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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29. 2015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인간관계의 완성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담론>은 흩어져있던 저의 물음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그동안에 책을 읽을수록 모르는 것이 많았고 그것을 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죠. 이 책도 역시 제가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두루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1   고전에서 읽는 세계인식

좋아하는 책의 리뷰를 쓰고 온-라인상에서 그 책을 읽은 사람을 찾아내고 같은 생각과 공감이 더없이 기뻤습니다. 함께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지요. 저도 가장 먼 여행을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말씀해주시더군요. 진정한 공부는 인식의 틀을 깨고 변화와 창조로 이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나갔습니다. 이성훈련과 감성훈련의 중요성도 언급하셨어요. 문사철文史哲은 고전문학, 역사, 철학을 의미하는데 그중에서도 역사의 올바른 인식에 대해 짚어 주셨어요. 역사는 결코 과거사를 정직하게 재현하지 않으며 언제나 완고한 인식틀에 갇혀 있으니 우리는 진실이 사실보다 더 정직한 세계 인식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문사철文史哲이 이성훈련이면 감성훈련은 시서화詩書畵라 할 수 있는데 시서화는 시를 의미하며 그 속에는 우리의 오래된 정서가 담긴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시의 세계는 매우 크며 우리는 시인들이 구사하던 세계인식의 큰 그릇을 빌려 쓰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중에도 시적 정서와 시적 사유가 돋보이는 사람이 있고 그러한 사람이 우리의 삶 자체를 대단히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고 하시더군요. 저도 무척 그런 분들을 찾아다녔고 진정한 공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삶이 토지고 그 토지를 인품과 체온으로 경작한 그 사람의 시각은 풍요롭고 특별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분들의 말씀에 힘을 얻곤 하지요. 저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분들로 인해 아직 세상은 사랑할 가치가 있다는 믿음(?) 비슷한 것이 생깁니다.



우리의 공부가 문사철의 핵심을 요약하고 추출할 수 있는 추상력, 시서화의 나아가 크게 읽어내는 상상력을 유연하게 구사하고 적절히 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진실로 창조로 이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공부는 사고思考의 문제가 아니라 품성品性의 문제라고 합니다. 자신의 지식과 도덕성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어서는 인간관계에서 실패하기 마련이며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대화가 기쁜 것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언言의 배치의 중요성을 저도 마음에 새겨두었습니다.   



<주역>의 관계론 독법, <논어>의 화동 담론, 그리고 맹자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제가 더 알고자 하면 공부가 되었겠지만 저의 그릇은 작기만 합니다. 이 책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 좋을 책이란 생각도 들었지요. 매번 새롭게 느끼지 않을까요? 어려운 역사 독법-글과 책을 읽는 방법-이 이어지고 머리 식히기 바쁘기도 했지만 그래도 모르던 것을 배우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주역>에서 최고의 '관계론'은 성찰, 겸손, 절제, 미완성, 변방입니다.

성찰은 시각을 자기 외부에 두고 자기를 바라보는 것,
겸손은 자기의 존재를 상대화하는 것,
절제는 주장과 욕망을 자제하고 매사 지나치지 않는 것,
미완성은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변방은 자기 능력이 100%이면 70%의 역량을 요구하는 곳에 가는 것을 '득위의 자리'라고 합니다.

30% 여유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70%밖에 안되더라도 100%의 자리에 가면 그만한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몹시 고통스럽게 할 뿐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 부려서 하는 일이 자기 능력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위의 5가지 덕목(성찰, 겸손, 절제, 미완성, 변방)은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로 보는 것입니다.(p72)



