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어려서 왕이 된 것은 네 행운이자 불행이로구나
<나 제왕의 생애>_쑤퉁
얘야, 어려서 왕이 된 것은 네 행운이자 불행이로구나.
<나 제왕의 생애>_쑤퉁
이것은 평생동안 왕으로 살았던 단백의 이야기다. 부왕의 붕어 후 할머니 황보부인에 의해 열 네살의 나이에 섭국의 왕위에 오르게 된 단백은 수렴청정을 위한 허수아비이자 어린 꼭두각시 왕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것을 호령하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왕좌에 앉게 된 그는 세상을 발 아래에 두었으나 좋아하던 귀뚜라미를 넣어둔 상자처럼 그 자신도 거대한 관인 대섭궁 안에서 생활하게 된다.
" 잠깐 옷을 바꿔 입었을 뿐인데도 내게 금관과 용포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건초 더미 위에서 연랑이 말 타는 모습을 지켜보며 느낀 당혹감과 울적함을 뭐라고 형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섭왕의 복장을 다른 사람이 차려입어도 똑같이 어울리고 위풍당당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환관의 노란 옷을 입으면 환관이 되고 제왕의 용포를 입으면 제왕이 된다. 그것은 실로 무시무시한 체험이었다." p.93
그러나 왕이라는 자리가 기실 보잘 것이 없으며 하나의 커다란 사기극임을, 또한 천명따위는 존재치 않으며 누구라도 그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불안과 환각에 시달린다. 결국 즉위 8년만에 폐위된 그는 서민으로서의 생애로 내몰린다.
이처럼 이야기는 신해혁명 이후 청나라 왕조의 몰락을 다룬 영화 <마지막 황제>를 떠올리게 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도 유사하다. 그러나 후반부의 느낌은 상당히 다른데, 이는 이리저리 이용당하고 휘둘리던 연약한 마지막 황제 푸이와 달리 단백은 나름 자신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곡마단의 줄타기꾼이라는 꿈을 향해 자신을 단련하여 마침내 줄타기왕으로 변모하는 모습이 그것인데, 섭왕은 타인들이 제멋대로 씌워준 왕관이었으나 줄타기왕은 스스로 머리에 올린 왕관이라는 점에서 대조를 이룬다. 비록 신분은 왕에서 광대로 전락하였으나 그의 삶은 하늘의 높고 새로운 세계로 전입한 것이다.
"불현듯 깨달았다. 인간은 모두 이 세상에서 힘든 여행을 할 운명이라는 것을. 마치 목동이 숨겨진 풀밭을 찾기 위해 황무지와 무덤 사이에서 방목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p.302
이제 한 뙈기 땅을 다스리는 일휴왕으로서 고요히 여생을 보내는 단백의 마지막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의 일생이 만물의 의미를 담아내는 동시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사이 어드메를 헤메어야 하는 존재임도.
300여년 전에 살았던 영국의 시인 사무엘 존슨 역시 권력을 소망하는 인간들에게 인생의 부질없음을 이렇게 노래했다.
"셀 수 없는 청원자들이 성공의 문 앞에 몰렸네,
부에 목마르고, 권력에 몸이 불타네.
속임수 많은 운명은 그들의 끊임없는 기도를 듣네,
그들은 오르고, 빛나고, 증발하고, 추락하네." <인간 소망의 허망함> 중에서
인간의 흥망성쇠가 물의 순환과도 같은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권력을 획득한 자는 사실 추락을 앞 둔 것이다. 벼락같이 찾아온 제왕의 자리라는 행운이 동시에 불운이기도 하다는 것은 비단 단백에게만 해당되는 사연은 아니다. 그러니 기왕 살아가야한다면, 또 운명의 여신이 그렇게나 변덕스럽고 속임수를 잘 쓴다면, 우리에겐 그녀가 우리의 앞날에 놓아주는 바둑알 한 수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논어"나 꺼내어 추락의 속도를 조절할 낙하산으로 활용할 초연함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