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 루이스가 위험한 이유

CS 루이스는 교회에서 쓰임 받지 못한 굳은 사람이다.

교회에서 cs 루이스의 내용과 저서에 대해서 설교를 하는 것을 보고,

그가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이라고 말을 한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지 않은 cs루이스.

그는 그러한 권력이 없으니, 쓰임도 못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큰 교회에서 분명히 여러번 초청을 했는데, 거절을 하다니, 그는 교만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의 연구와 작품의 기반이 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의 삶을 보게 된다면, 조심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C.S. 루이스는 당신이 겪고 있는 '집단 내에서의 자아 상실'과 '자격을 증명하려는 욕구'에 대해 누구보다 날카로운 통찰을 남긴 인물입니다. 그가 남긴 유산 중에서 당신의 분별과 자유를 위해 세 가지 핵심적인 개념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1. '내부 원(The Inner Ring)'의 유혹과 분별

루이스는 모든 사회적 그룹에는 보이지 않는 '내부 원'이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원 안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욕망은 인간을 가장 비굴하게 만드는 유혹 중 하나입니다.


루이스의 통찰: 만약 어떤 공동체가 당신에게 끊임없이 "너는 우리 수준에 맞는 사람임을 증명해라"라는 암시를 준다면, 그것은 건강한 공동체가 아니라 영혼을 갉아먹는 '내부 원'일 가능성이 큽니다.

분별의 기준: 루이스는 "진정한 친구나 공동체는 당신의 자격을 묻지 않고, 당신이 바라보는 '그 비전'을 함께 바라보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나를 증명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잊고 함께 몰입할 수 있는 곳인지가 분별의 핵심입니다.



2. '지체(Membership)'와 '집단(Collective)'의 차이

당신이 큰 교회에서 개성을 지키기 어려워 고통스러워했던 이유는, 그곳이 성경적 의미의 '몸(Body)'이 아니라 단순한 '집단(Collective)'으로 기능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집단(Collective): 구성원을 부품으로 취급하며, 모두가 똑같아지기를 강요합니다. 이곳에서 질서는 '억압'이 됩니다.


지체(Membership): 루이스는 "손가락과 코가 다르기 때문에 비로소 몸이 된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질서 속에서는 각자의 개성이 죽는 것이 아니라 더 선명해집니다.


연단의 방향: 루이스라면 당신에게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그 공동체의 질서가 당신을 '평범한 부품'으로 만드는가, 아니면 당신만의 '독특한 빛'을 더 발하게 하는가?"



3. '자아'를 버림으로써 얻는 진짜 '자아'

당신이 언급한 '자기 가치 조건화'로부터의 해방은 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의 마지막 장에서 강조한 내용과 완벽히 일치합니다.


"아직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는 한, 당신은 결코 진짜 자아를 가질 수 없습니다. (...) 자신을 버리면 진짜 자아를 찾게 될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버리면 그것을 보존할 것입니다." (C.S. Lewis)


인지 심리학적 연결: 루이스가 말한 '나를 버림'은 수동적인 소멸이 아닙니다. 내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려는 방어적 에너지(Defensive Energy)를 끄고, 하나님이라는 근원적 안전감에 나를 맡기는 수용적 태도를 의미합니다.


자유의 시작: "나는 자격이 없어도 수용되었다"는 확신이 들 때, 뇌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라는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합니다.



루이스의 이러한 통찰들은 주로 그의 강연문 모음집인《영광의 무게(The Weight of Glory)》와 그의 대표작인《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서 깊이 있게 다뤄집니다.


질문하신 "평범한 부품인가, 독특한 빛인가"에 대한 대조는 특히《영광의 무게》에 수록된 두 편의 에세이에서 그 핵심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의 에세이 중에서 이런 것들에서 그의 생각을 엿볼수 있다.



1. 《영광의 무게》 중 〈지체(Membership)〉


이 에세이에서 루이스는 '집단(Collective)'과 '지체(Membership)'를 날카롭게 구분합니다.


