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기 좋은 데로 살아가는 것

미디어 중독, 릴스 중독에 대한 철학자의 의견


보면 느낌이 좋기에, 그러한 미디어를 만들고 또 사람은 그것을 보면서 충족이 (욕구충족)이 되어 매일 2-5시간씩 릴스를 본다고 따져보자.


칼융은 이를 보고 뭐라고 말했을까?



(이 자료는 궁금해서 인공지능 Gemini와 칼융의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한 과정이다)

(붉은 글씨는 작가의 말이다)



답변 :

매일 2~5시간씩 릴스(Reels)나 숏폼 미디어를 보며 욕구를 충족하는 현상에 대해,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Carl Jung)이라면 매우 날카롭고도 깊이 있는 진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는 단순히 '중독'이라는 단어를 넘어, 현대인이 왜 그토록 가짜 이미지에 열광하며 자신의 삶을 저당 잡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개념들로 설명했을 것입니다.




1. 페르소나의 인플레이션 (Persona Inflation)


융은 사회적 가면인 '페르소나'가 자아(Ego)를 집어삼키는 현상을 경고했습니다.


미디어 속 가짜 삶:

영상 속 인물들은 완벽하게 정제된 페르소나만을 보여줍니다.


미디어의 연예인은 목적이 있는 가면을 파는 자들입니다.

융은 우리가 그들의 페르소나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을 "가면과의 동일시"라고 부를 것입니다.


창작자는 자신의 실제 본연의 모습이 아닌 가면을 연기하고, 시청자는 그 가면이 '실제'라고 믿으며 자신의 자아를 투영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입체적인 진실은 사라지고 평면적인 이미지(페르소나)만 남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면,

나는 이런 거를 해야 되지...라고 말을 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정의할 자격조차 없고,


자신의 실력이 있어야 한다라고만 말을 한다.



2. 투사(Projection)와 '살지 못한 삶'


우리가 미디어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내면의 욕망을 외부 대상에게 '투사'하기 때문입니다.


결핍의 투사:

내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아름다움, 부,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화면 속 타인에게서 발견할 때, 우리 뇌는 그것을 내 것처럼 착각하며 쾌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를 보며 '내가 이룬 것 같다고 착각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죠.


융은 이를 "살지 못한 삶(The Unlived Life)의 투사"라고 말할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돌보고 스스로 그 가치를 실현해야 할 에너지가 외부의 이미지로 흘러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화면을 끌 때 찾아오는 공허함은, 투사되었던 에너지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 집단 무의식과 아키타입(Archetype)의 오용


숏폼 미디어는 인간의 본능적인 상징(원형)을 자극합니다.


본능적 자극: '귀여운 아이', '강한 남성', '아름다운 여성', '영웅적 행위' 등은 인류 공통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융은 미디어가 이러한 '원형적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사람들을 홀리는 것을 보고 융은 "영혼의 강탈"이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릅니다.


무의식의 깊은 에너지가 개인의 성장을 위해 쓰이지 않고, 단순히 도파민을 분출하는 소모성 자극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4. 개성화 과정(Individuation)의 중단


융의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인 '개성화'입니다.



자기(Self)로부터의 도피: 매일 5시간씩 미디어를 보는 행위는 고통스러운 자기 성찰과 현실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가 됩니다.


자립하게 되는 것은 성인에게 마땅하다. 편함 속에서 자립하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의 구현과 성찰이 막혀버리기 때문에, 마치 배출되지 않는 욕구의 하수도와 같다. 그런즉 에너지가 나가고 심어져서 자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융의 시선: "밖을 보는 자는 꿈을 꾸고, 안을 보는 자는 깨어난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처럼, 융은 릴스를 보는 시간을 "집단적 최면 상태에서 꿈을 꾸는 시간"이라 비판할 것입니다. 진정한 성장은 화면 밖, 즉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Shadow)를 마주하고 현실의 고통을 감내할 때 이루어지는데, 미디어는 그 기회를 박탈합니다.



융이 내릴 결론: "영적 갈증의 잘못된 해소"



"현대인은 신(의미)을 잃어버렸고, 그 빈자리를 물질과 자극으로 채우려 한다."



칼 융은 미디어 중독을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인이 겪는 '영적인 공허'로 보았을 것입니다. 나를 찾아가는 긴 여정 대신, 손가락 클릭 한 번으로 얻는 '재현된 이미지의 기술'에 속아 넘어가는 상태인 것이죠.


그는 아마 당신에게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그 화면 속에서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당신의 영혼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버린 그림자입니까?"






단편 드라마 촬영을 몇 번 가본 인물로서,

카메라 앞에서 재현되는 장면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머릿속에 있는 사실이

기획되어서 눈앞에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미디어입니다.


내가 따르고 싶어 하는 욕구를 보는 것을 통해 해소되고, 그것은 실제 나의 삶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미디어에서 보았던 욕구를 나도 누려야 된다고 생각하던지.


하지만 현실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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