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별명의 역사
어릴 때 남들보다 키가 조금 빨리 컸다.
키가 작았던 엄마는 자신의 딸만큼은 못 먹어서 못 크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마침 이유식보다 우유를 더 잘 먹는 아이였다. 채소나 콩 같은 건 입에 잘 안댔어도 우유만 주면 꿀꺽꿀꺽 잘 삼키더란다. 하루에 3000ml씩 마셔대는 통에 기저귀 갈 일도 많았지만 쑥쑥 크기만 하면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 엄마의 정성 덕분에 나는 유치원때부터 또래보다 키가 더 빠르게 자랐다. 남자 애들과도 머리 하나 쯤 차이날 만큼 엄청난 성장 속도를 기록했다. 그래서 한 때 키와 관련된 별명들이 있었다. 모두 한 사람이 놀리면서 시작된 거지만 ‘전봇대, 롱스톤(포켓몬)’ 같은 게 있었다.
토종 한국인으로서 또래에 비해 영어 실력도 좀 앞서 있었다.
지금도 남들보다 훨씬 유창하다는 게 아니라 초등학교 때 그랬더라는 말이다. 물론 외국에서 유학하다 온 아이들과 비교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영어교육에 오랫 동안 공들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곧잘 했다. 다른 아이들이 지루한 독해와 문법을 익히는 것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할 때 나는 노래와 연극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놀이처럼 재밌게 배웠고 회화 위주로 학습을 한 덕분에 실력이 금방 늘었다. 회화표현을 바로 써먹을 수 있다보니 자신감도 상당했다. 그래서 주변에 외국인이 지나가면 일부러 말을 걸기도 했다. 그렇게 영어 관련된 교내외 대회에서 상을 휩쓸던 때, 내 별명은 ‘윤선생 영어교실’이었다. 마침 윤씨 성을 가져 제법 어울렸던 별명이다.
물론 대부분 별명들이 나를 놀려먹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불리는 게 썩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비록 거부감이 크진 않았더라도 별명으로 불릴 때마다 하지말라며 투덜거리곤 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그 때의 내 모습을 대변해주는 별칭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춰진 건지 그 모습이 별명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의 일부에서 만인이 공감하는 면모를 극대화한 것. 내가 좋든 싫든간에 별명엔 나에 대한 설명이 압축되어 있고, 나라는 사람에 대한 짓궂은 애정표현의 한 방식이었다.
한 동안은 별명 없이 이름으로만 살았다.
한 동안 외적인 부분과 관련된 자질구레한 별명 외엔 불리는 별칭이 없었다. 사실 별명을 붙일 새도 없이 남들에게 내 이름 석자 알리기도 힘들었다. 특히 나이가 들어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론 항상 이름 뒤에 ‘누구누구 씨, 주무관님, 선생님’과 같은 호칭이 붙었다. 처음엔 격식을 차린 표현들이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어색하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아무렇지도 않게 됐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 또는 계급에 따라 서열화된 집단생활엔 상대에 대한 존칭과 예의가 필요한 법이니까. 그런 질서에 순응한 뒤론 별다른 정체성 없이 살고 있었다.
다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밝은 사람으로 이미지메이킹하고자 한 건 성공했다. 그런데 사실 큰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네가 늙으면 입 주변이 제일 쪼글쪼글해 질 거’라는 예언을 남긴 이의 말처럼, 나는 에너지가 밖으로 뻗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벽지처럼 살아야 한다는 한 선배의 가르침을 항상 가슴에 새기면서도 나는 여전히 해맑기 그지 없어서 새로운 것들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사람들 말로는 ‘네가 타고난 천성이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시는 탓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진중함이 너무 없이 가벼워 보이는 게 아닌가 싶어 가만히 있는 날이면 어디 아프냐는 말부터 대뜸 나온다.
이제는 사무실의 골목대장이 됐다.
최근에 우연히 별명이 생겼다. ‘인사이더’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나의 새로운 정체성을 대변하는 말이다. 붙여진 계기는 신규직원들이 오면서였다. 얼마 전 신규 직원들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다들 새로운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했고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아직 인사이동 시기 전이라 그들은 바로 팀 배정을 받지 못한 채 어느 팀에 임시로 배치되어 있어 다들 얼굴 한 번 못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온 첫 날, 나는 얼떨결에 함께 밥을 먹게 됐다. 아무래도 신규직원들에게 눈이 쏠려 있는데 그 가운데 내가 끼어 있었다. 식당에서 여러 신규들과 함께 앉아 있는 나를 본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기보다 ‘너는 역시 대단해, 참 너답다.’라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마주한 나 역시 자리로 돌아갔을 때의 후폭풍이 그려졌다.
모두가 궁금해하던 새로운 이들과 같이 밥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니 기다렸다는듯이 이런저런 소리가 터져나왔다. 모두들 어떤 사람이 왔는가 궁금해서 안달인데 너는 벌써 안면도 트고 다 친해진거 아니냐면서 이러쿵저러쿵했다. 정말 우연한 기회였지만 다들 우연이 아니라 너라서 필연적으로 생긴 만남이라고 얼마나 놀려대던지. 입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들 나를 둘러싸고 여러 말들을 쏟아냈다. 그 가운데 내게 ‘벽지이론’을 설파했던 선배가 대뜸 한 마디 던졌다.
아이구, 우리 골목대장 오셨어요?
그 한 마디에 별명이 생겨버렸다. 다들 내게 너무 제격인 별명이라며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저들끼리 흡족해했다. 내가 스스로 명명한 적이 없었지만 그냥 남들이 부르는 대로 골목대장이됐다. 며칠 뒤 신규 직원분들과 다들 정식으로 인사하게 됐을 때 어떤 분이 나를 보고 반색하며 내가 골목대장이란 얘길 들었다고 했다. 이젠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까지도 별명이 알려졌다. 다들 그 말에 웃으며 얘가 팀의 실세니 잘 보여야 한다는둥 말도 안 되는 우스갯소리를 늘어놨다. 물론 나는 옆에서 절대 그런 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혼자 씩씩거렸다.
물론 내가 우두머리의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만한 역할을 자임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장이 됐다. 책임도 역할도 없는 별칭에 불과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내게 개구쟁이의 모습이 보이는 걸까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한편 사람들 틈에서 열심히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어디서나 적극적인 내 면모가 꽤 사랑스럽게 비쳐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별명 하나에 너무 많은 생각을 달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 정체성을 대변하는 단어로 더할나위 없이 맘에 든다.
오늘도 나는 골목대장답게 신규 직원들을 쭉 모시고 내가 지키고 있는 사무실로 데리고 와 함께 인사를 나눴다. 곧 다음주면 그들과 함께 새롭게 업무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회사 골목대장으로서
구성원의 웃음과 평안을 책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