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특강
[에세이]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특강
사람이 사는 곳임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나무'라고 합니다. 너무 당연해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사실이네요. 저에겐 나무는 그냥 이름 모를 나무입니다. 나무도 제가 마찬가지겠지요? 특별히 나무를 부둥켜안고 느끼지는 않지만 숲 사이로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세상을 믿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든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면서도 세속적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이 구절을 누가 남긴 글인지 알 수 없지만 참 의미 깊게 생각하고 있어요. 나무를 사랑하는 것이 세상을 사랑하는 한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p10)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 특강에서 처음 소개된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는 800살이고 보는 방향에 따라 나무의 표정이 달랐어요. 오래 살아온 나무를 보거든 그냥 지나치지 말고 적어도 세 바퀴쯤 천천히 돌면서 나무를 관찰해보라 조언해주셨어요. 이어 물푸레나무는 이름처럼 물을 푸르게 하는 것이었어요. 잔가지나 줄기 껍질을 벗겨 물속에 담가두면 푸르게 된다고 해서 신기했습니다. 정암사의 주목은 자람이 더딘 나무인데 별명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입니다. 나무는 사람보다 긴 세월을 살아서인지 전설과도 같은 사연이 많았습니다. 스스로 자리를 옮길 수 없는 나무가 처음 자리 잡은 그곳에 사람들이 오고 가고 만든 이야기겠지 싶었어요..
한 그루의 나무를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2년은 걸린다고 하는데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TV에서 본 심리상담사 말이 부부 지연을 맺기 전에 4계절을 모두 보내고 또 싸울 만큼 싸워보라고 합니다. 꼭 심리상담사의 말이 아니어도 많이 들었던 말이예요. 사람도 동식물도 생존 그 이상으로 서로의 자람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의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저도 그 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람과 나무는 이 부분은 참 닮았죠. 좀 다른 이야기였지만 도산서원 퇴계 이황 선생과 관기 두향의 사랑 이야기는 무척 슬펐어요. 너와 나의 거리마저도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나무를 제대로 조사하려면 잎 돋을 때, 꽃 필 때, 단풍 들 때, 잎 떨어뜨릴 때를 모두 보아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p48)
안동 도산서원 매화(매실나무)
퇴계 선생 마흔여덟 살 때 열여덟 나이의 두향(관기)은 퇴계 선생의 용모와 인품에 감동해 거절하지 못할 매화나무 한그루 선물합니다. 아홉 달 동안 단양군수 소임 다하고 풍기군수로 선생은 떠나고 그들은 한평생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두향은 단양의 남한강 변에 초막을 짓고 20년 동안 정절을 지키며 살았고, 퇴계 선생은 도산서원에서 69세의 나이로 삶을 마쳤습니다. 두향은 단양에서 도산서원까지 흰 소복 차림으로 걸어서 문상을 하러 왔다고 합니다. 다시 초막으로 돌아가서 강물에 몸을 던져 퇴계 선생의 뒤를 따랐지요.
퇴계 선생은 단양을 떠날 때 두향의 선물인 매화나무를 그대로 옮겨갔어요. 그 뒤 자리를 옮겨 다닌 때마다 두향의 매화는 반드시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선생이 이승에서의 생을 마치면서 마지막에 했던 말이 뭔지 아시나요? "저 나무에 물 주거라" 였다고 합니다.(p95-97)
서로를 바라보며 닮아가는 모습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살이와 똑같지 않나 싶습니다. 존경한다는 것은 상대를 닮고 싶어 하는 마음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가 나를 닮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하잖아요.(p90)
나무와 진정한 교감은 나무가 '내게 마음을 열어 주는 때'라고 합니다. 제가 보기엔 그저 우연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지만 고규홍 나무 아저씨의 말로는 마치 자기에게 촬영을 허락하는 듯, 푸른빛으로 온몸을 단장하고 맞아주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나무와 오래오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해요.... 그건 저에게 정말 어려운 일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다음에 한번 시도는 해보고 싶네요.ㅎ 나무가 늙으면서 아름다운 건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이겨낸 뒤에 얻어낸 초월과 해탈 때문이지 않을까라고도 말씀해 주셨어요. 몇 백 년을 살고도 여전히 한창 젊은 나무처럼 싱싱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나무를 보며 부럽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나무 이야기는 끝이 없고 감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나무와 닮았다는 건 저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어요. 존재 자체가 너무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뿌리가 뽑히지 않는 한 특별한 나무는 오래도록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를 800년이라고 하면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요. 반면 사람은 누구나 기한이 정해져 언젠가 존재도 사라지지요. 나무는 자연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은 또는 살아남을 혼이며 신비 그 자체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사람은 더 큰 것을 얻었기 때문에 뿌리내린 나무와 생을 바꾼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의 망상에 지나지 않지만 사람도 한 곳에 오래 있었다면 나무같이 뿌리내리고 오래도록 살지 않았을까요?
숲을 이뤄준 나무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다고 하셨어요. 진심이 전해지는 말이었습니다. 나무는 기꺼이 자신을 텅 비우고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다른 살아 있는 생명체에 내주는 영원한 생명의 근원임을 알지만 한 번 죽은 나무가 다시 되살아 날 수 없음을 더 안타까워하셨어요. 그 마음을 다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고규홍 나무 아저씨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만나고 기록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의 입장에서야 알래야 알 수가 없겠지만 나무에 대해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신 분이셨어요. 전국 곳곳에 있는 오래된 다양한 나무를 소개해 주셔서 저도 나무박사가 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여전히 제 눈엔 나무는 나무.. 하지만 나무의 삶을 그려보는 눈이 생겼어요.
* 책방 가는 길 yes 24 http://janguk.kr/t49hf7ltst
<나무처럼 삶과 죽음 그 이후...>
봄
저는 봄을 매화꽃 피어날 때부터 시작하여 이팝나무 꽃 질 때까지라고 생각하고 돌아다니지요. 개화기가 긴 이팝나무 꽃은 5월 초순에 피어나 5월 중순 넘을 때까지 피었다 지거든요. 그러면 봄이 끝나는 것 아니던가요? 그 무렵이면 오동나무에서 보랏빛 꽃이 피어나지요.(p251)
소나무재선충병
생존 가능성 0%, 치사율 100% 치료법도 없고 예방법도 없다. (주범은 솔수염하늘소 4킬로미터를 날아가 재선충을 옮긴다고 한다 감염되면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말라죽는다) 1998년 부산광역시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나라 전체로 확산 2004년 전국 소나무 17만 그루 죽음 가까운 일본의 경우 1905년에 발견된 이후 훗카이도를 제외한 전역에서 소나무를 볼 수 없게 됐다.(p295-296)
뒤늦은 존재감
살아 있는 동안 특별히 나대지 않고 평범하고 조용히 살고 싶어요. 감나무처럼요. 조용조용 저에게 맡겨진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싶은 거죠.(중략) 조용히 살다가 죽었을 때, 누군가 저를 기억해주는 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 옛날에 나무에 미쳐 내내 나무만 찾아다니고, 나무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써내던 사람이 있었지'라고... 세상을 떠난 뒤에 누군가가 뒤늦은 존재감으로 기억해준다면 참 좋겠어요.(p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