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낳은 '서스펜스의 여제'라고 하는데 대표 작품을 아직 못 읽어봤다. 그녀가 작가로 데뷔하기 전과 초기 작품들을 묶어 낸 단편집이라는 말에 입문작으로 딱이겠군, 이라는 생각으로 대출. 다시 말하면 1926년부터 32년 사이에 쓴 작품들이라고 하니 약 100년 전 글들이고 그녀의 나이 19세에서 25살 사이에 쓰여진 셈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냉소적이지?
보통 그 나잇대는 근거 없는 희망의 꽃밭에 사는 게 보통 아니겠는가, 역시 작가는 떡잎부터 다르다. 혹은 대작가들이 무릇 그러하듯 그 유년시절이 무척이나 혹독했던지. 혹시나 하고 찾아본 그녀의 개인사에 역시나.
물론 세계대전을 관통하는 시대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었겠으나 그녀의 개인사적인 배경에 더욱 명확한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 유명 작가였던 조부와 역시 유명한 배우인 아버지를 둔 그녀는 태생적으로 과잉과 결핍 사이를 오고 갔을 것인 데다 어머니는 그녀와 아버지의 사이를 시기하고 의심하였으며 실제로 성적학대까지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그녀에 대한 집착적인 애정으로 인한 부녀의 골은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 참석 거부로까지 이어졌다 하니 그녀의 작품 속 스산하기까지 한 냉소적 태도의 근원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결혼과 연애에 관한 신랄하고도 냉소적인 견해, 인간 본성에 드리워진 위선과 착취적 태도를 다루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은 그 시대와 그 나이를 생각하면 무척이나 놀랍기도 하지만 그녀의 작품 속에 은연히 깔려 있는 인간혐오는 그 나잇대에 어울리지 않아 슬프게도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