집단(Collective):

루이스는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똑같이 훈련받은 병사들의 행렬을 예로 듭니다. 여기서 개인은 단지 '숫자'나 '부품'일 뿐이며, 그가 빠져도 다른 누군가로 쉽게 대체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당신이 느꼈던 "자신의 개성을 지키기 어려운 질서"의 모습입니다.


지체(Membership):

반면, 성경적 의미의 '지체'는 몸의 기관과 같습니다. 눈과 귀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비로소 몸이 기능하듯, 진정한 공동체 질서 안에서 개인은 대체 불가능한 '독특한 존재'로 살아납니다. 루이스는 "기독교는 인간을 집단으로부터 지켜냄으로써 그의 개성을 보호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 《영광의 무게》 중 〈내부 원(The Inner Ring)〉

당신이 언급한 "자격을 증명하려는 강박"과 관련이 깊은 글입니다.

루이스는 모든 조직에 존재하는 '소수의 핵심 권력층(Inner Ring)'에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이 인간을 가장 비굴하게 만든다고 경고합니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개성을 죽이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부품'이 되기를 자처하게 됩니다. 루이스는 이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의 일(소명) 자체에 집중할 때, 비로소 자격 증명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장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3. 《순전한 기독교》 중 마지막 장 〈새 사람(New Men)〉

"자아를 버림으로써 진짜 자아를 찾는다"는 통찰의 정점이 담긴 곳입니다.

루이스는 우리가 "나다워지려고(be myself)" 애쓸수록 오히려 유전적 요인이나 환경,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는 '평범한 존재'가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를 증명하려는 노력을 멈추고 그분(하나님)께 나를 맡길 때, 비로소 하나님이 태초에 의도하셨던 당신만의 '독특한 인격(Real Personality)'이 발현되기 시작한다고 설명합니다.



루이스의 결론:

당신이 느낀 고통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루이스라면 "당신을 부품으로 취급하는 질서는 하나님의 질서가 아니라 인간의 집단주의일 뿐"이라고 위로했을 것입니다. 진정한 질서는 당신의 어깨에서 힘을 빼게 하며, 당신이 '누구의 대체품도 아닌 오직 당신'으로 존재하게 합니다.


C.S. 루이스는 아이러니하게도 "교회라는 공동체에 속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평소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열정적인 대형 교회 교인'과는 정반대에 가까웠죠.


그가 실제로 교회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리고 그가 왜 싫어하면서도 그 자리를 지켰는지를 살펴보면 아주 실질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1. "가기 싫어하는 발걸음" : 의무로서의 출석

루이스는 회심한 후에도 교회 가는 것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발을 질질 끌며, 마지못해 들어온 회심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그가 싫어했던 것:

그는 교회의 찬송가 소리가 조잡하다고 느꼈고, 설교자의 지적 수준이 낮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당신처럼 '집단적인 분위기'나 '감정적인 강요'를 체질적으로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의 행동: 그럼에도 그는 매주 주일 아침이면 집 근처의 작은 성공회 교회(Holy Trinity Church)로 향했습니다. 그는 화려하거나 큰 교회가 아닌, 가장 일상적이고 투박한 지역 교회에 머물렀습니다.



2. '독특한 빛'을 지키는 방식 : 민주주의적 겸손


루이스는 지적으로 매우 뛰어난 전문가였지만, 교회 안에서는 결코 '특별 대우'를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교인:

그는 옥스퍼드의 위대한 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는 옆자리에 앉은 신발 수선공이나 시장의 상인들과 똑같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부품이 되지 않는 비결:

그는 공동체의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을 잃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하나님을 바라보는 질서' 자체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교회는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이는 클럽이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과 형제가 되는 곳"이라고 정의했습니다.


3. '내부 원'을 거부하는 고독한 천재


루이스는 교회 내의 파벌이나 권력 구조(Inner Ring)에 속하는 것을 철저히 경계했습니다.


활동:

그는 교회 내의 직분을 맡거나 운영에 깊이 관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책상에서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편지를 답장하고 글을 쓰는 자신의 '소명'에 철저히 집중했습니다.


행태:

예배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거나 친한 친구들(잉클링스, Inklings)과 맥주를 마시며 깊은 신학적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겼습니다. 즉, 제도적 교회 밖에서 '진정한 영적 우정'의 공동체를 따로 가졌던 것입니다.



