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온 욕심을 거두는 삶에 대하여
처음 눈 내리던 날에 비해 날이 많이 따스해졌다.
배부른 채 따스한 공간에서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을 수 있어서 그런가 온갖 잡생각이 휘몰아친다. 나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로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는데, 다른 이들은 저만의 색깔로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다. 핸드폰으로 남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의 '쓸모'에 대한 궁금증이 인다. 학생일 때만 해도 직장에서 내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더 이상의 고민이 생기지 않을 줄 알았는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일과 자아실현은 별개였다. 의식주 문제가 가장 중요하기에 직장이 생기면 삶의 중요한 고민 하나는 해결된 거라 믿었는데, 오히려 '지금 나는 뭐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자라면서 꿈은 점점 소박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삶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움을 갈구하고 있다. 그건 사실 내가 나의 성장과 발전 가능성을 기대하는 사람이라 그렇다. 한정된 분야에서만 아는체 하고 살기엔 내가 아는 세상이 너무 넓다.
그런 김에 심심풀이로 어플을 이용해 타로 점을 봤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설명과 조언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점괘 풀이를 보니 이런 촌철살인이 따로 없었다.
길이 아닌 줄 알면서 가다가 낭떠러지 앞에서 멈췄다고 카드는 말합니다.
먹으면 살이 찌는 걸 알면서도 야식을 달고 살다가 거울을 보는 것이 두려워진 상황이라고 할까요? 상처가 될 줄 알면서도 시작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겨울이 올 줄 알면서도 그늘만 찾아 여름을 즐긴 베짱이처럼 모든 선택은 내가 했기에 감당도 내 몫입니다. 그저 자신이 밉고 한심한 상태.
내가 뽑은 카드는 '악마(THE DEVIL)'카드였다. 악마카드는 흔히 욕망에 자신을 내맡긴 상태를 의미하는데, 유혹에 휩쓸린 상태로 해석하기도 하고 욕망이 지나친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다. 발전이 없이 무기력하거나 나태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쉽게 말해 나쁜 의미를 가진 카드로 욕망에 빠져 자제심을 잃었거나 지지부진한 상황을 경고하는 카드다. 카드를 뽑은 질문자가 '악마의 유혹'에 빠졌기 때문이다.
딱 들어맞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수긍할 만했다. '확찐자'가 된 것은 물론이요, 하고자 했던 것들도 중도에 다 그만둬버렸다. 영어공부도, 운동도 말이다. 정해 놓은 목표도 없이 그저 욕심만 앞서서 나태하게 지내는 게 딱 현재의 내 모습이 그려졌다. 결국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음을 아는 현명한 판단만 남아 있습니다. 아름다워서 꺾은 장미가시에 찔려 피가 날 수도 있음을 깨닫는 것이 우선입니다. 욕심만 가득했던 나에게 실패가 아니라 경험이었노라, 격려하고 다독여 다른 내일의 태양을 맞을 준비하는 것만이 답답함을 벗어나는 지름길입니다.
카드는 당장에라도 할 수 있는 걸 시작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에 추가로 뽑았던 조언카드는 '바보(THE FOOL)'이라는 카드였다. 어떻게 해야 이런 답답함에서,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조언이다.
계획없는 여행을 떠나 보세요. 목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버스타고 아무데나 내려 자연 속에 잠깐 몸을 맡기세요. 가벼운 산책도 굿.
아쉽게도 코로나 시기에 실천하기 참 쉽지 않은 조언이다. 하지만 나쁜 유혹을 떨쳐내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기도 하다. '바보' 카드는 멍청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유로움과 새로움을 의미한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 무한한 가능성, 자유를 향한 여정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조언이 아닐까 싶다. 여행이 너무 가고 싶다라든가, 지금보다는 자유롭게 그리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든가하는 바람처럼 말이다.
뒤이어 본 타로점은 직접 가지고 있는 타로카드를 셔플을 해서 봤는데 과연 내가 원하는 성취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1) 현재 나의 상황: 6 of swords(역), 나아가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
2) 문제의 원인: 6 of pentacles(역), 애쓰지만 헛수고. 노력에 비해 기대를 밑도는 보상에 허무함
3) 가까운 미래: Knight of pentacles, 인내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이어온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됨
4) 조언: THE WORLD, 성공적인 결말. 마지막까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해야 함. 성공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시간과 노력을 들일 것.
해석 경험이 많지 않아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나 대략 내 상황에 맞춘 카드 해석은 위와 같았다. 관련한 다른 질문에 대한 점괘 역시 중압감을 이겨내야 한다거나 꾸준하게 파고드는 게 중요하다는 류의 조언이 나왔다. 다행히 미래엔 어떤 식으로든 성취가 있을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미래에 잘 들어맞는 점괘일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우선은 긍정적인 결과에 안도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조언에 계속해서 '꾸준한 노력'을 의미하는 카드가 나온 게 의미 있었다. 카드 해석 결과는 비록 지금은 실망스럽더라도 그에 굴하지 않고 나아갈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당장의 성취에 목 매지 않아야 꾸준함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지금의 위치에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위로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너무 치열하다.
한국 사람들은 연말연시가 되어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내년 계획을 세울 쯤이면, 삶이란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자신을 잊어버리곤 '올해도 한 게 없었다'며 자책을 일삼는 버릇이 있다. 남과 비교해 내 현위치가 아쉬워서일까 아니면 표면적으로 와닿은 기쁨이 없어서일까. 혹은 남들 이상으로 해내지 않으면 불안한걸까. 잘 하지 못해 괴롭다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대부분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게 더 익숙한것 같다.
남과 비교하는 삶,
세상이 만든 기준에 끼워맞추는 게 당연한 삶
그런 삶에선 영원히 행복은 내 것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기성세대가 만든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일부분을 희생하며 살고 있다. 성취의 기준이나 이상적인 삶에 대한 생각이 저마다 다르기에 감히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노력했던 점에 대해 스스로가 칭찬하는 게 당연한 사회를 꿈꾼다. 1,2등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주어지는 게 아니라 꼴찌에게도 응원의 박수가 쏟아지는 그런 따뜻한 마음이 사회에 만연하기를 바란다. 그런 너그러움 속에서 보다 많은 이들이 뚝심 있게 제 길을 찾아 나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결과 못지 않게 중요한 '노력의 과정'이 경시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타로점이 들려준 조언처럼 나는 유혹에 휘둘리고 답답한 스스로를 다독이며 또 한편 성공이란 집착에 얽매이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언젠간 결승선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 믿으며, 그 마지막 순간엔 내가 주저하고 걱정했던 것에 비해 더 큰 기쁨이 숨어있을 거라 기대하며. 그런 희망을 소중히 품은 채 지내기로 마음 먹었다.
세상아 조금만 기다려, 천천히 내가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