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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킨무무 Jul 18. 2024

서사충에게 뒤라스란

<태평양을 막는 제방>_ 마르그리트 뒤라스, 민음사






"백인들은 늘 씻은 몸에 늘 말끔한 새 옷 차림으로 더없이 하얘졌다. 쉽게 더러워지는 옷을 입은 야수들은 별장의 그늘에서 오수를 즐겼다."p.174


"아이들이 너무 많이 죽죠. 백인들이 말했다. 그랬다. 앞으로도 계속 죽어 갈 터였다.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가난을 향해 열린, 소리 지르는, 내어놓으라고 조르는, 뭐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입이 너무 많았다. 아이들은 그래서 죽었다. 땅 위에 쏟아지는 햇빛도 너무 많았다. 들판에도 꽃이 너무 많이 피었다. 그리고 또? 너무 많지 않은 게 뭐가 있을까?"p.335


캄보디아의 캄 평야에 모든 재산을 투자하여 불하지를 신청해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아버지 없이 남은 아이들과 삶을 꾸려나가야 했던 어머니의 희망에 찬 선택이었으나 그 결과는 절망이었다. 식민지 토지국으로부터 받은 땅이 해마다 바닷물이 범람하는 소금기로 절여진 땅이었던 것이다. 몇 해동안 희망을 놓지 않고 바닷물을 막아보려 제방을 쌓았으나 태평양의 물은 무한하고 그녀의 재산은 유한했다. 승산 없는 싸움으로 인해 어머니는 망상과 히스테리에 사로잡히고 그것은 모조리 아들 조제프와 딸 쉬잔을 향한다.


작품은 어머니의 절망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쉬잔의 성장기이다. 좁게는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문제에서 넓게는 여성적 시선으로 바라본 식민지의 현실까지 뒤라스는 특유의 건조하면서 섬세한 문체로 드러낸다. 특히 앞에 인용한 것처럼 식민지 아이들의 삶과 지배계급인 백인들의 그것을 묘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쉽게 더러워지는 옷을 입고 그늘에서 한적하게 낮잠을 즐기는 육식동물과도 같은 백인들과 끊임없이 먹이를 요구하며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끼새떼와 같은 식민지 아이들에 대한 대비적인 묘사는 뒤라스 아닌 그 누가 할 수 있을까?


또한 이 작품에는 작가 유년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첨가되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을 발표한 후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절연까지 당했다고 하니 대체 어디까지 작가의 실제 이야기가 투영된 것인지 궁금하다. 히스테릭한 엄마와 그 광기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아이들, 오빠와 여동생 사이의 은밀하고 묘한 기류 같은 설정은 아주 좋았으나 의식의 흐름 같은 서술방식은 작품을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당시 발자크 식의 완벽하게 짜여진 듯한 이야기구조를 벗어나고자 했던 문학계의 기류이자 작가 고유의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서사충인 나로서는 고백컨대, 발자크 식을 더 숭배한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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