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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Jul 02. 2023

힘을 빼는 연습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

갓 스무살. 대학교 1학년생이던 때, 어느 교수한테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달걀이 소중하다고 손아귀 힘으로 너무 꽉 쥐면 금방 깨져버릴 겁니다. 학생은 지금 그런 모습이에요.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아느냐고 되묻고 싶었다.


  그 교수를 만난 건 어느 교양 수업에서였다. 처음으로 B 학점을 받았던 과목이다. 스무살의 나는 여유가 없었다. 지나가는 계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의 젊음이 얼마나 아름답게 피어난 순간이었는지 미처 몰랐던 어린 시절이었다. 대신 간절함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능력있는 사람인지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 때 나는 수능에 실패해 원치 않는 대학에 진학했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었고 그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썼다. 함께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이미 나와 다른 출발선에 서 있었다. 그래서 내게 성적은 중요했다. 그래야만 무너져 내린 자존감이 회복될 것 같았다. 그렇게 '잘났다는 증명'에 목매던 내가 B 학점이라는 경악스러운 점수를 받은 것이다.


  담당 교수에게 성적 이의제기 메일을 썼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나의 조급함을 나무라는 내용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아느냐고 되묻고 싶었다. 과에서 1등 자리를 놓칠 수 없었던 내게 B 학점은 재앙과도 같았다. 하지만 내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그 교수가 말한 달걀 이야기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내 노력만큼 남들보다 앞서지 못해 애가 타고 힘들었던 순간마다 그 말이 생각났다. 그 때마다 그 말은 내 마음을 후벼파는 가시같았다. 그 교수가 내게 알려주고 싶었던 건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라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였을까. 내 생각이 그렇게 잘못된 것이었을까.


20대를 지나는 동안,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슴에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https://www.additudemag.com/what-is-depression/


이제야 비로소 그 의미가 와닿기 시작했다.


  20대 내내 나를 괴롭혀 온 건 내가 남들보다 못 한 게 아닐까 하는 자격지심이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잠시나마 함께 수학했던 동문들은 이미 남부럽지 않은 코스를 밟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온전히 내 자신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종종 휩싸였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초년생 시절 나는 의욕이 넘쳤다. 과할 정도로 일에 집착했고 성과에 욕심을 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느 선배를 만나 '벽지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결국 욕심을 억지로 내려놓고 나서야 알게 됐다. 원한다고 다 가질 순 없으니 적당히 버릴 줄도 알아야 하는구나. 엄청난 슬픔과 함께 깨달음이 찾아왔다.


  지금은 대부분의 시간 의욕이라곤 하나도 없는 얼굴로 앉아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일에 매몰되지 않고 적당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적당히 '밥값을 하자'는 게 모토가 된지 오래다. 물론 체력과 열정을 쏟아부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의지가 별로 남아있지 않다. 처음엔 이렇게 힘 빠진 내 모습이 달갑지 않았다. 오히려 변해버린 스스로가 역겹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통받았던 시기가 있었다. 20대의 내가 바랐던 것처럼 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는데 세상이 나를 '억까한다'고 생각했고 분노했다. 불과 1-2년 전의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마저도 내려놨다.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다보면 내 에너지만 닳아없어질 뿐 결과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제서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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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지금은 아무 기대 없이 하루를 보낸다. 그저 하고 싶은대로 살고 있다. 일은 적당히 하되 자기계발에 많은 신경을 쏟는다. 그것도 최선을 다한다기 보다 적당히 만족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아직 멋드러지게 연주하진 못하지만 오늘 1시간 이상 바이올린 연습을 했으면 만족스럽고, 발레리나만큼 완벽한 포즈를 취하지 못하지만 오늘 한 번이라도 턴을 제대로 돌았다면 충분하고, TV 속 아이돌들처럼 멋진 퍼포먼스를 보이진 못다더라도 동작을 내 나름대로 잘 습득했으면 만족스럽다. 그렇게 사소한 하루가 모이다 보면 몇 달 뒤에 꽤 나아진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 비해선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체감할 때마다 목표를 달성한것마냥 기쁘다. 물론 실제로는 목표를 세우지 않고 있다. 괜한 스트레스를 받고싶지 않아서다.


  남들 눈에 띈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내 자신을 꺼내 보이는 게 한 없이 조심스럽다. 그런데 신기하게 가만히 앉아있어도 알아서 기회가 찾아올 때가 있다. 물론 아주 드물게 생기는 일이고 스스로는 최대한 나설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일이 생기곤 한다. 아직 기대를 품을만큼 대단한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지만 종종 약간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보면 역시 욕심대로 흘러가는 건 없다는 생각이 또 든다. 욕심이 있을 때는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에 발목 잡히려 하지 않는다. 그런 지금의 나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믿기보다 고대하던 순간을 언젠가 만나길 천천히 기다린다.


찬찬히 주변 풍경을 둘러보다보면,
어느 새 알 수 없는 우연으로 목적지에 도달해있겠지.


Photo by Radu Flori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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