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혀버린 부의 사다리와 주린이들의 탄생
오전 9시. 개미들의 놀이터가 열리는 시간이다.
사무실 자리에 착석한 사람들이 일제히 모니터 화면 대신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 본다. 각자 수익을 내기 위해 밤새 생각해둔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다. 출근과 더불어 주식시장을 지켜보는 것 또한 하루의 일과가 된 지 오래다. 전업이든 부업이든 모두 잘 사고 팔아서 이익을 보겠다는 마음만은 절실하다. 하지만 쉴새 없이 숫자가 뒤바뀌는 화면을 보고 있으니 선뜻 계획을 행동에 옮기기가 망설여진다. 전날 유투브에서 추천받은 종목을 살까말까 고민하고 가진 종목 중에 가격 하락이 예상되는 것들을 팔까말까 고민을 한다. 향후 주가 변동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보니 더욱 내 투자전략이 합당한지 확신할 수 없다.
그렇게 내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호가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내 옆의 동료는 이미 몇 주씩 사고 팔고를 끝냈다.
흔히들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고 하는데 이걸 알아보는 게 쉽지 않다. 이미 작년 하반기를 지나며 대부분의 주식 가격이 오른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 바닥을 치고 있는 종목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남들 다 산다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이름 들어본 대기업들 위주로 종목 검색을 한다. 우량주는 쉽게 흔들리지 않고 오를 거라는 믿음과 잘 알려지지 않은 성장주들에 섣불리 투자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위험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있는 한 삼성전자는 망하지 않는다'는 지론에 따라 너도나도 삼전의 주주가 되길 자처한다. 이처럼 한국의 대기업 중심, 기존 제조업 중심의 편중된 산업구조 역시 주식시장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다른나라와 상위 종목들을 비교해보면 산업구조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주식으로 부자된다는 건 소수의 영웅담에 불과하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 주식을 나도 사볼까 싶어서 보면 이미 가격이 치솟아 있다. 매수 타이밍을 놓친 건가 싶어 아쉬움이 밀려든다. 많이 올라있는 주식을 매수했다가 가격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싶어 매수를 포기하하려다가 더 오르게 되면 후회할까 싶은 생각에 다시 갈팡질팡한다. 판단이 적절했는지 여부는 사후적으로 확인할 뿐이라 거래 당시엔 알 수 없다. 그렇게 내 주변에 삼성전자를 9만원 대에 샀다가 바로 8만원 대로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잘못 샀다며 울부짖은 이도 있었다. 그렇지만 돈을 잃든 얻든 교훈이 남는다. 다만 그 교훈이 일관되지는 않는다. 조급해야 할 때도 있고 신중해야 할 때도 있는 법. 결국 타이밍을 잘 포착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올바른 판단을 해볼까 싶어 여기저기서 정보를 구해보지만 어떤 것을 유용한 정보로 받아들이고 취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커뮤니티와 유투브엔 검증되지 않은 온갖 분석들이 난무한다. 지금이 살 타이밍이다 아니다를 두고 설전이 오갈 때면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결론은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사고 팔자'가 되곤 한다. 또 얻고자 하는 수익 범위도 정해놓고 팔아야 한다고 하는데 오르락 내리락하는 그래프를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예상보다 더 수익이 난 종목은 혹시 더 오를까 하는 마음에 팔기가 아깝고 하락 추세인 것을 알지 못하고 사 버린 주식은 '존버'하면 오를 거란 믿음으로 손해를 감수한다.
내가 도박을 하는 건지 투자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유례없는 주식열풍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저금리 시대에 집 살 돈은커녕 약간의 여유자금 만들기도 벅차다 보니 그나마 이윤을 얻을 투자 대상으로 지목된 게 바로 주식이다. 예적금으로 수입을 저축해봤자 주식으로 얻는 이윤이 더 크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은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었다. 개미는 일생을 부지런히 살아도 기득권인 베짱이를 따라잡기 힘들다. 아무리 일을 해도 노후는커녕 결혼 준비하기도 빠듯한 처지에 놓인 개미들에게 주식은 하나의 탈출구다. 특히 일부 선배 개미들은 주식투자에 성공해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했다. 그 선배 개미들은 제 성공담이나 실패담을 꺼내며 어떤 마인드가 필요한지 뭘 사야하는지 등의 조언들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경제위기', '노동위기'를 맞자, 주식의 주자도 모르던 이들까지도 책과 유투브를 통해 각자 공부하며 개미들의 행렬에 뒤따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명 주식 초보자를 일컫는 '주린이'라는 용어가 신조어로 등장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주식시장에 무관심했던 이들마저 뛰어들며 '너도나도'가 되어 시장 분위기는 더욱 과열됐다. 그들을 위한 유투브 채널도 앞다투어 생겨났고 코스피 지수는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상장하는 회사들도 주주가 된 주린이들도 전에 없이 늘어나고 있다. 슬슬 닥쳐올 주가 하락을 경계해야한다는 '상승장'이 됐다. 하지만 잘 눈여겨 본다면 수익을 얻을 기회들이 포진해 있는 상태다. 누군가는 '초심자의 행운'으로 오랜 주식을 해 온 이들보다도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하는 등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가득하다.
