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 감상
<더 글로리>를 뒤늦게 몰아서 봤습니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완주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분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군더더기 없이 이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던 것도 같습니다.
드라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명확히 나뉩니다. 그리고 가해자의 조력자들과 피해자의 조력자들도 명확히 나뉩니다. 이러한 명확한 선긋기는 작품을 보다 명료하고 몰입감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드라마 속 동은(송혜교)은 18년 동안 준비해 온 복수를 치밀하게 전개합니다. 총 16부작의 드라마에서 초반 1.5화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동은의 복수가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1.5화 분량의 피해에 대한 14.5화 분량의 복수가 설득력이 있게 하기 위해서, 동은이 당한 고통은 거북할 정도로 강렬하게 묘사됩니다.
복수는 거침없이 전개됩니다. 연진(임지연)의 반격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2화 이후의 어떤 순간에서도 동은의 복수가 그르쳐질까 우려되는 때는 없었습니다. 그만큼 동은의 복수는 치밀했고, 가해자들의 결속은 눈에 띄게 허물어졌으며, 그들은 이미 스스로를 파멸시킬 복선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복수의 결과물도 아쉬움이 남지 않습니다. 가해자 중에는 죽은 사람도 있고 죽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죽었다고 해도 과하지 않고 죽지 않았다고 해서 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파멸이 스스로의 업보에 상응하는 것인지 객관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동은이 마무리지은 결론에는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정(이도현)의 존재, 또는 역할이 아쉽다고 합니다. 여정이 동은을 돕는 이유나 방식이 현실적으로 개연성이 없다거나, 극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그럴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여정이 등장하는 장면은 극의 분위기에서 조금 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은의 복수가 몰입감 있게, 설득력 있게 전개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장치였다고도 생각합니다. 여정의 존재나 역할은 조금 비현실적일 수 있어도, 그로 인하여 극의 핵심이 되는 동은의 복수가 개연성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더 큰 자연스러움을 위해서는 감수할만한 어긋남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실성을 떠나서, 치밀하고 시원하게 전개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따질만한 것이 있다 해도 굳이 따지고 싶지 않은 드라마였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그윽한 국화향보다는 쾌한 멘솔향이 더 취향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