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의 이별은 이토록 슬프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큰외삼촌께서
하느님께 가셨다
눈 감으셨다
나에게 무한 응원과 사랑을 주는
그가 떠났다
내 편이 사라졌다
엄마는 너무나 슬피 오래
멈추지 못하고 눈물을 흐렸다
60이 넘은 동생(엄마)은
큰오빠를 향해 소리치고
눈물 흘렸다
가족 단톡방에, 가족 밴드에 있던
나의 옛 블로그에 있던 가족사진들을
둘러보며
오래된 사진을 다시 찾아본다
아빠가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갑작스럽게
우리의 곁을 떠났기 때문에
엄마는 바빴고 엄마는 힘들었다
그래서 명절날 시골에 가면
우리는 더 사랑받았을 거다
용돈 조금 더 , 응원 한 마디 더
그렇게 받은 사랑으로 나는 꽤나 무럭무럭 자랐다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응원과 칭찬은
언제나 기분 좋고 힘이 났다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으면에도
내 고향이 엄마집 하동이라 말하는 이유는
마음의 고향이 하동이라 그런 듯하다
장례식은 성당에서 이루어졌다
성당을 지을 때부터
우리 외삼촌은 전국을 신부님과 함께 다니며
60년대에 시골에 성당 짓기 위한 모금에
동참하고 노력하였다
돌담하나 나무하나 헛으로 된 게 없을 만큼
이 성당을 지었는데 이 성당에서 장례를 한다
없는 시골집 안에서도
기도하고 어려운 분들 도와주고 힘이 되어
2년 전 할머니 장례식엔
신부님이 3분이나 찾아오셨다.
그리고 삼촌의 장례식에도 두 분의 신부님께서
오셔서 기도하고 장례미사를 했다
이 성당에서 우리 가족은
3명의 가족을 보냈다
코로나시기라 할머니는 성당에서 장례식 하지 못한 거 빼면 작은 외숙모, 외할아버지, 큰외삼촌
이렇게 우리의 슬픔과 사랑이
이 성당에서 잠들었다
소식을 듣고
친구집에 놀러 가느라 청주에 있던
우리는 한걸음에 하동으로 내려왔다
내게는 큰외삼촌의 3일장을 함께했다
너무 고마운 남편도 그 3일장을 내내 함께했다
김장하러도 같이 가고 명절도 함께 보내고
하여 남편도 우리 삼촌을 잘 따랐다
지난겨울 여행을 가기 전엔
얼마나 가는지 언제 오는 지를 묻는 엄마의
질문에 엄마와 나 둘 다 조용히 숨죽여
질문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새해가 되어 삼촌이 좀 괜찮아지셨다고 했다
삼촌 간병을 위해 6개월쯤 전부터 시골에 내려가신
엄마와 가끔 통화하면
2년은 있어야 엄마가 다시 부산에 오겠다
하는 농담을 하곤 했다
2년쯤 되면 휠체어 타고 든 걸어서든
자유롭게 삼촌 다니시고 할 수 있을 거라
우린 생각했지만
근래 엄마와 통화할 때마다 목소리가 어두워지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들이
떠나갈수록 무서움이 커진다
소중한 사람이, 가족이 많다는 것은
이별 또한 많다는 것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다
두렵지만
행복했던 나의 시절을
지금까지의 나를 만들어주신
우리 외삼촌께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많이 많이 저를 칭찬해 주신 거
사랑해 주신 거 감사드립니다
행복했어요 삼촌과 가족들과 함께한
모든 시간들
남아있는 가족들이 다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사랑하며 살아갈게요
감사합니다
이제 아프지 말고 편히 쉬세요
삼촌 사랑해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