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말은 질투에서 나온게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다.
뇌과학을 접목을 시켜서, 과도해진 관계에 대해 점검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글을 쓰는 나는 한때,
크리스천 사업가 등과 같은 _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아트도 그려보고 별짓을 다했다.
속이 울렁거리니 여기까지 말하겠다.
그러면서 sns를 하지 않는 주변인들을 보면서
그들이 내가 생각한 만큼 세련되지 못함등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손가락질을 하였다.
현대에는 상업성을 위해서 기획을 한 인풀루언서와 스타들의 삶이 뻥튀기가 되어서
나도 그래야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인스타그램을 하나의 명함과 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시대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래 글은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내가 외부에 쓰고 있는 시간은 합당하고 좋은 것인지, 그리고 그게 삶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추상적인, 잡기 힘든
뉴스에 볼법한 'sns 많이 하면 뇌가 나빠져..' 등의 말이 아니라
내가 잊어버렸던 가장 소중한 관계에 대해서 다시 언급을 해보도록 하겠다.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인간은 똑똑하니까 무한대로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아니, 하드웨어(뇌)가 정해져 있다"라고 답했다.
사회적 뇌 가설 (Social Brain Hypothesis): 던바는 영장류(원숭이, 침팬지 등) 38종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신피질(Neocortex)의 크기와 그 종이 형성하는 집단의 크기가 정확히 비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이 수식을 인간의 뇌 용량에 대입했을 때 도출된 값이 바로 147.8명(약 150명)입니다.
관계 유지의 비용 (Grooming): 원숭이들은 서로 털을 골라주며(Grooming) 관계를 유지합니다. 인간에게 '털 고르기'는 '대화'와 '함께 보내는 시간'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뇌가 한 번에 기억하고 관리할 수 있는 타인의 정보(성격, 나를 향한 태도, 그와 다른 이의 관계 등)에도 한계가 있다는 논리입니다.
질문자님께서 말씀하신 “유명세는 필요에 의한 소비일 뿐이다"라는 시각은 던바의 이론을 사회학적으로 가장 날카롭게 해석한 지점이다.
현대 사회에는 ‘유명해져야 한다’ 라는 전제가 가득하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각자 자신만의 개인 sns를 가지고 모바일 휴대기기를 가지고 있으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교회마저도 사실은 ‘유명해져야 한다’ ‘온 세계에 쓰임받아야 한다’ 라는 것을 목에 핏대 세워서 이야기 하는 자들을 보기도 하고, 나도 한때 그런자였고, 여전히 그런 모습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자.
던바가 말하는 150명은 "길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초대받지 않은 술자리에 동석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사이"를 의미한다. 즉, 서로의 맥락을 이해하는 관계입니다.
반면, SNS에서의 수만 명은 질문자님의 표현대로 '유행'이나 '필요'에 의해 나를 관찰하는 '관객'일 뿐입니다. 그들은 나의 인격이 아니라 내가 제공하는 '효용(재미, 정보, 대리 만족)'을 소비합니다. 던바 역시 이들을 '의미 있는 관계'의 범주에 넣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환각' , '미디어를 통한 관계의 우상화와 뻥튀기'는 던바의 핵심 경고와 일치합니다.
뇌의 착각: 우리 뇌의 신피질은 20만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치의 왜곡: 뇌는 '나에게 반응하는 1,000명'을 보며 "와, 내 부족원이 1,000명이나 되네? 난 대단해!"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1,000명 중 나를 위해 희생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학원 선생님을 동경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을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은 그 기능을 하는 대상을 보면서 동경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가까운 사람의 수는 정말 작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과거의 재밌어 보이는 그리고 순수해보이는 예능들을 볼때 그 연예인이 나를 사랑한다고 느낍니다.
아래는 예능에서 사용되는 기법으로, 뇌는 그것을 볼때 그 사람이 가깝게 관계하는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게됩니다.