중국 사상을, 공자 이전 2500년 그리고 공자 이후 현재까지 2500년으로 나눈다 합니다. <논어>는 공자의 대화록입니다. 14년의 유랑 후 노년에 정착하여 생을 마치지 전까지 학사를 세웁니다. 향리에서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 <논어>입니다. 공자의 출생 신분이 무녀의 사생아였고 정치 영역에서는 완전히 실패하지만 그의 평가는 다양합니다. 거침없는 사고, 행동하는 사람, 뜻이 높고 작은 일에 거리낌 없는 사람, 주공을 그리워하는 복고주의자, 노예제 옹호론자(당시 진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로 비판되기도 하며 참주제를 반대하여 망명하여 유랑한 사람, 혁명가였습니다. 지금도 그의 사상이 건재한 이유를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논어>를 한마디로 인간관계의 발견이다.라고 합니다. 저도 <논어>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를 언. 젠. 가. 깊이 있게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역사 흐름 - 현재의 열린 사고  (p86 중 부분 발췌)
국가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국력의 극대화가 관심사였던 춘추전국시대의 공자<논어>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우리의 현실을 바로 보게 합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국가를 지탱한 국가 경영은 자주(우리의 역량을 강화하여 국가를 지키는 것)와 개방(세계와의 소통을 기민히 하는 것)이었고 슬기롭게 구사하여 우리 역사를 지켜 올 수 있었습니다. 자주에 무게를 두었던 때는 역량을 키울 수 있었던 반면 고립되고 정체될 위험이 없지 않았고 반대로 개방에 무게를 두었을 때는 국가의 주권이 침해되었습니다.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가르침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경제 질서의 중하위에 매달려 국정은 부채로 운영되고 국가 부채, 가계 부채 해결할 방법이 없는 불안한 처지에다 분단비용 갈수록 커지고 있어 엄청난 내부 소모로 사회적 억압, 민족 역량이 황폐화되고 있고 주도권을 다른 나라들에게 빼앗겨 역용 당하고 있다 함을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 가능성이 부정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음을 저 또한 탄식하고 있지요. 열린 사고를 갖고 민족의 비원인 통일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날이 올지... 비관적이기만 합니다.



<맹자>, <순자>, <노자>, <장자>, <묵자>, <한비자> 고전 담론이 이어집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약육강식, 하극상, 대량 살상 등 비참한 현실에서 제자백가들 모두 하나같이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꽃은 훨씬 훗날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열매는 더 먼 미래의 것이라 합니다. 고전이 태산이란 말이 더 와 닿았습니다. 좋은 말을 한꺼번에 읊고 나니 현실과 한없이 멀어집니다... 허무와 비관이 뒤섞이고 맙니다.

<맹자 인의예지, 만남의 부재>
우리 사회의 왜소한 만남은 도시의 과밀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지하철 속에서 만남은 20분만 지나면 끝나는 만남입니다. 20분간의 만남은 부끄러움이 형성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맹자의 사단 '인의예지仁義禮智' 의義가 수오지심羞惡之心, 부끄러움(치恥)입니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만남이 지속적일 때 생긴다고 하는데 만남의 부재 속에서 부끄러움이 남아있을리 만무합니다. 경박하고 예의 없는 무책임한 행동이 스스럼없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들의 삶을 돌이켜 보면 인간적 만남이 대단히 빈약하기만 합니다. (p108-109)

한비자의 '나라를 망치는 7가지 사회악'은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경제,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신앙입니다.(p191)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

신영복 교수는 통일혁명당 사건-'역사의 단면과 이면.... 그 소용돌이 속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요?' -으로 군사재판을 받고 20년간의 수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무기징역형을 시작하고 바닥없는 고통과 암담한 심정을 담담하게 풀어놓고 계셨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였고. 살고 싶다던 사형수들의 이야기는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가 경험한 것 정도에서 평생을 이해하고 살아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글로 다른 인생을 경험한다는 것은 항상 한계만 남는 것 같습니다. 그분이 느끼신 것에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할 테지요.


 

감옥에서 일화 중 글쓰기와 관계된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유일한 글쓰기는 편지였다고 합니다. 써야 할 글을 암기하여 편지 쓰는 날 한 글씨도 빠짐없이 써냈다고 합니다. 엄격한 자기 검열하에 가족들에게 반듯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국가권력에겐 무너지지는 않는 모습 보이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 엽서들을 다시 책으로 만나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 글로 저 같은 사람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에게 독서는 독서로 끝나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영복 교수님이 들려주시는 <한 발 걸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옥 속의 독서가 한 발 걸음인 것이데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독서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됐습니다.   



