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생각나는 날

오늘 무척 그립습니다.

by 훌리아

#01. 법정 스님의 '좋은 친구'


친구사이의 만남에는 서로의 메아리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자주 만나게 되면 상호 간의 그 무게를 축적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음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좋은 친구일 것이다.


만남에는 그리움이 따라야 한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이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진정한 만남은 상호 간의 눈뜸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 때의 마주침이다. 그런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끝없이 가꾸고 다스려야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런 시구가 있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사람한테서 하늘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만이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이런 경험은 없는가.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주고 싶은 그런 생각 말이다. 혹은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렘을 친구에게 전해 주고 싶은 그런 경험은 없는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은 친구일 것이다.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보배이다.
친구를 통해서 삶의 바탕을 가꾸라.


#02. 법정 스님의 입적

1932년 10월 8일, 전라남도 해남 - 2010년 3월 11일


“무슨 제왕이라고 세상 떠들썩하게 장례식을 치르고, 또 사리를 줍는다고 재를 뒤적이는가.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 수의도 만들 필요 없다. 내가 입던 승복 그대로 입혀서, 내가 즐겨 눕던 작은 대나무 침상에 뉘여 그대로 화장해 달라. 나 죽은 다음에 시줏돈 걷어서 거창한 탑 같은 것 세우지 말라.”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今生)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03. 법정 스님이 남긴 말과 글


“나에게는 맑은 복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책이 있습니다. 마음의 양식이 나를 받쳐주고 있습니다. 둘째, 차(茶)가 있습니다. 출출할 때 마시는 차는 제 삶의 맑은 여백입니다. 셋째, 음악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건전지로 듣습니다만 음악이 삶에 탄력을 주고 있습니다. 넷째, 채소밭이 있습니다. 채소밭은 제 일손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내 삶을 녹슬지 않게 늘 받쳐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적한 삶을 누리고픈 꿈이 있습니다. 밭을 일구면서 살고자 하는 꿈, 이러한 꿈은 우리의 본능입니다. 언제 현실적으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일상에 찌들지 않는 꿈을 가집시다.” -2008년 10월 19일, 길상사 법회에서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산방한담> 중에서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이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 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이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있으면 합니다.” -1997년 12월 14일 길상사 창건 법문 중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도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일기일회> 중에서



#04. [에세이]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법정과 최인호 대담

'어둠이 먼저이고 빛은 나중이다'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는 진중하고 향기로운 서書, 언言, 행行으로 많은 가르침을 남기신 법정 스님과의 인연을 이 한 권의 책에 담고자 했던 최인호 작가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책이다. 어둠이 먼저고 빛은 나중이란 말이 떠올랐다. 자궁 속 태아도 밤하늘의 별도 같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우리는 나는 자신에게로 돌아가고 있다. 이번 생에서 할 수 있는 작은 것 하나라도 이루자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생이 아니면 다음 생에서라도 꼭 이루자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읽지 않아도 그런 글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분들이 하신 생각은 궁금하면서도 궁금하지 않았다. 이 글 또한 사라진 사람들을 추억하는 글이다.

그때 뵈었더라면, (중략) 그렇게 되면 하룻밤에 만리장성의 인연을 맺을 수도 있었을 것을.(p23)


보이지 않는 난 언제나 빛 이전 어둠에 있어왔다. 그런 나를 나는 알고 있는 것일까? 순수하게 집중하고 몰입하는 과정에서 안목이 생겨난다고 한다. 진정한 행복을 알아보는 눈을 가리킨다. 배움은 모방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다운 특성을 키우는데 보태야 한다고 한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과 진실 앞에 항상 깨어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자기 빛깔의 자기 꽃을 피워야지요. p78


(법정 스님과 최인호 작가) 두 분의 생각은 비슷하시면서 달랐다 하지만 같은 결론에 도달하신다. 오래전부터 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님을 있는 그대로 참 존경했다. 지금도 그 마음 그대로인데 허전하고 슬프다. 다시 별이 되셨나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어둠이 먼저이고 빛은 나중이다. 란 말에 힘이 난다고 해주신 이웃분의 말씀에서 또 한번 깨달았다. 우리 모두 어둠이 먼저이고 빛이 나중이기에 위안이 되고 희망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기신 말씀은 다 우리의 진짜 삶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었다. 너무 많이 아는 지식은 진짜를 못 알아볼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은 삶을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고 싶으셨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오래도록 남는다. 말로만 하는 단순한 삶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신 분의 말씀은 다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만 하고 그치는 것에 부끄러움만 남는다.


저만 맑고 투명한 시간을 누린다고 해서 행복이 아님을 진짜일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자기 존재를 잊어버리고 정보 바다에서 허우적거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자신을 변화하기 가장 좋은 시절-난세야말로-이라고 말씀하신다. 맑고 투명한 자기를 응시하는 시간을 가지라 말씀하신다. 오늘도 다시 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본다..


지식인-지성인-영성인(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깨어서 변화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참 자식을 쌓아 맑아진 그런 사람을 나도 참 존경하게 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경계하는데 그런 연유는 그 사람에게 상처받을 것을 겁내 하는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 부분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자신은 깨닫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삶의 귀한 태도를 지니는 것이란 순간의 삶을 음미하고 느리게 살고 진정한 여유 안에서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한다. 사람이란 탐구하는 노력이 끝나면 그때부터 늙음과 죽음이 시작되는 것이라 한다. 그 탐구는 인간사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반성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 한다. 성장을 포기하는 일 없어야 한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이러한 말씀들이 언제 곧 자연스러운 일이 되리라 여겨졌다....

죽음이야말로 고독의 최고 단계이니까요 p146


길상사吉祥寺


법정스님 30대 말에 쓰신 <미리 쓰는 유서>에 남기신 유언...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나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 보고 싶다."



by 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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