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결혼했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딱히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행복했다.
소박한 결혼 생활이었지만 그 시절 내게 창피함이란 없었다.
멋모를 때 결혼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때의 나를 보면 알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다행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엔 결국 알게 되겠지만, 굳이 먼저 겪을 필요는 없으니까.
지금의 마인드나 경험치를 가진채 그 당시로 돌아가 선택을 하라고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이어진 또 다른 선택에 대해서는 그때와 달랐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많은 것을 듣고, 경험하고
그로 인해 배우고, 느끼고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론 같은 방향의 선택이었겠지만 조금은 다르게 나아갔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처음 신혼집을 보러 간 날.
현실에 체념한 채 바로 그 자리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거나
결혼 과정에 있었던 필요 없는 허례허식에 목숨을 걸거나
너무 나도 많은 지인의 지인의 기념품 따위를 사기 위해
신혼여행 첫날부터 고민할 일은 적어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만의 로망에 꽂혀서 결혼하게 된 나는
결혼 후에도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와이프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했던 듯싶다.
결혼은 했지만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는 쿨한 사이.
상대가 누구와 무슨 약속이 있던 서로를 존중다는 생각으로
자정이 되어 들어오던 새벽이 되어 들어오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이.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나는 그런 술자리들이 익숙하지 않았고
같이 가자며 권유하는 남편에게는
그저 포용심 넓은 아내의 모습으로 잘 놀고 오라며 손을 흔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됐었던 거다.
그 당시 남편 주변에는 미혼인 친구들이 많았는데
이제 막 결혼한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친구들과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들이 많았다.
처음 한두 해는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별말 없이 지나갔다.
그러다 보니 많은 밤 혼자 잠드는 날들이 늘어가고 그렇게 조금씩 나는 지쳐갔다.
내 생각이 틀렸음을 그간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이 가짜였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 나의 지침을 티 나게 드러냈음에도 그는 잘 눈치채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에게도, 그의 친구들에게도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는 멋진 와이프였으니까.
어느 순간 내가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나섰을 때 제일 당황스러웠던 것은 아마도 남편이었을 것이다.
지쳐감을 눈치채지 못한 남편에게는 그저 갑작스러웠을 테니까.
그간 아무렇지 않게 지내오던 일상이었기에 그 모든 것들을 하루아침에 뒤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점점 다툼이 많아져갔다.
내가 꿈꾸던 가짜의 나에게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던 어느 날 밤이었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에게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는 상태였다.
일부러 전화를 걸어 재촉하지도 않고, 불 꺼진 거실 식탁 한편에 앉아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사 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라 집은 낯설고, 창밖은 새카맸다.
그 어둠 속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도어록 소리가 들리고 나는 긴장했다.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나의 이 분한 마음과 불편한 상태를 조금도 남김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
전달 한들 고칠 마음이나 있을까.
애가 탔다.
할 말들을 속으로 천천히 곱씹었다.
어둠 속에 측은하게 앉아있는 나를 향해 남편이 다가왔다.
나의 마음엔 화가 가득했지만 있는 힘껏 마음을 끌어내리며 말없이 남편을 바라봤다.
위기 상황이라는 것을.. 남편은 눈치챘을 것이다.
조용히 마주 앉아 나를 보며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동시에 눈물이 흘렀다.
원래도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인데 그날따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생각했던 말들을 높낮이 없이 내뱉었다.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편의 말은 진심으로 와닿지 않았다.
내가 하고 있는 말도 남편에게 닿지 않는 것 같았다.
서로의 말들이 닿지 않는 상태였지만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무슨 수를 쓰던 나와 그의 과오를 바로잡고 싶었다.
결국 그날 끝에는 남편이 더 이상 술자리를 갖지 않겠다며
자신의 신용카드를 자르는 것으로 마무리 됐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저따위 신용카드는 다시 발급받으면 된다는 것을.
그렇게 평소 답지 않은 액션으로 마무리된 그날 이후로 조금 잦아들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는 나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에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내가 생각하고 꿈꾸던 결혼생활의 대한 이상은 완전한 나의 오만이었다는 것을
그 순간, 아니 어쩌면 그 순간부터 깨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