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투와 성공의 상관관계
주식이 떨어지고 있다.
인생 역전 가능성도 사그라들고 있다.
한 때 3000선을 넘으며 고공행진했던 코스피지수가 다시 3000선 아래로 하락했다. 지난 몇 개월 간 연일 상승했던 주가는 현재 대부분 하락 중이고 개미 투자자들의 투자심리 또한 위축되었다. 소위 '영원한 상승도 영원한 하락도 없다'는 말처럼 그리고 여러 전문가들이 주식시장의 거품을 경고했듯 주식시장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불과 올해 초까지만 해도 주가가 거의 하락 없이 올랐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주가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했다. 한국에서 주식하는 사람이라면 하나쯤은 들고 있다는 '삼상전자'가 곧 10만 전자가 될 거라는 설이 돌았을 정도였다. 주식을 접해본 적 없던 주린이들도 쉽게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돈을 벌게 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주식에 매달렸다.
하지만 이제 다들 마이너스 수익률을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 주가가 오르는가 싶다가도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하락에 탄력이 붙었기 때문이다. 고점을 향한 랠리인줄 알았건만 고점이 되어버린 그 자리에서 주가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투자하기 좋은 호시절이 정말 다 끝나버린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끝없는 상승과 벼락과 같은 횡재는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내 집 마련이 꿈이던 시절을 지나 하우스 푸어들이 만연한 사회가 됐다.
근로소득의 상승률은 크지 않은 반면 자본의 가격은 크게 치솟았다. 임금이 쉽게 오르지 않는 이유는 기업이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인건비와 같은 비용 항목을 가급적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이 부풀려지는 데는 별 다른 제약이 없다. 하룻밤 새 집값은 몇 배가 뛰는 반면 최저임금은 오르는 폭이 매우 작다. 그래서 자본소득이 많은 금수저들은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더 견고히 하거나 부의 계단을 오르곤 하지만 흙수저인 이들은 더욱 가난에 쫓기고 있다. 벌어들이는 수입은 변함없는데 반해 생계유지비는 껑충뛰기 때문이다.
풍족한 삶과 안정적인 노후 대비를 위해서는 여유 자금 마련이 필수적이라고들 하지만 현실의 20-30대는 그럴 여력이 없다. 오히려 그런 류의 삶을 포기해야만 행복한 세대다. 미래를 위해 자신에게든 돈에든 투자할 여력이 없는 그들은 결혼, 출산과 같은 미래가 오히려 불안하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더라도 벌어진 부의 격차가 개인의 노력으로 좁혀지진 않기 때문이다. 당장의 벌이를 유지할 수 있을 지가 걱정인 그들에게 가족을 꾸리는 것은 또 다른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돈이 개인의 삶과 행복을 좌우하는 지금,
청년세대는 삶에 대한 의지마저 꺾이고 있다.
뜻하지 않았던 주린이의 삶
투자의 귀재로 유명한 워렌 버핏은 ‘자는 동안에도 돈이 일하게 하라’고 했다. 그는 '누군가가 당신의 노후를 위해 일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영원히 일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돈의 속성에 대해 무지하면 돈을 벌 수가 없다고 한다. 투자와 멀어질수록 손해라는 것이다. 또 특히 저금리 시대에 예적금만으로 자산을 축적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투자는 제 길이 아니라 단정짓는다. 문제는 사람들이 부유한 삶을 동경하면서도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가용할 실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워렌 버핏의 말처럼 내가 자는 동안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했고 집값과 주식은 올랐다. 하지만 투자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나는 근로소득을 제외하면 별다른 수입이 없었다. 일하지 않고도 돈 버는 법에 대해 무지했다. 온 힘을 다해 성실하게 일해도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은 좌절만 안겨주었다. 그렇게 내가 박탈감에 시달릴 때 내 주변 사람들은 온통 주식에 빠져있었다. 그들은 하루종일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수익률을 체크하고 살 종목과 팔 종목을 고르는데 여념 없었다.
뿐만 아니라 큰 돈은 아니지만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이들이 주변에 수두룩했다. 상황이 이지경에 이르니 주식투자를 나몰라라 할 수 없었다. 전문가들이 투자권유를 위해 늘어놓는 얘기보다 주위 사람들이 수익을 실현했다는 일화에 더 자극이 됐다. 열심히 저축하는것 만으로 목돈이 마련되는 게 아닌 만큼 투자하지 않는 게 바보처럼 여겨졌다.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것이란 확신마저 들었다. 그렇게 큰 수익을 바라다 원금을 잃느니 작더라도 확실한 수익이 낫다고 여겨왔던 내게 생각지도 못했던 '투자하는 삶'이 시작됐다.
