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노력을 경주하기 시작한 모든 이들을 위하여
비록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새롭게 무언가에 뛰어들기에 앞서 나는 항상 이 명언을 가슴에 새긴다. 무조건 잘 될 거란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앞서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다. 그로써 나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마냥 두렵다 여기기보다 많은 것을 바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려 한다. 과연 그럴싸한 결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하느라 시작이 두려운 나를 다독이는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도 좋아한다. 모두 현실의 불안함을 잠재울 미래의 희망을 암시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격언엔 중간과정에 대한 설명이 없다. 어떻게 역경과 고난을 버텨낼지에 대한 조언은 생략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엔딩으로 향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 관문이 존재한다. 연이은 실패들에서 오는 '좌절과 실망감’이 그것이다. 성공으로 향하는 과정은 마냥 달콤하지 않다. 때론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쓰라린 실패를 겪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대체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는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 더 큰 편이었다. 미래에 발생할 지도 모를 위험요소들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시도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그래서 나는 내가 꾸준히 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 막연히 낙관적인 결말을 꿈꾸곤 했다. '하다보면 된다'고 믿으며 말이다. 그래서 시작에 앞서 고민을 오래하기보다 비교적 쉽게 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겠다고 뛰어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는 것을. 시작을 이끌었던 내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힘든 과정을 버티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럴싸한 결과를 기다리기에 앞서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호기로웠던 시작과 달리 목표에 도달하는 데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뭐든 처음 시작은 쉬워도 조금 지나면 어려운 구간을 만나는 법이다. 실력이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서 당연히 만나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계단씩 올라갈 때마다 전에 비해 더 많은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그런데 지겨움 혹은 답답함을 이겨내고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뭐 하나라도 완성해야지 했던 마음은 수차례 들이닥치는 역경의 파도 앞에서 힘 없이 스러지곤 했다. 그래서 눈 앞에 닥친 어려움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수 없이 들었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나는 뭐든 시작할 결심은 곧잘 했다. 초딩 때 치고 그만 둔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우쿨렐레를 사서 독학으로 연주해보겠다고 했을 때도, 스페인어를 배우겠다고 했을 때도 나는 의지에 불타올랐다.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시작을 결심했다. 시작하기도 전에 조금만 있으면 금세 실력이 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을 정도다. 문제는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묵묵히 내가 목표로 한 것을 달성하는 데 집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머릿 속으론 기대 이상의 대단한 성과를 상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내 몸은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떠난 손은 잔뜩 굳어 있었다. 마음 같아선 금방 멋드러진 연주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누르는 음은 맑고 고운 소리가 나지 않고 거칠고 삐딱한 느낌이었다. 또 오랜만에 공부를 해볼까 싶어 책상 앞에 앉아있노라면 어찌나 몸 구석구석이 찌뿌듯한지. 온 몸이 글자에 집중하는 걸 거부했다. 유혹에 취약한 몸뚱이는 괴로움을 극복하기보다 끊임없이 편안함을 추구하려고 했다. 스페인어를 정복하겠다는 호기로운 다짐은 어디로 가고 반 년만에 배울 의지를 상실해 버렸다.
성공적인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걸음엔 '피, 땀, 눈물'과 함께 지독한 외로움이 묻어있다.
학창시절을 거쳐 직장에 들어가기까지, 할 줄 안다고 내세울 만한 건 '공부'뿐이었다. 공부로 밥벌이해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처럼 나는 시험에 통과해 겨우 사회로 나아갔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보니 내가 알던 세상은 너무 좁은 우물 안의 세상이었다. 더 넓은 세상 속에 다양한 끼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보니 나는 공부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반해 내가 접해보지도 못한 분야에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났다. 지금껏 한 우물만 파느라 다른 분야에 대해선 미처 알지 못했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공부만 하는 것 같았던 내 경쟁자들도 사실 여러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일 하면서도 맘껏 하고픈 일을 했다. '멀티플레이어'들이었다.
부랴부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그리고 하고 싶은 게 뭔지를 돌아봤다.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했고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외 다른 것들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한 걸음 내디디는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이미 손에 익은 분야엔 어떤 고비가 있을지 예상이 되고 그런 어려움들을 뛰어넘을 준비가 되어있기도 한데 처음 하는 일은 그렇지 않다. 처절하게 부서지고 깨지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처음엔 금방 모든 한계를 뛰어넘을 것처럼 자신감이 충만하다가도 극복하기 어려운 지점들을 만나면 '적당히 하고 말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빠르게 성과를 내고 싶다해도 초행길은 거칠고 힘든 법이다. 가 보지 않은 길은 어디가 함정인지 알 수 없고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서 돌아가고 싶은 유혹에 수없이 휘둘리게 된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와 같은 상황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견뎌야 한다. 앞이 보이지 않아 헤매더라도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지 후회스럽더라도 나아가기로 맘 먹었다면 버텨야 한다. 성공의 과실은 절망과 좌절의 끝자락에서 주어지기 때문에. 기다림이 지속되던 어느 날, 운 때가 맞는 순간. 역주행의 신화를 쓴 몇몇 이들처럼 비로소 노력의 결실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 지금 그런 과정을 겪고 있다. 아니 견디고 있다. 사실 아직 본격적으로 '경주'를 시작한 것도 아니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일이 아닌 이상 끊임없이 나를 단련하는 수밖에 없다. 수 없이 겪는 실패와 오답들 덕분에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오랜 시간 시험지와 아옹다옹할 줄만 알던 내게 도전하기로 마음 먹은 것들은 즐거움보다 괴로움을 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엔 비로소 알게 되겠지. 지금의 노력들이 결코 헛된 게 아니었음을. 미래의 결실을 만든 아름다운 과정이었음을.
그렇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있다.
결국 다 괜찮을 거라고.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첫 술에 배부르지 못한 것 같은 지금이 사실은 시작에 불과할 거니깐. 끝이 오기 전까진 알 수 없다. 과연 도전하겠다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낼지 아니면 적당히 포기하는 것으로 현실과 타협하게 될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