주린이들에겐 하나부터 열까지 주식시장에 관련한 모든 것들이 생소하다. 그래서 공모 경쟁도 치열하고 회사 자체에 전망이 있어 보인다 싶어 '빅히트' 주식을 샀다가 낭패를 본 주린이들도 있고 제법 이것저것 공부한 끝에 상승세에 있는 종목을 샀지만 매도 타이밍을 놓쳐 손해를 본 주린이들도 있다. 사실 손해 보는 거래는 오래 주식을 해 온 베테랑들도 자주 겪는 일이다. 그럼에도 유독 곡소리가 나는 것은 이쪽 방면으로 문외한인 사람들이 전에 비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젊은 층의 상당수가 이미 주식에 뛰어들었다. 건물주가 아닌 이상 월급만으로 현재와 미래를 안정적으로 꾸려나가는 건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수입이 억대 연봉이 아닌 이상 미래를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며 다들 불안해하고 있다. 그래도 전에는 그런 불안함을 술잔을 기울이며 달랬고 사람들과의 친목도모를 통해 웃음으로 날려버렸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 타인에게 기대어 나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달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어려운 현실을 감당해야 하는 시기다. '각자도생'의 시대다.
자기계발이 대세였던 시기를 지나 자기위로의 시대, 그리고 바야흐로 개인 소액 투자의 시대가 왔다. 이제는 주식하지 않으면 '바보'가 된 것 같은 분위기마저 생겼다. 특히 고용불안 등으로 생존위기에 내몰린 젊은 층들은 재테크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여건이라고 자조한다. 내 집 마련의 기회조차 없다는 비관적인 현실 속에서 잘 하면 꾸준히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공평하지 않은 사회에서 마지막 남은 선택지가 바로 주식투자다.
오후 세시 반. 개미들의 놀이터가 문을 닫는 시간이다.
오늘도 수 많은 개미들이 전날 짜둔 전략에 맞춰 혹은 급하게 세운 계획에 따라 사고팔고를 마무리지었다. 성공한 투자자도 있을 것이고 실패한 투자자도 있을 것이다. 몇 백원 오른 주식에 함박 웃음을 짓고 몇 천원 떨어진 주식에 얼굴에 그늘이 진다. 투자 금액이 많으면 많을 수록 기쁘고 슬픈 정도가 어느새 일상의 작은 행복이 주식가격의 등락으로 대체된 것만 같다. 돈만큼 웃음 지어지는 게 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물질이 최고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굳어진다.
항상 늦은 오후 시간이면 저마다 오늘은 좀 수익이 있다느니 좀 떨어져서 아쉽다느니 말들이 오간다. 그런 풍경으로 가득한 사무실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소외감에 시달리곤 했다. 다들 하니깐 해야할 것만 같은 경쟁심리가 부추겨졌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자괴감이 나를 온통 뒤흔들었다. 많은 이들이 그런 불편한 마음으로 주식을 시작했을 것이다. '한 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이 기회를 나만 놓칠 수 없다는 불안함으로.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내가 구하는 정답이 과연 맞는 것인지 끊임없이 의심을 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유독 내 선택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게 되는 때를 맞은것 같다. 그만큼 자본주의의 견고한 층계 속에 나 혼자 낙오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가득한 시기가 왔다. 내 한 몸을 뉘일 자그마한 공간마저 애를 써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비정한 현실 속에서 오늘도 개미들은 주식 얘기를 하고 있을 테다. 명절이 끝난 뒤 돌아오는 월요일엔 다시금 놀이터 문이 열리면 세워둔 계획에 따라 열심히 사고팔고를 반복하고 있을 테다. 제 계획에 따라 부디 수익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제 현실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희망하고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