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히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던 이유.

어두운 저녁. 정류장 주변에 함께 있던 사람들. (65번째 삼일)

by 김로기

예전에는 버스를 타려면 무작정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자주 타는 버스의 시간표를 알아두고

때맞춰 버스를 타러 가는 것 말고는

웬만하면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막연한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처럼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때우지도 못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얇은 줄의 이어폰과 연결된

MP3의 노래를 듣는 일뿐이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꽤나 답답한 시간이었을 수 있겠지만

그때는 그것이 지루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몇 분 뒤에 버스가 도착하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타야 할 버스의 번호가 정류장에 붙어있기만 하면

무작정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음에도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 여겨졌었다.

고작 알 수 있는 정보라고는 표시된 배차간격으로

오래 기다려봐야 얼마 뒤쯤이면 버스가 올 것이라 예측하는 일뿐이었다.

운이 나쁘면

추운 겨울 방금 지나간 버스가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며

손발이 꽁꽁 얼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버스 정류장을 떠올려보면

언제나 함께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주변에 버스표나 신문등을 판매하는 매표소가 많이 있었다.

어두운 저녁에도 혼자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드물었다는 말이다.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암암리에 모두가 서로를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인지 지금보다 훨씬 어두웠음에도 덜 무서웠다.

지금도 정류장마다 설치된 비상 안전벨이나 CCTV가

언제나 나를 보호하는데 동참하고는 있지만

그 시절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함께 서로를 지켜봐 주는 것에는 절대 미치지 못할 것이다.

많은 것이 편해지고

그것에 만족하며 살고 있지만

가끔씩 정류장에 서면

막연히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생각이 난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

그리고 그런 수백 명의 사람을 지켜보던 매표소 주인.

많은 것이 편해진 지금.

그 시절의 불편함보다 함께 있던 사람들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가는 지금에도

함께 할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나아가 앞으로 무엇이든 혼자가 가능한 시대가 오겠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한다는 것.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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