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저항하라!

<나의 눈부신 친구>_엘레나 페란테, 한길사

by 피킨무무







"내겐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 우리의 유년기는 폭력으로 가득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매일매일 별의별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인생이 특별하게 기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고 어쩔 수 없으니까.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힘들게 할 숙명을 타고 태어났고 타인들도 우리 인생을 힘겹게 할 숙명을 타고 태어났다."p.40



1950년대, 전쟁 후 나폴리의 가난한 동네를 배경으로 두 친구의 우정이 시작된다. 두 사람의 유년기에서 청소년기까지를 다룬 이 작품은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증오하고 질투하는, 라이벌이자 동반자인 우정의 이면을 드러내 보인다.


모범생 레누와 문제아 릴라는 너무나도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기에 서로에게 강렬하게 끌리게 된다. 서로를 동경하면서도 시기하는 그들의 관계는 매우 보편적이고 클래시컬하지만 화자인 레누의 시점으로 묘사되는 릴라 캐릭터가 꽤나 매력적이어서 그녀의 추락(?)이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졌다.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음에도 빈곤하고 폭력적인 환경 때문에 끝내 꿈을 포기하며 대신 레누에게 자신의 꿈과 목표를 투영하는 릴라의 대사가 애처롭다.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p.416



가족에게 부와 기회를 가져다줄 마르첼로와의 결혼보다 자신의 사랑(이라고 생각되는) 스테파노와의 결혼을 선택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그게 진실일리가. 그것은 그저 자기기만에 불과할 뿐이고 16살의 이른 결혼은 결국 앞 선 결혼자리와 다를 바 없을 것임을 암시하는 엔딩까지, 그녀에게 주어진 운명은 가혹하기 짝이 없다.


"천민이 무엇인지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 모두사 천민이었다. 음식과 와인을 둘러싼 다툼, 더 빨리 음식을 제공받고 더 나은 서비스를 해달라고 벌이는 싸움, 웨이터들이 분주히 오가는 더러운 바닥, 시간이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저속한 건배사야말로 비천한 것이었다. 포도주에 취해 금속공예품 상인의 음담패설을 진지하게 듣다가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아버지와 그 어깨에 몸을 기대고 있는 어머니도 천민이었다."p.440


자신이 속한 세계의 비천함을 깨닫고만 레누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지, 또한 그 세계 속에 남겨질, 하지만 결코 운명에 순종적이지 않을 릴라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할지 뒷 이야기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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