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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카 Feb 14. 2016

여행의 속도

경기도 가평의 수도원에서 만난 나이 많은 강아지와 내 신발

나의 첫 여행을 시작으로 거의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대부분 혼자였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격 때문인지, 혼자 시간을 보내며 스트레스를 푸는 성격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을 양보할 수 없었거나-아니면 착한 아이 코스프레를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 동안 말도  못 한 채 착한 척 양보하며 살았다고 생각해서, 여행지에서만큼은 자유롭고 싶었던지도...


이런 내가 이제는 함께 여행을 하고 싶어 진다. 모두 다 양보하지도, 모두 다 내 멋대로 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싶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대학시절 나의 캠퍼스 뒤로는 산책로가 있었다.

어느 날, 등교하는 내 앞으로 한 노부부가 산책로를 향해 걷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한쪽 몸을 잘 쓰지 못하셨기 때문에 한쪽 다리를 끄시다시피 하며 아주 천천히 걷고 계셨고, 그 옆으로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속도에 맞춰 걷고 계셨다.


노부부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러던 중간에 근처 벤치에 잠깐 앉으시더니 할머니가 한쪽 신발을 벗어 할아버지에게 신겨 주시고, 할아버지의 벗겨진 한쪽 신발을 본인이 신으셨다.


짝짝이 신발을 신은 두 분은 다시 천천히 일어나 천천히 걷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한쪽엔 빨간색 운동한, 한쪽엔 갈색 로퍼를 신으신 채로...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저렇게 갈 바엔 휠체어를 타고 가시면 두 분 다 편하실 것 같은데... 할머니가 한쪽 팔을 부축하고 걸으면 편하실 것 같은데...


거의 20년 전 사건인데도 잊혀지지 않는 그 순간을 곱씹으면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 모두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아무리 부부라도 그 길을 대신 걸어줄 수 없다는 것을.

다만, 바람이 통할 만큼 공간을 남겨둔 채 옆에서 속도를 맞춰 걸어줄 수 있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소중할, 평생을 함께 해 온 친구가 조금 편하게 걸을 수 있다면 기꺼이 내 것을 조금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을.


만약 할머니가 휠체어를 끌었다면 할아버지가 재활운동을 하실 수 없는 것처럼,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부축했더라면 할머니의 육체는 할아버지의 정신은 더 고통스러웠을 것처럼.


다만 속도를 조금 맞춰 걸어줄 수 있는 조금의 사랑과 신발을 바꿔 신어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나도 이제 누군가와 속도를 맞춰 나를 지키며 여행을 시작해보고 싶다.  

그 노부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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