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 낸 것이다. 저널리즘의 실태묘사 중에《빌트》지와의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p.7
뿌뿌뿌뿌이~ 첫 문장 시작도 전에 부숴주심. 보통은 가상의 작품에서 특정 인물이나 단체,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면 그것은 필시 우연의 산물이니 오해 삼가시라, 라고 표현할 텐데 불가피한 일일 뿐이라니. 소위 '멕이고' 시작하는 작가의 고발정신이 돋보인다.
이렇듯 대놓고 고발소설인 이 작품은 1974년작으로, 무고한 여성이 언론사의 묘하게 조작된 의도된 오보로 인해 사회에서 매장당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크리스티나 블룸은 가정부 일을 하고 있는 평범한 여자로 어느 댄스파티에서 루트비히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서로 호감을 느끼어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그녀의 집으로 들이닥친 경찰로 인해 괴텐이 횡령에 살인 혐의가 있는 인물로 내내 수배되어 쫓기던 인물임을 알게 된다. 카타리나는 그녀의 무고함을 주장하며 묵비권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대중의 저속한 호기심과 그를 자극하려는 언론들의 왜곡된 허위보도로 인해 카타리나는 어느새, '살인자의 정부'에서 시작하여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로 매도당하게 된다.
재밌는 것은 작가가 이러한 사건의 흐름을 순차적으로 나열하여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품은 퇴트게스라는 기자가 총기난사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살인사건을 전면에 내세운다. 또한 범인은 범행 후 수시간이 지난 후 순순히 자수했으며 그 이름이 카탈리나임을 알린다. 이제 일간지의 독자들처럼 우리는 그녀가 왜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는지, 범행 후에 그녀가 보여준 냉정에 가까운 차분함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작품 속 화자는 이러한 우리를 워워~하고 진정시키듯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 카타리나와 기자 간에 있었던, 앞서 이야기한 사건들을 아주 침착한 태도로 기술해 준다.
대중을 자극시키는 언론의 보도 테크닉을 이용한 이야기의 배치, 언론사의 언어에 대한 묘사가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카타리나를 묘사하는 '영리하고 이성적'이라는 주변인의 진술에서 '얼음처럼 차갑고 계산적'이라는 말을 뽑아내고 그러므로 '확실히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으로 바뀌는 언론사의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잔혹한 테크닉 같은 것. 그에 반해 카타리나가 경찰조사 이후 조서를 꾸밀 때 적확한 표현을 고르느라 검토를 거듭한다는 식의 설정은 일반인조차 인지하는 활자의 힘을 언론이 알지 못하고, 혹은 앎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적절치 못한 곳에 휘두르며 언론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를 견지하지 못함을 비판하는 장치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가장 암울한 것은 이러한 언론사의 횡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이 작품의 모든 것이 전혀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다. 권력의 눈치를 보며 누군가의 입맛에 철저하게 맞추어 짜여진 보도들이 대중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개인들의 쉬이 휩쓸리지 않는 통찰력이 필요한 시대다. 언제쯤 '찌라시', '기레기'같은 단어가 설득력을 잃을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