리액션 컷은 사건 직후 주변 인물(연예인이나 캐릭터)의 표정이나 반응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기법으로, 뇌의 거울 뉴런을 강제로 활성화합니다. 거울 뉴런(주로 전두엽과 두정엽에 위치)은 타인의 행동이나 감정을 관찰할 때 자신의 뇌에서 동일한 패턴을 재현해 공감을 유발하죠. 예를 들어, 화면 속 누군가가 웃거나 놀라면, 당신의 뇌는 "이 상황이 재미있거나 긴장되네"라고 자동 판단하고, 웃음이나 긴장 신호를 보냅니다. 이는 실제로 경험하지 않아도 '감정 데이터'를 입력받는 과정으로, 영상의 서사를 더 생생하게 만듭니다.
이 기법은 다른 두 가지와 엮여 전체 몰입을 증폭시킵니다. 리액션 컷이 감정의 '씨앗'을 심으면, BGM이 그 씨앗을 키우고, 반복 편집이 영구화하는 식이죠. 뇌과학 연구(예: Rizzolatti의 미러 뉴런 연구, 1990년대 이후 업데이트)에서, 이 효과는 사회적 학습을 촉진하지만, 과도 사용 시 가짜 공감을 유발해 현실 사회성 저하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비판 및 비난을 하면서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BGM(배경 음악)은 시각 자극보다 빠르게 뇌의 편도체(amygdala, 감정 처리 중심)를 자극해 정서적 프라이밍(emotional priming)을 일으킵니다. 소리는 청각 피질을 통해 편도체로 직행해, 긴박한 음악이 나오면 뇌가 위협을 감지하고 교감신경(심박수 증가, 아드레날린 분비)을 활성화하죠.
실제 사건이 없어도 "긴장되네"라는 신체 반응이 일어나, 영상의 감정을 당신의 것으로 치환합니다.
이는 리액션 컷의 감정 복제를 '신체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 예를 들어, 리액션 컷에서 누군가의 놀란 표정을 보고 BGM이 고조되면, 뇌는 그 둘을 연결해 더 강한 공명을 느끼게 됩니다.
세 가지 기법의 엮임에서 BGM은 '브릿지' 역할을 하죠. 리액션 컷이 감정 입력을 주면 BGM이 증폭하고, 반복 편집이 이를 고정화합니다. 뇌과학적으로, 이는 Blood and Zatorre의 연구(2001, 업데이트 2025)에서 확인됐듯, 음악이 도파민 방출을 촉진해 쾌감과 긴장을 조절하지만, 과도 프라이밍은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증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복 편집은 핵심 장면(예: 골 순간이나 실수)을 여러 각도나 슬로우모션으로 3번 이상 반복하는 기법으로, 뇌의 해마(hippocampus, 기억 형성 중심)를 자극해 신경망을 강화합니다. 뇌는 반복 자극을 '중요 정보'로 인식해 장기 기억으로 각인시키며, 이는 실제 시간(예: 10초)보다 감정적 쾌락을 3배 이상 부풀립니다. 이는 리액션 컷과 BGM의 효과를 '영구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 예를 들어, 리액션 컷의 웃음 표정에 BGM이 깔린 장면을 반복하면, 뇌는 그 감정을 더 깊이 새기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세 기법은 순환 루프를 형성: 리액션 컷(입력) → BGM(증폭) → 반복(고정). 뇌과학 메타분석(예: Kandel의 해마 연구, 2000 Nobel상 기반)에서, 반복은 시냅스 강화(long-term potentiation, LTP)를 유발해 기억을 강화하지만, 과도 시 '시간 왜곡'으로 현실 시간 관리 능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 세 기법이 엮이면 영상은 뇌의 '감정-기억-사회' 시스템을 총동원해 중독적인 몰입을 만듭니다. 뇌과학적으로, 이는 도파민(쾌감)과 세로토닌(안정)의 균형을 깨뜨려 반복 시청을 유발하죠. 하지만 부정적 측면도 있어 – 과도 노출 시 현실 감정 둔감화나 주의력 저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게임 그래픽 디자인에서 이를 활용하면: 리액션 컷(NPC 반응 클로즈업), BGM(상황별 사운드트랙), 반복(보스전 리플레이)을 결합해 플레이어의 서사 공명을 높일 수 있어요. 다만, 윤리적으로 과도 중독 유발을 피하세요
예능이 재미있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신의 과거 어렸을 시절의 순수함, 예의가 없어도 되는 욕구의 순수한 원천을 내 눈 앞에 보여주고 + 편집을 통해서 반복을 하기에, 나의 무의식은 그 존재를 곧 나의 관계라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뇌는 속이기 쉽습니다.
