모님과 별반 다르지 않으셨다. 늘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한치의 양보가 없으시니 큰소리도 심심찮게 들렸다. 그럴 때면 남편 얼굴은 심각해진다. 그런데 난 또 그런 시부모님이 때론 귀여우시다 느껴질 때 마저 있다. 뭐 저런 걸로 저리 싸우실 것 까지야... 그런다. 그러면서 '참 나도 웃긴다...' 싶어 진다. 친정 부모님 싸우시는 건 경기 날 정도로 싫어하면서 한 다리 건너 시부모님 싸우시는 건 그리 심각하게 와닿지 않으니... 친정부모님 싸우실 때에도 이런 여유만만한 맘이면 좋겠다 싶기도 한다.


이제 자식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당신들도 나이가 많이 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친정 부모님은 열정적으로 싸우신다. 가끔 들르는 친정에서 엄마 따로 아버지 따로 날 붙들고 하소연하시곤 하니까... 그럴 때면 또 난 심각해지고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저러고 사시는 부모님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친정 다녀오는 일이 즐겁거나 맘 따뜻한 일이 아니라 내 딴에는 엄청난 각오가 필요한 일이 되었다. 역시나 엊그제 올라와 계신 시어머님도 온통 아버님에 대한 불만토로가 대화의 주된 내용이다.


부부가 되어 자식 낳고 한평생 살면서 서로 정 좋게 늙어간다는 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삶이 고단하고 생활이 현실이고 이런저런 맘 같지 않은 세상과 그 세상보다 더 날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배우자 때문에 물론 늘 한결같이 정이 좋을 순 없을 테지만 말이다.


엄마 아버지 싸우시는 내도록 가슴 졸이며 저 싸움이 언제쯤이면 끝날까... 불안하고 짜증 나고 화나고 눈물 나던 그 모든 시간들을 내 아이들한테는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남편과 사이좋게 정 좋게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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