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이상한 로망이 있었다.
오랜 연애, 그리고 그 연애로부터 이어진 결혼이라는 결실.
즉 첫사랑과 결혼까지 가는.. 어찌 보면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
그런 마음들이 가득하던 무렵, 나는 첫 직장에서 첫사랑을 만났다.
첫사랑이라기엔 내가 품고 간직했던 사랑에 대한 정의도
그가 그 정의에 부합하는 사람이었는지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당시는 표면적으로 연애라는 것을 시작한 나에게 연애 시작과 동시에 마침표를 찍은 순간이 되고야 말았다.
어차피 나는 그와 결혼을 해야 할 것이기에.
운명처럼 다가왔다거나 흔히들 말하는 미래에 배우자가 될 것 같다는 머리를 스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나의 어설픈 로망이 만난 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은 남자를 나의 결혼 상대자로 결정지었을 뿐이었다.
나는 연애를 하기 전에도 처음 사귀는 사람과 결혼을 할 거라는
지금 생각해 보면 순수함을 가장한 상당히 어리석고 섣부른 발언을 종종 하고 다녔었는데
드디어 그 어처구니없는 발언에 책임을 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들뜬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그때 내 나이 스물둘이었다.
스물둘에 첫 연애를 시작한 나는 정말 순수했다.
그렇다고 그가 순수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닌데, 내가 그만큼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런 순수함 때문이었을까.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덧 그도 나의 어리석은 로망에 휩쓸리고 있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입에서도 결혼이라는 말이 종종 튀어나온 걸 보면.
그렇게 나는 스물둘에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할 사람을 결정했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연애를 했고 종종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 위기들은 시간과 함께 지나가게 되었고, 어찌 보면 나는 나의 다짐과 로망에 대한 오기로 그 위기를 견뎌냈던 것 같기도 하다.
남들과 같은, 절대 특별하지 않은 연애를 하며 한 해 두 해 시간이 흘러갔다.
봄엔 설레고, 여름엔 찌고, 가을은 쓸쓸하며, 겨울은 시린 그런 일상과도 같은 연애를 했다.
그렇게 나는 한걸음 한걸음 스물여덟 11월 셋째 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스물일곱이란 나이는 너무 일렀고, 아홉수는 싫었고, 서른 전에는 결혼을 하고 싶었다.
봄보다는 가을이 특별해 보였으며, 그 당시 업무는 보름까지 바빴다.
신혼여행 기간까지 생각해서 셋째 주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양가 부모님들도 결혼날짜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기신 상태였고
남편 또한 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 따르는 쪽이었기에
생각보다 나의 결혼계획은 쉽게 마무리 지어지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MBTI가 뭐냐 물으면 당당히 INFJ라고 대답하고 그래서 결혼까지 계획하고 있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지만, 사실 그 당시에는 두 달도 보지 않은 남자와
그것도 첫 연애 상대인 그와 결혼 생각까지 했었다는 것은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섣부르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덩달아 내 입을 통해 공개적으로 어필하고 다녔다는 사실이 참 바보 같고
어쩌면 무책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하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내 생각을 그냥 머릿속에만 두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걸 꼭 입 밖으로 내뱉고 다니다니.
그것도 아주 자랑스럽게.
아무튼.
나는 스물여덟 11월 셋째 주 토요일.
7년간의 연애를 끝내고 무사히 결혼했다.
시작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는 내가 계획 한 결혼에 성공한 것이 되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