동료 재소자들을 대상화하고 분석하던 자신을 상대방은 모두 꿰뚫어 보았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자신만 모르는 왕따라고 표현하시더군요. 수년을 동고동락하며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의 삶을 책처럼 들여다보고 나니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정서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변화를 목격했다고 장담도 하셨지만 출소하고 지인들을 다시 만났는데 '너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스스로 자위코자 하신 말씀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잠재되어 있다'라고 결론을 지으시네요... 자기 개조는 그만큼 어려운 것이겠지요..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까지 이 변화 과정은 삶의 현장에서 배우고 인간관계의 완성에 가까워 지려는 공부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발 걸음의 완성이 아니라 한 발 걸음이라는 자각과 자기비판, 그리고 꾸준한 노력입니다.(p243)  



최고의 관계에 대해 정리하자면 서로 따뜻하게 해 주는 관계, 깨닫게 해 주고 키워 주는 관계라고 합니다. 저도 알게 모르게 이웃분들과 그런 관계를 쌓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그분들을 대하게 되었거든요. 따뜻한 말 한마디에 무척 감동받기도 했습니다. 참된 인식은 관계 맺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관계와 애정 없이 인식은 없다고 합니다. 어떤 것의 인식이든 가장 밑바탕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야' 이런 말할 수 있는 신뢰감, 입장의 동일함에 대한 인식의 문제, 사람의 문제, 세계의 본질로 보는 관계 담론은 돈 주고도 못 들을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관계를 인간적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고思考는 상품처럼 되어가고 있음을 저도 압니다. 내가 하는 여행에서 부단히 만나고, 부단히 소통하고, 부단히 변화하는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혼자서 이뤄지지 않음을 알아야 했습니다. 동정과 위선을 경계하며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그가 덜 비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동행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뼘도 나아가지 못하고 결국 제자리걸음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고민이 시작일 수도 있으리란 희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머리-가슴-발)은 떠남, 만남, 그리고 돌아옴이라고 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자기를 칼같이 떠나는 것입니다.(p345)


한숨 흐트러지지 않는 역사 이야기는 짧지만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조선 건국 정확하게 100년 후 고려 말의 데자뷰였음을 조선시대 당파가 임금을 세우고 5.16쿠데타나 12.12사태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개혁은 죽음으로 좌절되고 민중의 혁명은 유린되고 식민지의 길로 들어섰음을 남북은 임진강 푸른 물줄기 철조망으로 결박되었음을 우리는 이제 모르지 않지만 우리의 현실은 제자리걸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상투쟁은 모든 개혁의 처음이고 끝이다. 란 말이 통렬하게 와 닿았습니다.  

<몽고과 고려, 일본과 조선 각각의 다른 충돌>
몽고와의 충돌은 몽고 지배로 이어지고 일본과의 충돌은 일제 식민지로 전락합니다. 고려 말 원나라에 파견한 고려 사신단은 그 횟수만 해도 400여 회가 넘었다고 하며 그 규모도 매번 같지 않았다 합니다. 중국 중심 문화를 넘어 세계를 학습하게 됩니다. 유연한 국가 경영 방식을 취합니다. 한국현대사학회 중심의 뉴라이트에서는 일본과의 충돌이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그것입니다.  양자의 차이에서 결정적인 것은 몽고와의 충돌은 '非A'라는 지양의 과정이었음에 반하여 일본과의 충돌은 非A가 아니라 아예 B나 C로 전락했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단절이라 해야 합니다. 국가가 망하고 언어, 전통, 문화가 단절되는 것이었습니다.(p385)



긴긴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갇히지 않은 사유로 미래의 사유를 선취할 수 있는 지식인의 실천적 과제 수행서 쯤 되는 것 같았습니다. 어려웠습니다.... 저는 읽고 싶은 부분만 읽었을지도 모릅니다. 1부에서 고전으로 2부에서 수감생활에서의 이야기로 인간관계 완성으로 가는 길을 공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루에 작은 파트 한편씩 읽어나갔습니다. 그런데도 버겁다고 생각되면 책을 바로 덮었습니다. 오랜만에 책 다운 책을 읽어 뿌듯했고 비록 혼자 한 독법이긴 했지만 즐거웠습니다.


언약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by 훌리아

http://m.blog.naver.com/roh222/220152212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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