주린이로서의 삶이 반드시 행복할까
작년 초 코로나 사태 발발 직후 잠시 폭락했던 주가가 점차 다시 반등하면서 '주린이 열풍'을 견인했다. 바닥권으로 추락해 있었던 주가가 나날이 치솟는 과정을 지켜보며 개인 투자자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주식으로 버는 돈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주식계좌에 넣었다. 심지어 대출을 받아서라도 투자해야 한다는 인식마저 생겨났다. 성투(성공적 투자)를 위해 공부하고 분석하느라 잠을 포기하고 현업을 제쳐두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차트와 종목을 분석에 매진하느라 직장 동료 및 상사와의 관계를 포기할 정도였다.
삶의 중심이 일이나 여가 같은 일상이 아닌
주식과 투자로 옮겨간 것이다.
그런데 내내 오르기만 하던 주식이 2월부터 하락 추세를 맞았다. 아직 더 상승이 가능하다고 보는 의견도 있고 이제 조정을 거쳐 하락할 일만 남았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끝없이 상승하던 때와 달리 그래프의 방향이 어디로 움직일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더 높은 천장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사그라들면서 주변에서도 주식 얘기가 잦아들었다. 주식으로 돈 좀 벌었다며 투자예찬론을 펼치던 이들은 패닉에 빠졌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주식시장의 정체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코인투자로 옮겨갔다.
24시간 움직이는 코인시장은 더욱더 피말리는 전쟁터다. 한 방에 잃거나, 한 방에 벌거나. 불현듯 새벽에 매도나 매수 타점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코인 투자자들은 퀭한 얼굴로 직장을 오가며 언젠가 터질 한 방을 기다린다. 나의 어느 직장동료는 잭팟이 터진다면 회사를 그만둘 거라며 결의에 찬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과연 그가 퇴사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목표를 위한 그의 여정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언젠가 만날 운명같은 기회가
투자에 있다고 믿으며 말이다.
남들의 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내 삶에 대한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어떤 게 더 좋은 삶인지, 어떻게 사는 게 정답인지 혼란스러웠다. 돈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잠도, 대인관계도, 자신의 일상마저도 쉽게 포기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피폐해 보이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쟤들은 똑똑하게 제 밥그릇을 챙기는데 나는 뭐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자괴감이 나를 단단히 짓눌렀다. ‘어리석게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바로 너야’라고 이야기 하는듯 했다.
범죄를 저질러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면 까짓꺼 뭐든 할 수 있는거 아닐까. 가난이 부추긴 지금의 불행에서 벗어나는 게 최우선인 게 아닐까.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고 비판받는 일부 사람들의 투기행위가 사실 개인의 행복과 영달을 위해 더 없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지 않을까. 돈의 유혹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그럼에도 결국 선한 행동이 이긴다는 말이 맞을까. 그런데 10원도 벌지 못하면서 일한답시고 앉아 있는 내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건 왜일까.
성공이란 돈의 향방을 좇는 것일까. 투자에 나섰다가 결국 자산증식에 실패한다면 그건 실패한 삶일까. 가난은 곧 실패를 의미하는 걸까. 결국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실패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좇아 살아야할까. 그것만이 인생의 해답이 되는걸까. 그렇다면 지금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얼마나 잘못된 것일까.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남들처럼 돈 좀 벌어볼 수 있을까. 밥 먹여 주지도 못하는 꿈과 이상은 왜 존재하는 걸까.
그렇게 수없이 많은 생각들 속에서
나는 하염없이 길을 잃었다.
이 모든 게 자본주의가 남긴 생채기, 피할 수 없는 격차의 문제에서 비롯된 문제다. 하지만 알면 알 수록 정답을 알 수 없는 문제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차트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코인러들은 오늘도 제 인생을 뒤바꿀 기회가 찾아오길 바라고 있다. ‘대박’이 아닌 이상 소소한 즐거움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그들에게 행복은 먼 미래의 일이다. 쉼 없이 오르내리는 코인 시장의 묘미에 젖어든 그들에게 더 이상 작은 수익쯤은 별 거 아닌 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들에게 과연 모든 걸 가지는 기쁨이 찾아올 수 있을까. 그 희열의 순간이 온다면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될까. 상상력까지 펼치다보니 착잡한 심경이 되었다. 뒤늦게 걱정으로 얼룩져 복잡해진 마음을 애써 달래본다. 지금의 씁쓸함이 부디 영원하지 않기를 바라며.
언젠가 나도 웃게 될 날이 올 거라고, 되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