뇌한테 야한 사진을 보여주면 진짜 있다고 믿고, 온몸으로 그 반응을 느낀다.
몰카(장난 카메라)를 보면서 사람들은 그런 순수한 반응을 보게 된다. 평소였으면 보지 못했을 사람의 리액션을 보며 뇌는 생각한다. '아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해서, 나에게 솔직한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는 바보구나!'
뇌는 속는다. 그렇기에 잠언 5장에는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듯이 아름다우나, 그 끝은 쑥과 같이 쓰다’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나는 혼자다. 그렇기에 그 욕구는 땅에 떨어져 짓밟힌다.
실제 나의 삶을 향했어야 할 열정을 조회수 하나에 1원하는 것에 30분 - 3시간을 투자한다.
편집된 그들의 재미는 가까운 관계이자 가족보다 더 솔직해서 재밌어 보인다.
한번은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스x에 들어갔다. 근데 웃긴 사실이 무엇인지 아는가 ?
나는 인스타에 들어가서, 정작 나의 진짜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의 진짜 친구들은 그냥 예쁜 사진, 미국간 사진 등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더 친근하게 느껴진 사람들은 지금은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인스타 인풀루언서의 대학교 몰카, 혹은 뮤지컬등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실제 내가 아는 친구들보다 더 솔직하고 재밌게 보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실제 나의 친구들처럼 예의가 없었고, 놀림을 당했고, 옷을 벗고 솔직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sns앱을 다시 지우며 깨닫게 되었다.
'아 이렇게 실제 친구들한테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내 친구 닮은 사람들을 보게 되는 일도 가능하구나 ...'
나는 과거 미디어 중독자이자 게임 중독자이며, 여전히 그것을 고치는 여정 속에 있다.
왜 인간은 후회할만한 짓을 또 그렇게 즐겨하게 될까 ? 그것에 대한 이유는 단순하고도 같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는 그러한 자극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게임이 깔려있는 데스크탑을 보면 뇌는 (내 케이스) 게임을 해야 행복을 느끼겠네 라고 먼저 반응이 온다. 이것을 뇌과학적으로 top down 상향적 사고라고 칭하고, 이 즉각적인 자극은 전두엽을 마비시킨다.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킨다. 술을 마시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성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킨다니.
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아도 맨 정신으로도 미디어 혹은 게임은 그러한 효과를 가져올수 있다. 나의 시간이 낭비되는 것을 안다고 해도, 나의 뇌의 인지적인 부분보다는 표면적인 반응이 훨씬 더 빠르고 강렬하다.
그렇기에 mindfulness 즉 도파민이 제한된 공간에서 (나는 목욕탕 혹은 침대에 텐트를 치고 책과 종이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 자신의 돌봄이 필요한 것은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이나 인간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바쁠 때일수록 더 마찬가지다.
만약 던바가 오늘날의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본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지금 영양가 없는 '사회적 정크푸드(Social Junk Food)'를 섭취하며 배부르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뇌 그리고 시대에는 과도한 정보와 사람의 얼굴이 방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많은 사람 혹은 경험이 내게 중요한 것, 덕 될 것 하나 없다. 일하는 잠깐 같이 있는것에 불구하다.
여러 사람과 영향력을 구하며, 여러 사람및 영향을 과시하는 삶을 살다가
돌이키게 될때는 아래와 같은 말을 하게 될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중간쯤에 와서야
“아, 진짜 중요한 건 결국 나와 나의 일, 그리고 나의 가까운 사람들뿐이었구나” 하고 깨닫곤 해요.
