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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승국 경제학당 Apr 28. 2020

노승국의 정치 입문기..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거에 출마한 지 어느덧 2년 가까이 흐르고 있다. 그날의 긴장감과 허탈감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잊지 못하는 것이다. 2015년 7월, 나는 그동안 하던 일을 접고 본격적으로 마을활동에 뛰어들었다.

     

정치를 하기에 앞서 봉사부터 하자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 1년 전, 어느 날 오후, 우연히 어렸을 적 동네에 사시던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물론 그날 만난 아주머니는 더 이상 아주머니가 아닌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몰라봤고 가던 길을 그냥 갈 참이었다. 먼발치에서 날 알아보셨던 것이다.

 

자세히 쳐다보니 어렸을 적 그 아주머니였다. 이제 동네를 위해 국회의원도 하고 구청장도 하고..     


내 손을 잡으시며 해맑게 웃으시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겸연쩍게 웃으며 헤어졌던 기억이 이후 이따금씩 내 마음을 울렸고, 1년 여 고민 끝에 드디어 결론을 내린 게 2015년 7월이었다.

     

처음엔 동네에서 주민센터나 구청을 드나드는 게 굉장히 어색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면서 한 두 달이 흐르자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싶어 체계적으로 접근하고자 계획을 세웠다.


처음 맡은 일이 동 마을 예산위원이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예산을 접하는 게 제법 흥미로웠다.


이후 종로에 있는 혜화경찰서 시민경찰학교를 수료하며 일일 순찰이나 생활치안 등도 경험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동대표 선거와 감사 선거에 잇따라 출마하여 입주자 대표회의 구성원으로 아파트의 이모저모도 살피게 되었다.

     

주민자치위원, 주민참여예산위원, 협치회의 위원, 마을기자, 마을교사 등 자치구에서 종횡무진 활동하였다.


서울시 시정 모니터, 시민참여예산학교, 서울시정학교, 서울시민위원, 시민인권배심원, 서울시 숙의예산시민회 위원 등 서울시 활동도 꾸준하게 하였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해 겨울 드디어 선거 출마를 결하게 되었고, 무소속으로 서울시의원 예비후보 등록을 하였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지역 선관위에 후보 등록을 하였는데, 무슨 서류가 이리도 많은지 선거 두 번하면 큰일 나겠군, 혼잣말로 되뇌면서 난생처음 선거용 명함을 들고 마을 곳곳을 누볐다.

     

어렸을 적 알고 지내던 동네 분들이나 초중고 동창을 우연히 만나게 될 땐 정말 기뻤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옛 추억이 떠오를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 흘렸다.

     

시의원 예비후보로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던 중 나를 유심히 보던 모 정당으로부터 구청장 후보 제의를 받게 되었다.

     

처음엔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시의원 선거구도 5개 동이어서 만만치 않은데, 구청장 후보가 되면 20개 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엄두가 안 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정당으로부터 구애는 계속되었고, 시의원 선거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저녁, 먼발치에서 분주히 움직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 눈빛을 보며 구청장 후보직을 수락하게 되었다.     


구청장 후보 서류는 서울시의원 때보다 더 많았고 기탁금 액수도 몇 배로 불어났다.     


재정적인 부분도 조금은 걱정되었지만 오랫동안 살아온 지역을 위해 기부한다 생각하고 통 크게 마음먹었다.

    

까다로운 공천심사를 거쳐 처음으로 공천장을 받게 되었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안철수 후보와 기념사진도 찍고 개소식도 하면서 분주히 구청장 후보로서 시. 구의원 후보들을 이끌고 선거운동에 임했다.

     

방송국에 나가 다른 후보들과 토론회도 하고 어느덧 구청장 후보라는 무게가 내 어깨에 드리웠다.


비록 선거 결과는 낙선이었지만 여한 없이 임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물론 역부족임을 절실하게 실감했다. 선거운동도 효율적이지 못했고 뒤늦게 뛰어든 탓에 시간도 많이 부족했다.


40년 넘게 살아온 나의 정든 마을에서 옛 동창들과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울컥 눈물도 났다.


하지만 나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선거 이후에도 마을에서 직능단체 임원으로 활동하며 동네 곳곳을 누볐고, 이제는 어엿한 지역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새로운 길로 나서는 중이다.


비록 내가 몸담았던 정당은 없어졌지만 언젠가 나와 인연이 될 정당에서 다시금 비상을 꿈꾼다.


강북리더 노승국의 씩씩한 일상은 오늘도 변함없이 시작되고 있다.


#나도작가다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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