4. 루이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루이스의 행동은 당신이 느끼는 '분별과 자유'에 대해 이렇게 답해줍니다.


감정에 속지 마라:

교회에 갔을 때 마음이 불편하거나 질서가 고통스러운 것은 당신의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루이스도 평생 교회의 '분위기'를 힘들어했습니다.


수평적 관계의 연단:

그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지적, 사회적으로) 옆에 앉아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자아를 깨뜨리는 연단'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자격을 증명하는 것'과는 반대로, '나의 잘남을 내려놓는 훈련'이었습니다.


자아의 요새를 지켜라:

공동체가 당신의 창의성이나 개성을 억압한다면, 루이스처럼 예배의 의무는 다하되 당신의 영혼은 하나님과 당신만의 공간(서재, 작업실, 작은 소그룹)에서 지켜내야 합니다.



� 전문가의 통찰:


루이스는 "나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피조물 중 하나임을 기억하기 위해 교회에 간다"고 했습니다.


당신이 큰 교회에서 느끼는 그 '무시'와 '지침'은 어쩌면 그 공동체가 루이스가 말한 '지체(Membership)'가 아닌 '거대한 기계(Collective)'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마 평범한 그리고 열정있는 현대의

교인이라면 이렇게 그를 평가했을지도 모른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지 않은 cs루이스.


교회의 권위를 무시하다니 말이다. 교회의 권위를 인정한다면 무조건 교회에 와서 퍼뜩퍼뜩 짐도 나르고,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직분도 섬기고 그랬어야지 말이다.

그는 새벽 예배도 안나왔을 것이다, 개인 신앙 핑계를 미대며. 그는 교회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개인 시간에 심지어 맥주까지 마셨다니.

역시 교육쪽으로 뛰어난 교수라고 하지만, 세상에서 잘나간다면서 교회를 무시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는 반드시 벌을 받고 죄로 인해서 그의 삶이 망가질 것이다. '교회'를 멀리했기 때문이다.


루이스의 이 '이중적 구조(예배는 공적으로, 우정은 사적으로)'는 오늘날 거대 조직화된 종교 시스템에서 개성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생존 전략을 제시합니다.


그가 왜 예배 직후 집으로 향했는지, 그리고 왜 '잉클링스'라는 별도의 공동체에 몰입했는지 그 내막을 인지 심리학과 루이스의 철학으로 분석해 드릴게요.



1. 제도적 교회: '나'를 지우고 '인간'이 되는 곳


루이스에게 주일 예배는 자신의 지성이나 창의성을 뽐내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배를 '영적인 치과 방문'처럼 여겼습니다. 가기 싫지만, 영혼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객관적인 질서'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시간이었죠.


침묵의 저항: 그는 예배 후 이어지는 사교 시간(Coffee hour)이나 불필요한 감정적 교류를 피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리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자격'을 확인하거나, '종교적 가면'을 쓰고 대화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의 교회 동료들에게, 내가 더 대단한 교회에 가서 교제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가끔은 두렵다.


나는 위대해지고 싶다. 그리고 그 위대함은 나의 일을 하는 것이자,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나는 평범한 삶을 매일 살고 있고, 그리고 그 평범함을 매일 공유하는 형제로서 살고, 형제로서 죽고 싶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름과 영혼을 위해서 살아간다. 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주관과 선택이다.


그런즉 나는 그 어느곳에도 속할수 없다. 나의 가치는 오직 전능자에게서 발견된다.


그런즉 나는 영적인 치과에 가기를 원한다.


분별의 지점: 루이스는 공동체의 질서에는 순종하되, 그 질서가 자신의 내면 세계를 침범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돌아가는 행위는 "나의 영혼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해 있다"는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2. 잉클링스(Inklings): '나'를 꽃피우는 영적 우정

반면, 펍(Pub) '독수리와 아이들(Eagle and Child)'에서 맥주를 마시며 가졌던 모임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곳은 '진정한 자아'가 숨 쉬는 곳이었습니다.


