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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29. 2015

한 여자 - 아니 에르노

어머니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

아니 에르노_한 여자Une femme


내 엄마를 엄마가 아닌 존재로 생각할 수 있을까? 상상이 만들어 낸 여자, 가족이었던 여자, 사회에서의 한 여자로서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진실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묻어 드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과 남편과의 헤어짐이 그랬듯 어머니의 병과 죽음이 자신의 삶의 지나간 흐름 속으로 녹아들기를 바란다. 아파하면서 글을 쓴다. 글로 쓰이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했던 그녀의 말이 나는 항상 좋았다. 그녀처럼 쓸 수 있는 용기가 부럽고 멋졌다.

그저 나는 가슴 위에 십자가를 올려놓고 싶었다.(p8)



<그 시절의 그 여자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과거의 회상은 낯선 여인, 사랑의 존재, 미래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전쟁, 공장, 카페 겸 식료품점.. 아니 에르노 소설 <남자의 자리>와 <한 여자>의 공통된 배경이다. 부모님의 생활터전이었고 주인공은 아버지에서 어머니로 옮겨왔다. 이것이 소설인지 아닌지는 언제나 독자의 몫이다. 나도 그랬던 것 같아.. 하는 기분이 들면서 담담하게 글을 읽었다. 오히려 전 소설보다 덜 감정이입된다고도 느꼈다. 나는 아버지와의 기억이 오히려 더 많으니깐... 그런데 어느 대목에서부터 엄마의 모습이 더 슬퍼지려고 하는 때가 왔고 눈물이 저절로 차올랐다.

아버지는 위 수술을 했다. 쉽게 피곤해했고, 더 이상 상자들을 들어 올릴 힘이 없었다. 그녀가 전부 도맡았고, 불평 한마디 없이, 거의 만족한 듯이 두 사람 몫의 일을 해냈다.(p68)



어느 시절에 드문드문 떠올려지는 기억들을 건져올린다. 어느 겨울 아침, 또는 어느 여름 바닷가 속 어머니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케이크를 먹고 쉬지 않고 웃어대는 모습, 그녀가 좋아했던 영화, 그녀의 목소리, 그녀가 입은 줄무늬 원피스, 그녀와 등을 맞대고 책을 읽었던 일, 그녀의 거친 행동과 욕설, 욕망.. 아니 에르노는 어머니의 개인적인 특색이 아니라 사회적 신분과 연결해보려고 한다. 그러한 글쓰기 방식은 진실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며, 보다 일반적인 의미의 발견을 통해 개인적 기억과 고독과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오게 스스로를 도왔다. 그런데도 자신 안의 무언가가 뻗대고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순수하게 감정적인 이미지들을 의미 부여 없이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 한다.

공허한 순간들. 어머니가 보지 못할 첫 번째 봄이라는 생각이 자아내는 빈틈.(p17)



세상에 그녀의 자리가 있었던 시기의 이야기는 노환과 치매로 얼룩졌다. 아니 에르노는 젊어서 힘차고 빛난 자신을 이 노망난 여자와 글쓰기를 통해 합쳐 놓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으리라 여긴다. 힘겨웠던 시간을 던져놓듯이 이야기한다. 계절이 없는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말들이 의미가 사라진 채 가닿았다. 자신의 어머니는 때때로 인식하고 기억해 냈다. 그녀는 이미 누군가에게 죽은 사람이었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p99) 나는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먹이고, 만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p105)



이 책을 읽고... 엄마의 넓적하고 굽은 두 손이 나도 떠올랐다. 꼭 잡아드리고 싶다.

묻혀 가는 고통, 우울증이 가져다준 침묵, 기도, 그리고 <하늘에 오른 어린 성녀>에 대한 믿음. 1940년 초, 다시 한 번 삶이 시작된다. 그녀는 또 다른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9월에 태어날 거다.(p41)                   



By 훌리아

보리차를 유리글라스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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