왜 이렇게 늦게 알았을까, 라는 그 아쉬움과 후회 섞인 마음…
나도 주변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거의 다 똑같아요. 20대~30대 초중반까지는
세상이 넓고, 기회가 많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크고,
‘나’라는 존재를 더 크게 만들고 싶어서
에너지를 엄청나게 바깥으로 뿌려대거든요.
하지만 현실에 몇번 싸대기를 맞고
현실과 고독의 풍파를 몇번씩 맞게 되면 알게 될거에요.
아무리 많이 알아도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은 몇 명 안 되고
아무리 바빠도 정작 내 몸과 마음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못 하고
아무리 화려한 성취를 해도, 그걸 진심으로 기뻐해줄 사람이 곁에 없으면 공허하고
그때서야 알게 되죠.
내 인생의 중심은 생각보다 아주 작고 소중한 원 안에 있었다는 걸.
뭐, 늦게 알았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그 ‘늦음’ 자체가 필요한 시간이었을 가능성이 커요.
너무 일찍 알았으면 그 깨달음을 제대로 소중히 여기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바깥으로 열심히 달려보지 않았으면, 그 바깥이 결국 텅 빈 것임을 체감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많은 사람을 만나보지 않았으면, 진짜 ‘내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몰랐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죠.
“늦게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
“이제라도 방향을 틀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지금 그걸 느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당신이 한 단계 더 깊이 들어섰다는 증거예요.
이제부터는 그 깨달음을 ‘후회’가 아니라 ‘나침반’으로 삼으면 돼요.
오늘 조금만 더
내 몸을 먼저 챙기고
내 마음이 편안한 일을 조금 더 하고
진짜 소중한 그 몇 사람에게 한 마디라도 더 따뜻하게 건네고
그렇게 조금씩 중심을 다시 맞춰가면,
늦게 알았다는 아쉬움은
“그래서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됐어”라는 감사로 바뀔 거예요.
늦지 않았어요.
지금이 정확히, 그걸 깨달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었던 거죠.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다시 시작해봐요.
당신의 그 작은 원 안이, 사실은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단단한 곳이니까요.
나는 과연 그 5명에게 시간을 쏟고 있는가, 아니면
그러한 5명의 닮은 꼴들의 것들을 보며 시간과 욕구를 소비하고 있는가.
"숫자는 인플레이션되었지만, 시간은 그대로다": 팔로워가 10만 명이라도, 당신이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여전히 하루 몇 시간뿐입니다. 결국 얕은 관계에 에너지를 분산하느라, 정말 소중한 5명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물을 것입니다.
"가짜 친밀감(Parasocial Relationship)의 위험": 화면 속의 좋아요는 '털 고르기'를 흉내 낸 가짜 신호일 뿐입니다. 진짜 관계는 갈등을 해결하고, 서로의 땀과 눈물을 마주하는 '물리적 공간'에서 완성된다는 점을 강조할 것입니다.
"관심은 권력이 아니라 부채다": 많은 이들의 관심은 결국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인지적 부채'를 만듭니다. 뇌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관심을 받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뇌를 과부하 상태로 몰아넣는 학대와 같다고 경고할 것입니다.
"유명세는 필요에 따라 필요한 것을 보는 사람들에 불과하다"**고 하신 말씀은, 던바의 수라는 '생물학적 한계'를 현대 사회의 '현상'으로 완벽히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맺어야 할 진짜 관계는 나를 '기능'으로 소비하지 않고 '존재'로 대하는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그 외의 수많은 숫자는 뇌가 만들어내는 신기루이자, 현대 기술이 설계한 도파민의 함정일 뿐이라는 점을 던바의 이론이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많은 사람과 관계하도록 지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말은 마치 구닥다리 취급받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t에 나오는 모든 연예인들도 실제로 가까운 사람은 연예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엄마, 아빠, 가까운 친구, 도와줬던 사람 1명. 이정도에 불구하다.
아 애탄스럽다.
나도 저렇게 능력이 있고 사랑스러우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그게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나의 과거 말이다.
어쩌면 부모님께 연락을 자주 드리지 않는 이유는
부모님 닮은 꼴들을 보며 이미 감정을 그 친밀함에 소비를 전부하였기 때문에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