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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Feb 17. 2023

'진지하면 반칙'이라는 류근 시인을 응원하며

아아! 시바!! (잘못 발음하면 멱살 잡힐 욕설이 된다.)

이는 류근 시인의 상투어다.

이는 의성어이자 의태어이며 그의 내면 의식어일 수도 있겠다.


그의 진지해 보이지 않은 말투에서는 '졸라, 열라'를 내뱉으며 기성세대를 개무시하는 중고딩들의 호기와 치기도 살짝 엿보인다. 가끔은 '개쉐이'라는 고난도의 철학적 단어도 사용하지만, 그것은 극도의 친밀함의 표현이다. 진짜 나쁜 놈들에게는 욕도 아깝기 때문이다.


그의 작가적 현주소는 불투명이다. 그의 정치색은 알 수 없음이다.(어느 언론에서는 그를 친문이라는 색깔을 입혔다.) 그의 인생모토는 '표현할 수 있는 한 자유롭게'로 보인다. 가장 친한 친구는 막걸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술로 착각된다. 태백산 꿀도사 등 몇몇 친구로 추정되는 이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는 소설가 이외수의 말대로 하나의 문체다. 운문도 산문도 뛰어넘는 하나의 장르.(정통 문단에서는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CBS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부득이하게도 책 광고를 들었다. <진지하면 반칙이다>. 처음 듣는 순간 뻥 터졌다. 그렇지! 요즘 세상을 진지하게 살아가면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1000% 공감이 가는 문장이었다. 류시인이 책제목으로 하기 이전에 많은 이들이 마음속에 담아두었을 문장이다.


우리 문단에 작가 자신이 하나의 장르나 문체가 된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주관적이긴 하지만. 김수영, 신동엽, 박경리, 조정래, 그리고.... 그밖에 여러분들. 아무튼 야무지게 눈치 안 보고 타협 안 하고 물러서지 않는 뚝심이 있을 때 <자신만의 문체>라는 작가 근육이 생긴다.


그의 심성과 심상은 너무나도 여린 까닭에, 대학 재학 중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노랫말을 만들었다. 이 노래는 가수 김광석이 불렀다. 많은 이들의 사랑과 심금을 울렸고, 김광석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서 더 슬퍼진 노래가 되었다. 그렇다고 달콤한 사랑만이 사랑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아마도 사랑은 오미자보다 더한 맛을 갖고 있을 거라 추측된다.


책을 통해서 보면. 시인으로서 그는 인세가 생기면 주로 주변에 술을 사고 혼자 마시고 친구로부터 꿀을 샀으며, 사랑과 어머니를 신앙처럼 모신다. 모태 시인처럼 살아가는 그는, 모르고 봐도 그냥 멋진 캐릭터다. 류시인은 가난을 허허로이 견디고, 자연을 동경하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밀물 같다. 그렇다고 건강을 해치는 술에 대한 과도한 애정은 줄이는 게 좋을 듯싶다. 역시나 술 없이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세상이 야속하기는 하지만.


철없던 시절 국어 시간에 저항시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누구나 아는 시인 윤동주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1960년대에 풍운아로 살다 간 시인 김수영이 그랬다. 그다음은 누가 있을까? 시인 신동엽...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나름 시니컬한 시인들은 많았으나, 부조리하고 부당한 세상에 대한 것은 아닌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무언가에 저항하는지 여부가 시문학의 본질은 아니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은 없다. 상식적인 우리 모두는 저항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꿈꾼다. 그럼에도 최근 저항시인의 품격을 닮은 이가 나타났다. 바로 류근 시인이다.


좌우를 둘러보면, 자신의 이력이나 사회적 신분에 누가 될까 봐 정치적 발언을 아끼는 이들이 많다. 입만 다물면 꽃길을 걸을 수 있는데 굳이 설화를 일으킬 필요 없다는 현실적 변명도 이해 간다. 1930년대와 1970~80년대에도 대다수의 침묵과 소수의 적극적 저항만이 살아 숨쉬었기에, 2023년에 느닷없이 획기적인 변화를 꿈꿀 수는 없다. 그냥 우리 소시민적 삶이 그렇다. 태생적 새가슴인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2020년대의 시대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작가는 류근일 수 있겠다. 지금 우리의 시대에는 하찮고 우스운 들에게 일갈을 날리고, 조롱하는 이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기 이들이 필요하다. 이것이 작금의 시대정신이다. 공감하고 보듬어주는 서정시인도 필요하나, 기득권과 부조리세력에 저항의 표창을 날리는 시인도 필요하다. 거대 언론과 어용작가, 어설픈 평론가들이 혹세무민 할 때도 단정한 문장으로 꾸짖을 줄 아는 시인이 절실하다. 때로는 울분을 토하고 격정의 쓴소리를 날릴 줄 아는 그런 저항시인이 필요한 시대다.


류시인은 진지하면 반칙이라고 말하나, 어떤 면에서는 그도 너무 진지하다. 그의 '시바시대'에 대한 도발적 반칙은 너무나 진지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분노의 기치는 개돼지가 아닌 민초들의 삶이며 정신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아아, 시바! 가 욕으로 들리지 않는다. 아무튼, 새로운 저항시인으로 등극한 류근 시인을 응원한다. 저항할 필요 없는 봄날을 희망하지만, 아직은 김수영과 류근이 필요한가 보다. 아아, 시바!



류근 시인을 말하다보니, 갑자기 김수영 시인의 <풀> 한구절이 떠오른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도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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