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지워버린 일상의 행복을 기다리며
작년 봄엔 바야흐로 마스크의 시대가 올 거란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작년 5월쯤만 해도 문 밖을 나서기 전 마스크를 챙기는 게 상당히 어색하다 여겼다. 황사와 미세먼지가 창궐한 봄철에도 마스크와는 담을 쌓고 지내온 터라 익숙지가 않았다.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는 행정명령이 발효되기 한참 전이었던 데다가 확산세가 주춤하던 때라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사람도 드문드문 있던 때였다. 기온이 오르며 바이러스의 확산세가 한풀 꺾인만큼 에어로졸 전파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에 종종 마스크 없이 거리를 활보했다. 물론 얼마 안 가 사람들 눈치에 주섬주섬 마스크를 꺼내쓰긴 했지만.
여름이 오기 전 유머라며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사진이 기억난다. 마스크를 안 쓴 부분만 햇빛에 그을린 모습을 추정한 합성 사진이었다. 차라리 선캡을 써야한다느니 선크림을 잘 발라야 한다느니 하는 등 가지각색의 댓글이 달렸다. 날씨가 더워질수록 숨쉬기 버거운 KF인증 마스크보단 일회용 마스크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다. 처음엔 바이러스 감염이 두려워 답답함을 무릅쓰고 KF80 이상의 마스크를 많이들 착용했지만 바이러스 확산세가 주춤하면서 다들 적당히 구색을 맞추는 선에 그쳤다.
그 때는 그런 글을 유머로 소비하며 장차 현실이 될 거란 생각을 진지하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우리의 겨울은 생각 이상으로 혹독했고 2차, 3차 대유행과 함께 잠시 감돌던 희망적인 분위기도 다시 가라앉았다. 지금은 마스크가 일상템으로 자리잡으면서 스트랩도 다양하게 팔고 있고 다양한 디자인의 마스크가 출시되었다. 물량이 부족해 구매 대란이 일었던 방역 초기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고 행동에는 각종 제약이 생겼다. 일상의 풍경이 새롭게 바뀌었다.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쓸데 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대체로 쓸데없는 걱정을 쌓아두는 편이라 생각을 길게 하지 않고 행동에 옮기는 걸 좋아한다. 고민하다보면 주저하게 되고 주저하다보면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생각으로만 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불명확한 미래에 대해 괜히 겁을 먹어 가능성의 한계를 닫아 놓고 나면 반드시 그런 행동을 후회했다. 하지만 그런 활동 자체가 자유롭지 못한 시기를 만났고 남들과 비슷하게 회의감에 휩싸였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였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웃음꽃을 피웠고 다른 누군가는 절망의 벽 앞에 멈춰 서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 걸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언론에선 연일 떠들어 댔지만 당장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딘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한편 집 안에 갇혀 있는 동안 사람들은 노동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 대신 자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너도나도 행운을 기대하며 투자에 뛰어들었다. 경제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도 투자금이 많지 않아도 주식은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세간의 말로는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지만 불행의 일부를 막아줄 순 있다'고 했다.
경제성장이 멈춘 시대에 사람들은 자기계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주식투자는 지금의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에겐 한 줌의 희망이 되었고 곧 투자 광풍이 불게 되었다. 증시의 등락에 따라 매일의 희비가 엇갈렸다. 삶의 끝자락에 내몰린 사람들에겐 최후의 보루가 되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대다수가 최소한의 행복을 보장할 것이라 판단하고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오늘의 투자가 내일의 안녕을 가져다 줄 거라 믿으며.
자유롭게 산책하고 퇴근 후에 뮤지컬을 보러 갔던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모든 순간들이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그 땐 미처 몰랐지만 마스크 없는 일상이 참 소중했다. 과거의 나는 가끔 공연과 전시를 보러가는 게 취미였다. 특히 뮤지컬 공연을 좋아했다. 배우들의 열연과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으며 나 또한 황홀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또 한 달에 한번 이상은 꼭 어딘가에 놀러가야 직성이 풀렸다.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뎌했다. 그래서 사진첩에 새로운 사진이 쌓이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또 가끔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혼자라도 영화관 나들이를 했다. 다들 그렇듯 일상의 힘든 순간을 털어버리는 나만의 방식이 있었다. 그렇게 내 삶의 행복과 불행은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문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마스크와 한 몸이 되어야만 하는 지금의 현실이 답답하다.
점심시간이면 카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나마 한숨을 돌리던 때가 그립다. 의자와 같은 사소한 편의시설조차 앉지 못하게 조치를 해 둔 바람에 잠시 쉬어갈 곳조차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 아쉽다. 책 넘기는 소리가 좋아서 가끔 들르곤 했던 도서관이 그립다. 퇴근 후에 친구들과 만나 맥주 한 잔 하며 회포를 풀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 때가 다시 오기 쉽지 않다는 사실이 한겨울 추위만큼이나 매섭고 아프다.
그래도 결국 우리는 암울하게 드리운 현재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것이다.
현재 백신개발이 완료되어 접종이 시작된 만큼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세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팽배하다. 인류의 모든 역량을 바이러스 퇴치법 고안에 쏟고 있는만큼 언젠간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때가 다시 올 것이다. 그토록 기다리는 과거의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 않았다. 그런 미래를 바라며 모두가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며 지내고 있는 것일테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 이 글을 다시 본다면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코로나 블루 시대의 삶과 고민은 이런 것이었지 하는 회상에 젖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때쯤엔 지금의 산재한 문제들이 다 해결되어 있을지, 더 나은 미래가 다가와 있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은 후세대에게 '라떼는 말이야'라며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절절히 버텨냈노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지금의 답답한 시간이 미래엔 어떠한 이야기로 변주되어 전해지게 될지 알 수 없다. 이미 새로운 시대를 맞은 만큼 삶의 모습도 전과는 다를 것임이 분명하다. 다만 현재의 고통의 시간이 너무 길지 않기를,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극한으로 줄어들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다.
우리의 달라진 미래엔 미처 만나지 못한 행복이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