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간

2011.07.08

by 갱구리

남편이 입원하고 수술한 지 오늘로 벌써 11일째인가 보다. 정신없이 열흘쯤 휙 지나고 있다. 그동안 남편은 격리 1인실에서 격리 4인실로 옮겼고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각각 30분씩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어 그 시간에만 병원에 다녀온다. 오늘 아침 그동안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어머님도 내려가시고, 엄마가 집으로 돌아와 좋은지 아이들 표정도 많이 밝아졌다.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울적해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후 면회 시간에 함께 병원에 갔다. 마스크를 씌우고 손소독을 하고 잠겨있는 병실 출입문에 난 작은 유리창으로 남자 셋이 대면을 했다. 아빠가 뭔가 주렁주렁 달린 게 많은 뽈대를 살살 밀고 한참 만에야.... 유리창 가까이 다가와 섰다. 열흘여 만에 보는 환자복 입은 아빠 얼굴에 열흘동안 자란 수염이 잔뜩, 산적 같기까지 한 아빠 얼굴, 보자마자 서로 반가워 환하게 웃다 이내 눈물들이 그렁그렁 해지고...

"엄마, 안에 들어가서 아빠 한 번 안아보면 안 돼요?"

"안돼... 오늘은 아빠 얼굴 이렇게 보는 걸로 만족하자."

"아빠~~ 파이팅..."

"우리 곰식이, 곰돌이도 파이팅~ 아빠 건강해져서 나갈게. 조금만 기다려~."

애들 글썽거리니 유리문 너머 남편 일부러 익살맞은 표정 지어 보이고. 그제야 애들도 웃고 나도 덩달아 웃었다.


지금 격리 4인실엔....

남편 수술받은 같은 날, 같은 뇌사자에게서 받은 또 다른 신장을 가진 43세 아주머니 한 분, 예전에 신장이식받고 잘 지내시다 다른 곳에 문제가 생겨 다시 입원하신 60세 후반의 할머니 한 분, 그리고 우리 남편. 4인실에 환자는 셋 뿐이다.


4인실에 옮기고 나서야 그동안 겁나게 자란 수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의사 선생님께 면도 좀 해도 될까냐고 여쭸더니 일반 면도기로는 면도하면 안 되고, 꼭 전기면도기를 사용하라 하셨다. 여태 그냥 일반 면도기를 사용해 왔었기 때문에 급하게 인터넷으로 전기면도기를 주문했다. 그런데 물건 보냈단 메시지 뜬 지가 한참인데도 배송이 늦다. 아침 회진 돌 때 담당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란다. 뭘 얼마나 좋은 걸 시켜서 여태 안 오냐고.

어제 드디어 면도기가 도착했고 그걸 들고 기분 좋게 면회를 가서 열흘여 동안 자란 남편의 수염이 깔끔하게 잘리는 걸 보고 왔다. 면도를 하고 나니 깔끔하고 혈색도 더 좋아 보이고 남편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 잘 생겼따~~ 누구 신랑이야????"

"ㅎㅎㅎ. 자기 신랑이지..."

"면도했다고 간호사선생님들한테 작업 걸지 말고.... 응?"

"... 이 사람이....!!!"

입원한 이후 처음... 둘이 기분 좋게 웃었다.

볼 때마다 생기 있어지고 날마다 움직임도 덜 불편해하니 내 맘도 덩달아 평온을 찾아가고 있다.



이제 앞으로 이후 관리가 중요하고, 일상이 조금 더 조심스러워도 지겠지만, 지난 10년쯤 아침, 점심, 저녁, 밤 하루 네 차례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 지켜가며 성실하게 지켜왔던 복막 투석생활도 이제 끝이다.

집 안 한 구석 바닥에서부터 천장 높이까지 달마다 가득 쌓였던 1.5%, 2.3% 투석액 약상자들도 안녕.

거즈며, 면봉, 박트로반연고, 포비돈스틱, 꼬다리, 심장 떨며 놓던 조혈제 주사, 이틀쯤 게으름 피우면 산더미가 되던 투석액 약봉지들. 그걸 처리하고 일일이 묶어 버리려 화장실 앞 한켠에 장승처럼 늘 서 있던 100리터짜리 오렌지색 쓰레기봉투도 안녕. 어디 한번 가려하면 집을 떠나는 날수만큼 피난짐 싸듯 바리바리 챙겨야 했던 투석액 약과 용품들과도 이제 안녕.


정말이지 이것저것에서 많이도 자유로와 지겠다. 생각만 해도 홀가분해진다. 남편에게 이렇듯 앞으로의 새 삶을 살게 해 주신 신장기증자분의 몫까지 선한 일 하며, 착하게, 성실하게 남은 생을 감사로 살아야겠다. 모든 것이 감사한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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