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가 필요해.

따뜻하고 파삭하고 시원한 바람이 온 집안에 물들다. (79번째 일일)

by 김로기

날이 좋아지니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진다.

내게 날이 좋다는 의미는

하늘이 맑고 바람이 차지 않고 습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런 날에는 이불을 빨아 널어도 좋고

식물을 베란다에 늘어 놓아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집안을 환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전날 비가 왔을 때는

더없이 해가 좋고

미세먼지까지 나의 환기를 방해하지 못한다.

아침에 일어나 방마다 딸린 창문들을 활짝 열어젖히고 나면

잠시 집안이 서늘해짐을 느낀다.

하지만 그깟 서늘함이야

얇은 카디건 하나면 충분히 버텨 낼 수 있다.

한동안 집안을 꽁꽁 싸매며

바깥공기와는 담을 쌓고 지냈더니

집안의 향기는 온갖 냄새로 물들었다.

방향제 따위로는 답답한 집안의 공기를 바꿀 수가 없다.

매일 음식 냄새며

꿉꿉한 옷 냄새

어딘가 모를 사람 냄새가

은근히 집을 불쾌한 공간으로 만든다.

그때 느껴지는 불쾌함은

방향제나 탈취제로는 전혀 해결이 되지 않는다.

잠시 괜찮아졌나 싶다가도

내가 원하는 산뜻하고 시원한 공기는 느낄 수가 없다.

어쩌면 어린 시절 엄마 집에서 느꼈던 바람 냄새는

늘 열려있던 현관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매일 더 많은 음식을 하고

더 많은 사람이 오가고

더 많은 빨랫감이 있었지만

그때는 햇볕을 닿은

따뜻하고 파삭하고 시원한 바람이 온 집 안에 가득했다.

요즘은 항상 닫혀있는 현관문 탓에

그나마 부는 바람조차 드나들 길이 없기에

비 온 뒤 한 번씩 열어두는 창이 그 길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너무 아깝다.

매일 같이 느끼지 못하는 이 바람과 햇빛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오늘은 감사하게도 창문 밖의 공기를 집 안에 들여놓을 수 있었지만

내일은 또 어찌 될지 모르겠다.

그때의 따뜻한 해와 산뜻한 바람이 온 집안에 들기를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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