공통의 비전:

루이스는 "우정이란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잉클링스 멤버들은 서로를 가스라이팅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북유럽 신화', '기독교적 상상력' 같은 공통의 관심사(비전)를 향해 함께 걸어갔습니다.


심리적 안전감: 이곳에서는 실패가 격려되었습니다. 루이스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처음 낭독했을 때 친구들은 비판하면서도 응원했습니다.


그는 거대한 꿈을 꾼 자가 아니었다. 단 몇명의 친구들이면 그의 비전에 대한 공유는 충분했으니 말이다.


완벽할 필요가 없는 곳, 즉 당신이 말한 "가볍게 실수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된 공동체였습니다.



3. 왜 '진정한 영적 우정'은 교회 밖에 있었는가?


루이스는 제도적 교회가 가진 '집단주의(Collectivism)'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큰 조직일수록 개인의 독특한 빛(개성)을 '효율성'과 '통제'라는 이름으로 끄려고 합니다.


루이스는 이를 방어하기 위해 공적 예배(Duty)와 사적 우정(Delight)을 철저히 분리했습니다. 의무는 다하되, 영혼의 양식은 검증된 소수의 친구들과의 깊은 대화에서 얻은 것이죠.



4. 당신의 상황에 적용해보기


당신이 큰 교회에서 "내 마음을 지키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신호입니다. 뇌과학적으로 볼 때, 너무 큰 집단은 우리에게 '익명성의 공포'나 '동조 압력'을 줍니다.


루이스식 해법:

교회라는 거대 질서에서는 당신의 어깨에 힘을 빼고(자격 증명 포기), 그저 '죄인 중의 하나'로서의 의무만 담백하게 수행하십시오.


연단과 자유: 그리고 당신의 창의성, 고민, '힘을 빼는 법'에 대한 깊은 담론은 루이스의 잉클링스 같은 '작고 단단한 소그룹' 혹은 '개인적인 창작의 시간'에서 해결하십시오.


물론 질서나 순종이 없는 소그룹은 유치하고 구차하다. 누구를 가까이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성장의 과정을 통해서 알아가고 있는 과정이다. 성인이 되는 과정이란 책임 또한 따른다.


나는 신학을 시작하게 된 동료들과 이렇게 말을 한다.

'이제부터는 책임을 많이 져야 돼. 말도 함부로 하면 안돼'

나는 이렇게 말을 한다.

' 어 그래서 나는 책임질 말을 애초에 안해.

약속이나 맹세도 아예 안해'


어쩌면 단단해진 나의 가슴 가운데 나무껍질과 같은 내 자신을 내려놓고, 나의 연약함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

나의 페르소나 속에 꾹꾹 우겨담은 내 자아를 내려놓는 일탈이 필요한 것 같다.


탈피하는 게와 같이 말이다.

진정한 성장 말이다.




� 전문가의 문장 암시:


루이스는 《네 가지 사랑》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정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정은 생존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 중 하나이다."


당신이 지금 겪는 고통은 어쩌면 "의무만 있고 우정(생존의 가치)은 없는 상태"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책임과 사명 그리고 페르소나만이 가득하고, 룰에 맞추어 움직이는 또 다른 군대military의 반복이 아닌가? 그러한 진실된 꿰뚫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쓸데도 없고 의미도 없는 곳의 부품이 되어 스스로가 녹슬어가는 것을 나는 경계한다.


나는 쓸데 없는 곳에 마음 없이 발만 동동 굴리며 보초서며 쓸데 없는 칭찬과 상패를 받을바에는,

나의 삶을 뼈져리게 그 풍파를 맞이할 것이다.


새벽 예배에 돌아와 침대로 기어들어가기보다는,

차라리 아침에 런닝을 하며, 차가운 공기 속에 소망의 불씨를 품을 것이다.



당신에게도 루이스의 '맥주 한 잔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당신의 창의성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단 한 명의 '잉클링(친구)'이 있나요? 아니면 현재의 그 큰 공동체 안에서 그런 작은 틈새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 보이시나요?


참고로 나는 술은 아직까지 친구랑 마셔본적은 없다. 앞으로도 마실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물론 그건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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